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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함표 Jul 28. 2022

나의 여행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난 여행을 여유라고 생각한다. 여유가 없는 사람은 떠날 수도, 보고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다. 때문에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시간적 여유도 경제적 여유도 체력적 여유도 필요하다.


대학 강의에서도 가르친다. 관광이란 무엇인가. 볼 관 자에 빛 광 자. 나라의 성덕이나 광휘를 본다는 뜻이다. 이 용어는 조선 초기 때부터 사용했다. 그 이후 현재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그 관광이 된 것이다. 목적은 조금 다르지만 외국으로 떠난다는 일종의 의미는 같다. 외에도 관광업에서 사용하는 trip, travel, journey, tour의 뜻이 모두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이 모두 어딘가로 떠난다는 의미이다. 떠난다는 단어에는 두 의미가 있다.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간다는 것과 지금 있는 이곳을 떠난다는 것. 하지만 전자든 후자든 지금 있는 곳에 발을 묶이지 않고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물론 위 용어들은 각자 세부적인 의미 차이가 있다.)


최근에는 virtual tourism이란 말도 생겨나고 있다. 즉 어딘가로 실제로 움직이지 않고 인터넷이나 모바일 또는 3D, VR 기기를 이용해서 여행하는 느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방법들이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관광업에서는 여행 또는 관광이라고 치지 않는다. 물리적인 이동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관광이 아니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경제적 시간적 신체적 여유가 없는 우리 엄마만을 봐도 컴퓨터로, 웹사이트 지도로 관광지의 모든 골목과 하늘과 바다를, 맛집을 찾고 보고 계신다. 모니터로 전국을 여행하고 전 세계를 탐험한다. 여행이나 관광이 여유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라면 그러할 여유가 없는 이들은 관광할 자격도 없다는 뜻인가. 그건 너무 불행하지 않은가.

 

최근엔 360도 캠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미 페이스북에서는 360도 영상이나 사진들이 올라와있다. 공연들도 올라온다. 실제로 가지 않은 나도 즐겁게 보고 있다. 물론 직접 눈으로 보는 것만큼 많은 것을 느낄 수는 없겠지만 이런 방법으로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거라도 좋지 아니한가.


사실 내가 있는 곳이 싫어 엄마를 혼자 두고 도망친 나로서는 할 말이 없긴 하다만 각자의 방식으로 여행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산책과 같은 여행을 좋아했다. 산책로나 어떤 골목들을 따라 쭉쭉 걷는 것이다. 지도도 필요 없다. 어차피 길은 다 만들어져 있고 우린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따라 함께 걸었고, 각 골목과 동네에 따라 다른 모습들을 보기도 했다.


각 동네에는 그 동네만의 특징들이 있다. 심지어 네모나게 딱 떨어진 각 블록들 마다도 각자 다른 것들이 있다. 나는 그것들은 관찰하고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여기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지, 그들의 생활 패턴은 어떤지, 어디서 무엇을 먹고 어떤 얘기들을 하는지. 그저 가만히 카페에 앉아서 있기만 해도 그것들이 보였다.


나는 카페에서 그런 것들만 보기도 했지만 버스여행이나 골목 탐험도 좋아했다. 어차피 집으로 돌아갈 거라면 어떤 길을 따라 어떤 곳을 가더라도 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저 궁금한 골목을 따라가고 지나가다 궁금한 식당이나 카페를 찾아가고 궁금한 곳이 있으면 찬찬히 들여다보고는 했다.


혹은 버스 하나를 정해서 타고 쭉 가기도 했다. 버스는 노선에 따라서 한번 갈 땐 짧게는 한 시간에서 세 시간까지 가기도 했다. 그저 버스에 앉아있는 그동안 어느 곳을 지나고 어떤 사람들이 타고 이 버스는 이 도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어떤 곳을 가고 이 버스는 그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관찰하는 것이 재밌었다.


이런 것들을 몇 년씩 하더래도 질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 수도권 지역은 변화가 빠르다. 어떤 거리는 3개월만 지나도 처음 보는 것과 같이 바뀔 때도 있다. 건물 짓는 속도도 빠르다. 전엔 없던 건물이 쑥쑥 올라가기도 한다.


