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길

회를 뜨다

by 김진호

이돈형


광어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목을 따 피를 뺀다

왈칵 쏟아내는 리듬

한 번의 기도를 적시는 중이다

절규나 절망보다 조용히 뱉어내는 숨이 더 뜨겁다

회칼이 잘 갈려 있기를 너나 나나 바라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 배어든다면 우리는 한 치와 두 치 사이에서

쉼 없는 궁금증으로 흔들리기에

정교한 손놀림으로 회를 떠야 했다


결의 반대쪽으로 칼을 들이댄다

왼쪽으로 쏠려 하선한 생을 결대로 썰면

짓물러진 물에 대한 숭배가 솟구칠 것 같아

욕망의 반대쪽을 택하였다

죽음보다 무거운 것이 날것의 미련이었기에


슬픔은 부드러웠고

자객의 칼에 베인 천성이

생각보다 기도를 쉽게 내주었다

얇게 썰려진 살점에서 네가 버틴 통점들이 내게로 온다

염장질러야 발라지는 것이 삶이지만

싱싱해서 만만할 수 없었고

사색의 빛이 묻어있어 미안했다


마지막 살점에 칼을 들이대자

뼈대를 갖춘 네 눈이 시간을 물어본다

너나 나나 시간이 필요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포장마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