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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자리작가 Jun 25. 2024

난 어떤 그릇의 사람인가? [말그릇]

[책] 말그릇

말과 관련된 부분에서 항상 고민이 많았어요.


혼자 있기를 즐기던 전 대화의 폭이 좁았어요. 그래서 대화를 나누면 자주 말문이 막혔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요. 다른 사람들의 말은 색연필로 화려하게 그린 그림 같은데 제 말은 흑색의 한 자루로 그리다 만 어설픈 그림 같았죠. 그래서 주고받는 말이 단조로웠어요. 말투도, 표현도, 거기에 담긴 제 마음도.


그래서 찾게 된 책이 말그릇이었어요.

말과 관련된 유명한 책이기도 했고, 외관이 너무 이뻤어요.

아기자기하고 예쁜 외관과 달리 다소 엄격한 내용에 혼나는 기분이었던 반전 있는 책.

말그릇은 그런 책이었어요.




말을 권력으로 여기면 곧 그것으로 사람을 통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가르치고, 바꾸고, 조종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싶은 욕심 때문에 말 안에 사람을 담지 못한다.


누군가를 바꾸기 위해 하는 말은 결국 자기중심적인 말이니까요. 그 이유는 그 사람이 나를 편하게 해줬으면 하니까요. 마치 나를 위하는 척하면서 말이죠. 그런 말 중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착하다'다는 말이었어요.

"~을 해주니 넌 착해." / "얘는 착해서 다 해줘."

이기적이고, 가장 상처를 많이 받게 했던 말들이었어요. 그래서 착하다는 말에 강박이 생길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이 나쁜 것이지. 그 말이 나쁜 게 아니에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에게서 듣는 착하다는 말의 의미는 그들과 다르게 순수히 타인을 위하는 이타적인 행동에 대한 칭찬이었으니까요.



갈등에 처했을 때 상대방의 결점과 한계를 찾아내고 당장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는데 집중하는 사람들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상대방의 죄책감을 귀신같이 건드리기 때문에 말이 깊어질수록 상황은 더욱더 나빠진다.


너보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다. 그러니 내 선택이 더 옳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거죠.

몇 마디 말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과 달리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정당한 논리로 상대를 이해하고 설득시켜야 하는데 오래 걸리고, 불편하며, 피로한 일이죠. 죄책감을 느끼는 상대방을 보며 우월감을 갖죠.

생각해 보면 저도 많이 했던 말이었네요.

그렇게라도 스스로가 나은 사람이란 걸 증명하고 싶었어요.

결국엔 부족하다는 것만 드러났지만요.



말은 살아 있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씨를 뿌려 열매를 맺기도 하고, 마음을 더 소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외롭게 하기도 하고,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히기도 한다. 말은 당신과 함께 자라고 당신의 아이들에게로 이어진다. 말은 내가 가진 그 어떤 것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정확히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을 관찰할 때 그 사람에게서 배울 점이 뭐가 있나? 찾는 습관이 있어요. 원래는 남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비판하며 자격지심을 갖게 했던 버릇에서 바뀌게 된 것이었어요. 항상 난 남들보다 부족하니 내가 하는 일이 엉망이 되거나 남들 다 하는 걸 못해도 난 원래 그런 사람이라며 합리화하던 행동이었죠.

지금은 이러한 관찰력을 통해 상대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높아졌어요. 또한 장점을 알게 되면서 저 스스로가 갖고 있던 낯가림을 풀어내는데도 도움이 많이 되죠.

말하는 것과 관련해 욕심이 많은 저지만 딱 하나만 뽑자면 제 말(글)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과 위로, 행복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마음의 공명이 잘되려면 적당한 거리감이 확보되어야 한다. '너와 나는 하나'가 아니라, '너의 곁의 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 해결로만 접근하는 것은 서로의 거리가 너무 멀거나 지나치게 가깝다는 뜻이다.


나의 고민이 그 사람의 고민이 될 필요는 없고, 조금 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 감정이 그 사람의 감정이 될 필요도 없어요.

어릴 땐 내가 슬프면 상대방도 슬퍼야 공감해 준다고 생각했어요. 네가 내 상황을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건 이해하지 않는 것이라 여겼죠. 어린 생각이었지만 그땐 그랬어요.

시간이 지나 저마다 공감하는 방법도 다름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내 감정이 그와 같지 않다고 해서 공감하지 않는 게 아니란 것도 알았어요. 그저 그 사람의 자리에서 저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것이 진짜 공감이라는 거죠.

하지만 어렵네요. 상대방과 나의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상대가 부담스러울까, 너무 멀면 상대방이 서운할까.




한창 녹음기를 틀어놓고 말하기 연습을 하던 때가 생각나네요.


처음으로 독서모임에 들면서 좀 더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말하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제가 많이 떨고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그 사람들과 좀 더 편하게 대화하고 싶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욕심이었어요. 평소 사교성도 없고, 말도 잘 안 하던 저였기에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였지만 나이 들어 말하는 연습을 하는 건 자괴감이 들었죠. 덕분에 지금은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많이 편해졌지만요.


하지만 여전히 대화능력이 더 늘었으면 하는 욕심이네요.

더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그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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