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접속 1997
독백 2
- 다시, 접속 1997 -
네온 불빛이 붉게 번지는 거리를 홀로 걷고 있었다. 짙은 덧없음이 밀려오는 쓸쓸한 밤이었다.
문득 음반 가게에 들러 테이프 하나를 샀다. 혼자라도 음악만은 함께하고 싶다는,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이었을까. 모두가 짝을 이룬 거리에서 지폐 몇 장을 내밀어 테이프를 손에 쥐었다. 가을을 꿈꾸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홀로 남겨진 듯한 기분이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당시 대종상을 휩쓴 영화 '접속'의 표를 샀다. 이 가을이 나에게 너무 잔혹할 것만 같아 영화라도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통신을 통해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라니, 혼자인 나에게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주 한 병을 샀다. 엄청나게 큰 컵에 소주 한 병을 모두 털어 넣었다. 보기만 해도 질리는 양이었지만, 이왕 마시기로 한 거니 들이켜 보기로 했다.
예전에는 소주 대여섯 병을 마셔도 거뜬했는데, 겨우 한 병에 취기가 올라왔다. 몸이 많이 약해졌나 보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답답한 마음을 덜어내려 내뱉은 담배 한 모금에 밤의 공기가 무거워지는 듯했다.
한참을 뒤척이다 새벽이 올 무렵, 전화번호부를 뒤적였다. 이 바보 같은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까 자문하며 J에게 전화를 걸었다. 둔탁하게 울리는 신호음 끝에 녀석을 만났다.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포장마차에 둘이 앉아 소주를 마셨지만, 막상 할 이야기는 없었다.
어느덧 차는 무작정 대천을 향하고 있었다. 넌지시 걸어둔 테이프에서는 영화 '접속'의 주제곡이 흘러나왔다.
"오늘 아침에 지도를 봤어요... 당신을 본 적은 없지만... 이제 난 다시 혼자가 되겠죠 당신처럼... 다시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는 걸 믿는다고... 오늘 당신을 만나서 이 음악을 함께 듣고 싶었어요."
가슴까지 밀려오는 짜릿함. 그런 것을 믿는가? 나는 믿는다.
바닷가에 다다를 무렵, 진한 갈증과 숙취의 고통과 싸워야 했다. 주유소에서 얻어 마신 물 한잔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바다는 한 번도 같은 웃음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런 바다를 다시 보았다. 태양 없는 밝은 대천 앞바다. 흩어져 뛰어노는 조개껍데기 사이로 밀려드는 파도, 그리고 절망이라는 낡은 뿌리처럼 솟아나는 삶의 뒤틀림. 정말 바다는 한 번도 같은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삶은 낡은 바다와 같아서 매일 또 다른 웃음을 보이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당신에게, 이 파도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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