물론 사는 곳의 변화가 빠르다는 이유도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정착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유가 크기도 하다. 집이 있고 이를 유지하지 않는 한 지금 여기서 이사는 불가피한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 누군가는 집 값 때문에, 빚 때문에, 월세 때문에, 직장 때문에, 학교 때문에, 재개발 때문에 이사를 한다. 이사를 하는 이유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하지만 결국 대부분은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가깝지만 다른 동네로 이사한다.


이사를 했다고 그 집에서 더 오래 살 거라는 보장은 없다. 일 년 만에 다른 곳으로 갈 수도, 10년 가까이 살 수도 있다. 물론 더 오래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2, 3년의 주기를 가지고 이사를 했다. 아마 계약 기간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이사 주기가 짧은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살던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모를 때도 있다. 자기 동네를 좋아하지 않거나, 자기 동네마저 둘러볼 여유가 없거나,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에게 자기 동네에 관심이 없다고 욕할 수 있을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이사가 더 이상 내 동네가 아닐 것이고 동네를 탐험할 여유는 없다. 그들에게 자기 동네는 그저 자기 집이 있는 곳의 주변 사물 들일뿐이다.


다시 내가 즐겨하는 나름의 여행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어떠한 우연들을 좋아한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삶은 우연의 연속이란 말이 있지 않나. 내가 어딘가로 가는 것도,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어떤 골목의 호기심을 갖는 것도 모두 우연이다. 나는 어떤 소박한 우연들을 기대한다. 물론 우연을 기대하고 걷는 것이 정말 우연일까 하는 생각은 있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지나가다 좋은 카페를 보고 식당을 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풍경을 보고 새로운 광경을 만나고. 참 신기하지 않은가. 좁다면 좁은 그 서울 안에선 아무리 보고 들어도 내 눈과 귀와 머릿속에 다 담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참 서울은 신기한 동네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나의 그런 탐험할 수 있는 여유는 사라졌고 사람들 사이에 끼여만 있었다. 매일이 부대꼈다.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핸드폰만은 혼자 어디선가 부대껴있었다. 그렇다고 미래를 생각하면 핸드폰을 놓을 수 없었다. 이미 약속된 일들이 있었기에 내 성격 상 그걸 해결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제주도로 도망쳐왔다.


더 이상은 기대하는 우연이 없었고 사람들에게 치이는 기분이었다. 매일이 같아 똑같은 말을 하는 내가 견딜 수 없었다. 그저 소박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냥 이젠 그렇게 있기가 싫었다. 그러고 며칠 되지 않아 바로 다음날 출발하는 항공권을 끊었다.


내가 본 제주도는 매일이 다르다. 바다와 하늘이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었다. 발길 따라 걷다가 괜찮은 카페가 보면 들어가 보고 궁금한 거리나 골목이 나오면 들어가 보고, 지나가다 괜찮다 싶은 곳이 나오면 들어가 봤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움직였다. 때문에 더욱 자세히 관찰하고 주변을 둘러보려 노력했다. 혹시나 내가 놓치는 것을 최소화하고 싶었다.


여기선 그런 작은 우연들도 있었다. 너무나도 좋은 게스트하우스를 만나기도 하고, 너무 맘씨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들, 카페에서 어떤 귀여운 아이와 함께 놀기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예상치 못하게 도움을 주기도 받기도 하고, 신기하고 재밌는 광경을 보기도 했다. 그것이 굳이 몇 개월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일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저 오늘 하루가 즐겁고 내일을 기대하는 원동력이 된다. 누군가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지고 새로운 곳으로 가고. 재밌지 않나. 매일매일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것들을 만나는데.


혹자는 말한다. 어딜 가면 무엇을 봐야 하고 무엇을 사 와야 하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경험하고 와야 한다고. 물론 그것도 나쁘지 않은 여행이다. 하지만 그런 강박들을 피해 도망친 나에게 다시 강박을 요구하다니. 그냥 나는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걷는 이 순간이 좋을 뿐이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는데 파도가 친다고 해서 춤을 추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냥 파도와 함께 춤을 추면 된다. 춤을 추든 파도를 버티든 일단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단 것이 좋지 아니한가. 그런 여유를 가졌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분 좋은 것 아닐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저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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