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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자리작가 Nov 28. 2023

은행나무의 위로

스쳐간 생각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보며 싱숭생숭한 마음이다. 가을은 그런 계절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차가워지며 겨울을 예고하며, 어느새 달력이 마지막장을 남겨두고 있음을 일깨웠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이룬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날이 갈수록 조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가정을 이룬 친구들과 직장동료들에 비해 이제야 사회성을 쌓아가는 과정을 밟는 철없는 30대는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돈도 모은 게 없고, 이렇다 할 능력도 없었다.


앞서가는 이들의 자취를 뒤따라가는 내게 위로가 된 건 출근길 가로수였다. 가을의 끝자락에 머문 시기에도 가로수 은행나무는 여전히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집 앞에 앙상히 가지만 남은 나무가 떠올랐다. 그 나무도 은행나무였다. 이 시기의 나무들은 이제 화려한 단풍 대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낼 시기였다. 그래서 난 늦게까지도 푸른빛을 띠는 은행나무가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나를 기다려 주는 것 같기도 했다.


첫눈이 온 주말이었다. 반가운 친구들과 함께 거창으로 여행을 떠났다. 숙소는 깊은 산골에 위치한 곳이었지만 오히려 복작한 도시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았다. 서로 웃고 떠들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니 쌓여있던 불안과 번뇌들이 사라졌다. 다른 이들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위안이었다.


힘든 월요일 아침 출근길이었지만 여행의 여운으로 포근하고 따스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에 취해있던 난 지하철 출구를 나서 가로수 은행나무를 보며 놀랐다. 금요일 퇴근 전까지만 해도 푸르던 은행나무가 어느새 노랗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젠 괜찮지?’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나를 위로해 주던 은행나무는 근심 어린 걱정들을 털어내고 나서야 가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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