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 오래된 한 장의 편지를 받다.

by 김진호


1755949625433.jpg

편지

– 오래된 한 장의 편지를 받다.


Ⅰ.

잊혀진 서두의 문장들이

벌판 위에서 바람에 실려 춤춘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떨쳐내려

몸부림치는 대지 위에

가슴 깊이 스며드는 절망의 그림자들…


찾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끝없는 물음표 속을 헤매다

조용히 돌아서는 작은 마음은

텅 빈 수레처럼 덜컹거린다.


이토록 서툰 삶 하나,

이토록 아픈 가슴앓이 하나,

끝내 지워지지 않는다면

나도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맨다.


Ⅱ.

내게 오래된 이념을 가르쳐준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아무도 모르는 그곳에서

누군가의 조용한 쉼이 되어 있을 테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를 탓한 적 없다.

오히려 고맙다.


그 낡은 이념은

이제 내 삶의 쉼이 되어

영원의 날개가 되어

세상을 훨훨 날아

외로움마저 꿈으로 바꾸어 놓는다.


편지를 받는다.

길게 늘어진 형용사의 리듬은

가슴을 울리는 애절함으로 가득하다.

그 사람은 술을 마신다.

내 마음도 함께 술을 마신다.

그는 또 다른 상처를 두려워하고

나 역시 상처를 두려워한다.

우리가 나눈 공통점은

절망이라는 이름이었을까.


또 한 잔의 술을 따른다.

말을 잃은 시인의 슬픔을 안고

조용히, 그렇게 또 한 잔을 마신다.


Ⅲ.

작지만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우리, 조용히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자.

어릴 적 꺼먼 고무신,

올챙이, 개구리, 도마뱀, 살무사…

그리고 옆집 순이와 철수까지.


그렇게 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진실을 마주하는 날도 오겠지.


#편지

매거진의 이전글제2장 방황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