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임에서 칭찬에 대해 썼던 걸 정리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만원의 카페에서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 셋이 인원들이 모여 조용히 글을 쓴 뒤 짧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한 분이 말을 끌더니 곧 소감을 말했다.
“굉장히 신선한 의미네요.”
‘내용이 별로구나. 난해했나?’
모든 글이 호응받을 순 없다는 걸 알기에 실망하지 않았다. 그분의 미묘한 반응을 처음엔 내용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던 것 같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어진 말은 뜻 밖이었다.
“역사가 보였어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어떻게 알았던 걸까. 숨겼던 내 속마음이 드러나 버리고 말았다. 순간 내 정신은 길을 균형을 잃은 것처럼 흔들거렸다. 그 후 난 쉽게 충격에 벗어나지 못했다.
내게는 나쁜 버릇이 하나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관심을 받으려 행동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관심을 구걸하는 이 행동은 그 목적이 분명했다.
‘나 좀 봐줘. 그리고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해줘’
내 행동이 옳은 일이며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고 있음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남들이 볼 때 나서서 행동하고 더 과장되게 그 일을 포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칭찬받았던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였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얌전하고 점잖다는 칭찬을 자주 받았다.
내가 얌전해야만 했던 이유는 편부모 가정으로서 자식이 불안전한 요소를 갖지 않는 것이었다. 가정의 환경적 문제를 떠나 어른들 입장에선 아이들이 사고 없이 얌전히 자라는 게 최고다. 만약 일탈이나 비행 등에 빠지게 되면 재정적 문제와 기타 요소들로 인해 일상에 큰 지장이 오게 되니까.
혼란스러웠다.
‘그럼 내가 뭘 해야 칭찬받을 수 있지?’
시키는 일만 잘하면 된다. 타고난 머리가 아니라 근성과 악이라도 있었다면 공부로 어느 정도 먹고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남들 다 하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대한민국 아저씨들이 겪는 고충에 고민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렇게 머리가 비상한 것도 아니고 여린 겁쟁이에 주어진 문제와 책임에 도망치기 바쁜 사람이었다. 늘어나는 건 눈치에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사람들의 비위에 맞게 조용히 묻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는 못해도 그리 비굴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식들 공부 안 하는 문제 세상 부모들 다 하는 걱정 아닌가? 불우한 환경은 내 성적표의 이유가 되기 충분했다.
홀로서기 시작하며 이제 난 내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 뭘 해야 옳은 지 알 수 없었다. 그간 남들이 하라는 것만 해왔는데 그건 얌전히 시키는 것만 하는 것이었다. 얌전하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시키지 않아도 내 앞가림은 스스로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난 내 앞가림을 하지 못한다. 뭘 해야 할지 모르니까. 그게 잘하는 건지 모르니까. 아니, 가장 중요한 걸 알지 못했다. 바로 ‘계기’였다.
난 모든 일을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행동했다. 누군가 지나가면 비켜줬고, 상대가 쓰려하면 내주고, 빼앗으려 하면 빼앗겼다. 그래놓고선 다른 이에게 호소도 안 했다. 그 사람이 내 사정을 말하는 것조차 타인에게 민폐라 여겼으니까.
그래서 내 행동을 확인받고 싶어 했고, 그래서 칭찬에 굶주리며 살았다. 내가 하는 행동들이 틀린 게 아니란 걸 확인받아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나에게 칭찬과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매달리기 시작했고, 그 후 나를 이용하려는 이들에게 휘둘려 크고 작은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어쨌든 이로 인해 내 삶은 엉망진창이 되었으며 그로 인해 얻은 교훈은 ‘타인의 칭찬에 휘둘리지 말자’와 ‘진심 어린 조언과 칭찬을 하자’였다.
그렇게 다짐하며 살아왔고, 그런 내 삶을 숨기려 항상 생각하고 경계했다. 그런데 지우려 했던 내 과거들이 말과 단어 속에 깃들어 상대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역사’라는 말처럼 이 상처가 없어지는 건 사실 불가능 할지도 모른다. 다만 어리석은 삶을 살며 배웠던 깨달음만큼은 잊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