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한길

산다는 거 그거

by 김진호

김진회


닷새를 보내고 토요일이 되면

아침 일찍부터 나는

주유소 알바생이 된다.

토요일 14시간

일요일 14시간

왜 그리 사느냐 묻기도 한다.


일흔넷의 어르신

예순여섯의 아저씨 둘

쉰일곱의 형님.

이렇게 은퇴 전후의 동료들 중 막내다.


주유소 건너

작은 개인미술관

미술관을 사이에 두고

식당과 고물상이 있다


일흔아홉의 전(前) 조각과 교수.

동기로 부터 들어 본 이름.

먼 발치에서라도 본 건

주유소 알바를 하면서부터다.

올림픽 공원에도 작품이 있다지만

본 적은 없다.


자그마한 키에 구부정한 허리

그리고 느린 걸음걸이

비쩍 마른 몸에 수트를 걸치면

허벅지를 덮고도 남는다.

그가 누구인지 아는 동네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술관에 사는 노인일 뿐.


내가 누구인지 아는 동네 사람도

아무도 없다.

주유소에서 일하는 알바생일 뿐.


우리는 무엇을 바라며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가는가.

내가 그들에게

그들이 내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데.


그들이 내게 관심이 없음을 알게되면서부터

나는 자유를 얻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행인인 줄 알면서부터

나는 나를 너무 사랑하게 되었다.


그 동안 나이를 따지고

그들을 의식하느라 못했던 것들.

나를 구속하고 옭아맨 장본인이 나였음을.

이런 통탄할 일이 또 어디 있으랴.

올가미를 풀고나니

세상은 온통 나를 위해 존재하는

밝은 빛이 되었다.


내가 스키니를 입던

쫄티를 입던 무슨 상관이랴.

내 몸에 맞고 내가 좋으면 그만인 걸.


산다는 건 그랬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서부터

남에게 사랑을 나눌 수 있음을 알고

내게 자유를 줌으로 해서

상대방을 인정해 줄 여유를 갖는다는 걸 안다


어르신이

지나가는 노교수를 보며 한마디 뱉는다.


”저 노인네 옷발은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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