알도 레오폴드, "토지 윤리"

공동체란 인간만의 집단일까요, 아니면 모든 생명을 포함할까요?

by 룡하

“바람과 석양처럼, 야생의 것들은 당연히 있는 것으로 여겼지만 발전이 시작되자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더 높은 '생활 수준'이란 것이, 자연에 있는 것들이나 야생과 자유를 희생하면서 얻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나요? 라고요. 소수에 불과한 우리에겐 스마트폰(텔레비전)을 보는 것보다 진짜 거위 떼를 볼 기회가 더 중요합니다.

-알도 레오폴드 (1887~1948, 미국의 생태학자, 환경운동가)


Like winds and sunsets, wild things were taken for granted until progress began to do away with them. Now we face the question whether a still higher 'standard of living' is worth its cost in things natural, wild and free. For us of the minority, the opportunity to see geese is more important than television. - Aldo Leopold /ecologist


20세기 환경윤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도 레오폴드」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교수였다. 생태학자, 산림보호자, 환경 보호론자로 그가 쓴 《A Sand County Almanac and Sketches Here and There》는 14개국 언어로 번역돼 200만부 이상이 팔렸다.


그는 토지 윤리(Land Ethics)의 주창자였다. 인간은 토지 공동체의 정복자가 아니라, 흙, 물, 식물, 동물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평범한 구성원 또는, 시민에 불과함을 겸허하게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토지를 훼손하거나 남용하는 짓은 토지를 상품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한다. 토지와 같은 자연자원을 경제적 잣대로 평가하는 한, 인간은 결코 토지와 공존할 수 없다.


토지는 단순히 흙이나 땅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식물과 동물, 흙이 끊임없이 에너지를 흐르게 하는 회로(回 路)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기후 위기는 인간의 어머니라 불리는 흙과 연계된 동물, 식물 간의 에너지 교환 회로가 끊어지면서 시작됐다.


출처 : 윤영무, "붕괴한 토지 윤리(倫理), 세계적인 기상재해 초래", M이코노미뉴스, 2022.09.24, https://www.m-economynews.com/mobile/article.html?no=32208


자연 환경 파괴는 우리 인간의 생존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자연 환경에 대한 인식 변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환경윤리란 인간과 자연 환경과의 윤리적 관계에 대한 체계적 설명이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는 인간 이외의 자연적 대상 역시 윤리적 논의의 세계에 포함시켜야 한다. 특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속해 있는 서식 환경에 폭넓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서식 환경에 대한 윤리적 고려의 중요성을 환경윤리의 기초 과제로 표방한 사람은 알도 레오폴드이다. 그는 땅에 대한 새로운 시각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땅을 단순한 소유 재산이 아닌 생태학적 대상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레오폴드는 ‘대지윤리’라는 생태중심의 윤리를 건설하고자 했다.


출처 : 윤혜진. (2007). 알도 레오폴드 ‘대지윤리’의 철학적 기초. 범한철학, 46(3), 193-218.


대지윤리는 생명공동체의 ‘온전한’, ‘안정’,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탈인간중심적인 윤리이다. 대지윤리는 우리에게 생명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동시에, 포괄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우리는 대지윤리에 의해, 개체주의적인 생명중심사상이 안고 있는 반직관적인 결론들(counterintuitive conclusions)을 상당히는 피할 수 있다. 대지윤리는 논리적인 측면에서도 다른 견해들에 비해 강점을 지닌다. 개체인 구성원은 전체인 생명공동체에 포함되며, 전체가 없으면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역은 성립되지 않는다.

한편, 대지윤리에 대한 비판으로는 대지윤리는 사실과 가치, 존재와 당위의 영역을 혼동하는 자연주의적인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지윤리와 같은 전체주의는 인간의 역할을 무시하는 환경파시즘이라는 점이다. 이런 비판에 대한 반론으로는 윤리적인 당위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도덕감과 같은 사실에서 나온다는 점을 내세운다. 가치판단은 이런 인간심리에 그 뿌리가 있으므로, ‘사실과 가치’, ‘존재와 당위’는 연속선상에서 논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대지윤리를 환경파시즘으로 규정하면서 비판하는 것은 그 비판의 배후에 인간중심주의적인 사고가 스며 있으며, 이것이 지나치면 인간쇼비니즘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또한 반론이 제기된다.

일련의 대립된 견해들 가운데 어떤 견해를 따르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지는 도덕 및 생태교육을 통해 설득할 필요가 있다. 어렸을 때부터 생명공동체에 대해 바람직한 성품을 지니게 하는 일이다. 도덕적으로 좋은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일수록 더욱 효과적이다. 어릴수록 보다 빨리 습관들여지기 때문이다. 대지윤리와 관련된 환경윤리교육은 논리교육이나 과학교육과의 접목 속에서도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논리적인 도형을 통해 설명하면 보다 효과적이다. 현장중심의 과학교육을 통해,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터득하게 하는 일도 중요하다.


출처 : 안건훈. (2006). 레오폴드의 대지윤리와 환경교육. 환경철학, 5, 87-111.



우리는 흔히 공동체를 인간 집단으로만 한정합니다.

하지만 숲의 나무, 강의 물고기, 공기의 흐름도

모두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부입니다.
나의 ‘이웃’은 사람만이 아니라,

곁의 나무와 강아지,

심지어 흙까지 포함됩니다.



알도 레오폴드, "토지 윤리"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는 ‘토지 윤리(Land Ethic)’에서 공동체를 흙, 물, 식물, 동물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은 공동체의 정복자가 아니며,

우리가 토지를 훼손하거나 남용하는 행위는

토지를 상품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토지와 같은 자연자원을 경제적 잣대로 평가하는 한,

인간은 결코 토지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생활 속 실천


오늘 하루, 비인간 존재 하나를 ‘이웃’으로 불러 보세요.

화분, 길고양이, 나무.

공동체의 경계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즉, 생명공동체는 인간 중심을 넘어

모든 생명을 위해 확장되어야 합니다.



더 큰 자아로 살아가기


나의 존재는 ‘나’를 넘어,

이미 세상 전체와 함께 숨 쉬고 있습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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