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마음지구력]
요즘 지쳤다는 말이 그렇게 머리에 맴돌아요. 처음엔 힘이 다해서라 생각했어요. 퇴근 후에 지치는 게 당연했으니까. 하지만 요즘 모든 일들에 의욕을 잃어버렸어요. 오늘도 보람차게 해낼 거란 기대감에 가득했던 운동과 쓰기 작업이 예전 같지 않아요. 기록은 어제보다 못하고, 빈종이를 보며 멍하니 딴생각에 빠져 있어요.
오늘은 어디까지 뛸 수 있을지, 완성된 내 글을 보며 사람들이 즐거워할 모습을 상상하며 이야깃거리를 메모하던 전 사라졌죠.
의욕이 사라지며 주변 환경도 달라졌어요. 바닥엔 건조가 끝난 옷가지들이 나뒹굴고 있고, 쓰레기통엔 배달음식 포장지가 넘쳐났죠. 연초에 세운 계획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예요. 그때만 하더라도 내 삶의 방향을 찾은 것 같았고, 일기장 한편에 '물고기는 역시 물에 살아야 한다.'라고 적을 만큼 삶이 충만했는데 지금은 녹조 낀 어항에서 간신히 숨만 쉬고 있어요.
단순히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말로는 부족한, 그런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읽은 책이었어요. 마음이 지쳐있는 제게 마음이 버티게 하는 건 무엇인지 말하는 이 책을 찾을 이유는 명확했죠.
마음이 지치면 본능적으로 회피한다.
"내가 요즘 자꾸 지치다 보니 피할 생각부터 하고 있었네"라며 상황 인지한다.
나 같은 경우 회피가 가장 잘 드러나는 때가 '거절'이었어요.
워낙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거절했을 때 상대의 반응이 나를 더 불안하게 하리라는 이유 때문이었죠. 그래서 제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상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어요. 거절했을 때 상대가 느끼는 실망을 버티지 못했어요. 죄인이 된 기분을.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하죠. '제발 다시 괜찮다고 해줘.' 라며 부탁을 철회하길.
A에게 터무니없는 사기를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때의 전 A에게 심하게 의존하고 있었고, 이 친구의 부재는 생각해 본 적 없었어요. 어떤 바보도 당할 사기가 아니었지만 제 마음엔 부탁을 거절할 여유가 없었어요. 결과는 제 예상이 맞았고, 전 돈과 친구 둘 다 잃고 말았죠.
반면 지금은 제게도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지인에게 부탁을 받고 거절했어요. 물론 마음은 불편했지만 그 선택에 있어 죄책감이나 부담을 갖지는 않았어요. 그건 제 선택이고, 권리니까요.
지금 생각해 본다면 애초에 거절을 못한 게 아니라 선택을 포기(회피)했던 것이었어요. 거절할 선택을 포기해 버린 거죠. 포기한 권한을 친구에게 떠넘겼으니 불행한 결과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네요.
양가감정이 있다고 해서 좋음과 싫음이 한 번에 양립하지 않는다. 좋음이 표현되면 좋음에 공감하고, 싫음을 느끼고 있으면 싫음에 공감하는 게 양가적 공감이 된다. A라는 감정은 A로, B라는 감정에는 B로 대응하며 공감하는 것이 양가적 공감이다. 없애는 게 아니라 품어주는 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오랫동안 양가감정으로 힘들었어요. 그래서 책에서 ‘양가감정’이란 단어가 반가웠죠. 좋지만 싫고, 반갑지만 불편한 것.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이 감정에 힘들어했던 건 친구 때문이었어요.
친구를 보면 항상 좋지만 불편함을 같이 느꼈어요. 이런 현상은 가깝거나 멀거나, 혹인 자주 보거나 드문드문 보던 친구여도 마찬가지였죠. 만나면 반갑고, 또 즐겁게 이야기도 나누며 놀아요. 하지만 만나기 전까진 내심 불편하고 불안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 괴로웠어요. 그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 지부터 내가 그 친구에게 어울리는 걸까 까지도. 그냥 제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라 여겼어요.
이러한 문제가 사라진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친구 = 좋은 사람이지만 불편한 존재. 라며 동일시 여겼어요. 좋은 사람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다 보니 나쁜 사람이 되어버렸죠.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만나길 꺼려했어요.
그러나 양가감정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제가 감정을 받아들임에 미숙한 부분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싫다는 감정은 싫은 거고, 좋다는 감정은 좋은 것이다. 좋아해야 할 인물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감정을 구분하려 했죠. 반면 어릴 적 저는 하나의 부분, 사소한 단점만을 전체로 해석했어요. 그가 가진 모습들 중 한 부분일 뿐인데 말이죠. 아마 그 단점까지도 애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좀 더 편해지면서 이런 시선이 변한 것 같아요.
예측술과 독심술의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것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것은 현재와 자기 자신밖에 없다. 타인의 마음속은 타인에게 맡겨두어야 한다.
타인의 배려하려는 마음이 독이 된 것 같아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보고 어느 정도 그 생각을 이해할 수 있지만 저는 그 기준을 이미 한참 넘어 그 사람의 모든 관심사를 유추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던 게 문제였어요.
그래서 배려라고 생각했던 행동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픈 것이 아닌 그 사람의 기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행동 하나하나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죠. 사람들도 그걸 아니 저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더 상대에게서 더 자유로워졌으면 해요.
그리고 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사랑을 받고 싶으면 사랑을 줘야 하며
무언가를 잘하려면 공부하고 훈련하면서도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지겨운 시간을 견뎌야 한다.
완벽한 방법을 찾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방법을 하루빨리 시작하는 게 낫다.
신중해야 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빠른 행동이 필요한 인간이 있는 법이죠. 전 그중 행동력을 더해야 할 쪽에 가까워요. 항상 생각이 많았고, 스스로 완벽하다 싶은 경우가 아니라면 움직이지 않는 헛된 완벽주의자죠. 세상엔 완벽한 것이 없는데 전 완벽함을 핑계로 습관처럼 선택하고 행동해야 할 때를 미뤘죠.
여전히 게으름을 피우는 건 마찬가지지만 선이 하나 생겼어요. 깊이 생각에 잠길 때면 그 선을 떠올려요. 이건 내 게으름과 도망치고 싶다는 회피력에 있다고. 도망치고 싶을 뿐이라고.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더 생각하지 말고 행동하라고.
심리학 책의 매력은 독자의 고민과 책의 주제가 어우러졌을 때 상담받는 느낌을 준다는 거예요. 그런 부분에서 참 시기적절하게 이 책을 만났죠. 덕분에 슬럼프도 빨리 넘겼네요. 만약 저와 같이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