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올리지 않았던 이유
아무 생각 없이 통화하던 친구가 물었다.
“너 요즘 글 쓰고 있냐?”
“당연하지.”
“소설만?”
“아니 에세이도 쓰는데? 왜?”
“그냥. 브런치에 글 안 올라오길래.”
“올릴만한 글이 없어 그랬어.”
“아 그렇구나.”
“...”
“...”
“... 그런데 내가 브런치 아이디 알려 줬었냐?”
너무 당황스러웠다. 에세이(브런치) 쓴다는 말도 일부 지인들에게만 했고, 그들에게도 내 닉네임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얘가 내 글을 읽고 있었다니 뒤통수가 얼얼했다. 당황한 내 물음에 녀석은 태연히 말했다. 꾸준히 브런치 글을 정독하고 다니는데 우연히 내가 아는 어떤 인간과 비슷한 글이 눈에 들었고, 그 사람이 쓴 글을 몇 번 보니 나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던 녀석이 브런치를 구독하고 있다 하니 생소했다. 또 내 글을 꾸준히 봐주는 독자가 있었다는 사실에 내심 기쁘기도 했지만 알면서도 구독이랑 하트는 안 눌러 준 건 좀 섭섭했다. 자기 눈에 차지 않는다나 뭐라나.
브런치에서도 알림이 왔다. 꾸준히 글을 써야 실력도 는다면서. 내 사정도 몰라주고 말이다. 요즘 주특기인 소설 쪽에 집중해서 그렇지 에세이도 빼지 않고 쓰고 있다. 딱히 슬럼프가 온 건 아니지만 브런치에 올리지 않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남에게 보여주기 힘든 주제. 근래의 글들은 우울했던 유년기 시절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나’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이야기고, 깊은 상처에 대한 것이었다. 아직 상처를 극복한 건 아니기에 함부로 드러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친구처럼 우리 가족이 이 글을 보면서 다시 상처받는 게 싫어서다. 또 너무 우울한 흐름에 보는 이들의 감정을 아프게 할 것 같았다. 내 글을 보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목표를 지향하는 나에겐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둘째는 문제로만 남긴 글이다.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이야기하다 마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글을 쓰다 마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모든 이야기엔 끝이 있어야 하고, 그건 작가가 작품에 갖춰야 할 예의다. 그런데 근래에 쓴 글들은 전부 질문에서 머무르는 글이었다.
‘고민하고 질문하는 게 왜 문제냐?’
질문하는 건 잘못이 없다. 하지만 독자들의 입장에선 문제가 있다. 그들은 정답이든 오답이든 일단 내 생각과 의견을 듣고 싶어 내 글을 읽는다. 적어도 난 그렇다. 내 생각과 상대의 생각을 견주어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해 비교하며 글을 읽게 된다.
그런데 문제만 투척하고 답과 결과를 내놓지 않으면 상대가 나에게 문제를 떠넘긴다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보여줄 글이라면 적어도 그에 따른 내 생각이 반드시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셋째는 무의미한 글
주제가 없는 글이 몇 있었다. 오늘 하루 뭐 했다 같은 일기형식의 글이다. 매일 일기를 쓰고 있어 그중 괜찮은 이야기를 주제 삼아 쓰기도 한다. ‘은행나무의 위로’가 그중 하나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내 추억과 해프닝으로 끝날 것들이라 다른 이들에게 울림이나 공감을 줄만한 주제가 별로 없다. 아니 오늘 글 빨 잘 받아서 15.000자 썼다 같은 이야기를 올릴 순 없으니까...
내 글들이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온전히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생각은 저마다 다르니까. 하지만 최소한의 격식은 갖춰져 있다면 독자들은 너그러이 받아들여줄 것이다. 다른 분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