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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함표 Jul 28. 2022

<영웅과 빌런>

각자에겐 각자의 히어로가 있다. 슈퍼맨, 배트맨,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과 같이 자신들만의 히어로가 있다. 그들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가상세계에서 전 세계나 어떤 한 도시를 지킨다.


그리고 이들을 방해하는 빌런들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안티 히어로나 반영웅으로 불리기도 한다. 작품의 구조에서 그들의 역할은 안티테제 격이다. 때문에 대부분 권성징악의 효과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런들 각각의 철학은 신기하다시피 잘 정립되어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주인공이 반정립이다. 우린 그런 빌런들을 잘 이해하면서도 물리쳐야 할 존재들로 본다.


물론 캐릭터의 완성이 높은 것이 이유이겠지만 빌런들마저 높은 완성도를 가지게 되는 이유 역시 독자들의 변화에 있다. 작금의 정치 상황을 보아도  그렇지만 그들의 역할은 굉장히 넓은 영역을 담당한다. 히어로의 생성, 발전, 위기, 각성, 결말까지 거의 모든 곳에서 빌런들은 자신의 캐릭터성을 발현한다.


인기 있는 빌런들은 본인이 주인공이 되는 작품을 담당하기도 한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캐릭터는 그 자체로 유기적인 존재가 되어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뛰어다닌다. 그만큼 캐릭터성이 있으며 생생하게 독자들의 공감을 사기도 한다.


이런 안티 히어로들은 현실에도 있다. 누가 진짜 히어로며 안티 히어로인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의 인생 속에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각자의 마음속에 각자의 영웅들을 품고 있다. 각각이 히어로와 안티 히어로는 누가 주인공이냐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기도 한다.


누가 영웅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건 각자의 가치관에 따르며 각자의 상황과 시야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굳이 거창한 일을 하지 않아도 각자 영웅이 될 수도, 영웅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어린 자식들을 키우는 부모가, 힘든 몸으로 노모를 부양하는 자식이, 매일 봉사를 하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종교인이, 어른들에게 웃음을 주는 어떤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영웅들은 단순하지만 의도치 않은 호의라도 단 한순간에 영웅이 될 수 있다. 물건 옮기는 것을 잠깐 도와준다던가, 우울한 어떤 청년에게 말을 건네주기도 하는 것들이 말이다. 그렇게 어떤 이들은 어떤 가족이나 단체에서 히어로가 되기도, 단 한 사람에게만 히어로가 되기도 한다.


이런 히어로들은 자신이 히어로란 생각을 하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정말 선한 의도였거나,  행위에서 보람을 느끼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한 행동이 박수를 받을만한 이유는 아니다. 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세상에서는 종종 당연한 행동이 박수를 받기도 한다. 그것이 세상의 조명을 받든 받지 않든 말이다.


우리 엄마는 근 15년 동안 혼자 아들 둘을 키우셨다. 물론 이것은 당연한 행동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누군가의 시선에 따라 매우 다르게 보인다. 누군가는 도움을 받은 히어로로 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어떤 권리를 빼앗긴 안티 히어로로 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본인과는 상관없는 제삼자의 어떤 인물로만 보기도 한다. 때문에 히어로와 빌런은 독자에 따라 상대적이다.


이런 시선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는 히어로다.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작은 일들을 하고, 이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면 그것은 히어로다. 그저 이웃에게 말을 건 데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단지 하루를 살아갈 희망이나 의욕을 북돋아 준다면 그는 어떤 이에게 하루 동안의 영웅이 될 것이다. 그것이 가족 일수도, 연인 일수도, 이름 모를 어떤 사람 일수도 있다. 이는 사실 "누군가가 히어로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히어로의 도움을 받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나의 시선 안에서는 모두가 히어로다. 열심히 노동을 하고,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고, 누군가의 도움을 건네는 손길이 영웅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큰 시선에서는 특별한 것이 아닐지 몰라도 어떤 이의 눈으로는 특별한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행동들은 그들을 빌런으로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히어로가 되겠지만 누군가에겐 빌런이 될 것이다. 때문에 모든 이들은 히어로임과 동시에 빌런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세상은 모두가 히어로임과 동시에 빌런인 세상이다.


참 재밌지 않은가. 모두가 히어로며 빌런이라니. 마블이나 디씨의 세계관보다 더 히어로와 빌런들이 많은 세상이 바로 현실이다.


나는 데이비드 보위의 heroes를 참 좋아한다. 굉장히 신나는 비트에 히어로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노래한다. 하지만 나에겐 굉장히 슬픈 노래로만 들린다. 슬프고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다고 느낄 때면 항상 이 노래를 듣는다. 그럼 좌절과 희망이 동시에 샘솟는다. 그저 내 감정을 제일 잘 공감해주는 노래랄까.


I, I will be king

And you, you will be queen

Though nothing will drive them away

We can beat them, just for one day

We can be Heroes, just for one day 


불빛이 환한 건 그 주변이 어둡기 때문이고 영웅이 있는 건 그 시대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빛이 필요한 이유는 어둠을 밝히기 위함이며 별이 빛나는 이유는 하늘이 어둡기 때문이다.


너무 슬프지 않나. 누군가는 언젠가  수 있을 거라곤 하지만 언제  건지 기약 없는 이야기면서도 이것이 희망이 된다. 히어로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하루쯤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단지 하루 동안 히어로가 되기 위해 살아간다. 그래서 보위는 영웅이 되었나.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영웅이다. 슬픈 노래를 이렇게 신나게 불러주다니.


보위가 말하는 영웅이 술에 취한 새벽에 영웅의 성취감을 말하는 건지 목숨을 다해 하늘로 날아간 것인지 모른다. 다만 아무렴 어떠한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각자 본인의 몫인 것을.

David Bow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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