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또 올게요.

두 번째, 신경숙의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읽었습니다.

by 도토리

"아부지 손 줘봐요.. 왼손, 왼손이 어디여?"

아버지는 맹물 같은 얼굴로 자신의 손을 들어 쳐다보시다 살짝 들어 올리더니 흐릿하게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 들어 올렸다.

"으그시 앤손이지!"(이것이 왼손이지!)

분명하게 들리는 건 오른손이라는 발음보다 왼손이라는 발음이 비교적 또렷하게 들렸다. 아버지는 이런 것도 모를까 봐 하는 표정으로 실눈을 살짝 흘기셨다.

"옴마! 울 아빠 잘 아네! 왼손, 오른손"

"그러어엄!"


지난여름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한 달 여를 보내고 뇌출혈의 후유증으로 밤낮이 없는 선망 증상의 시간을 넉 달 이상 보냈다. 당신이 다니던 광주 보훈병원으로 전원하고 난 후 스스로 걷게 되셨고 겉보기에도 점차 좋아지는 것 같았다.

지난 주말 아침 아버지 간병을 하느라 병원에 다니지 못한 엄마를 모시고 다니시던 병원에 가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고속도로 차 안에서 엄마는 아버지가 재활치료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말을 하셨다. 치료하는 내내 다른 이들과 눈을 맞추지 않고 숫자도, 손과 발도 헷갈려하신다며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얼마 전 인지검사를 하고 나서 결과가 좋지 않아 동생과 통화를 하던 엄마가 우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막상 직접 듣고 나니 속이 상했다. 그때도 일부러 전화를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그 상실감을 다시 복기하시라고 하는 것은 잔인했고 나 자신도 따라 울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럼에도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사실과 기대감에 늘 희망을 품었다. 막상 현실과 마주하니 기다림의 결심이 또 무너졌다.

"엄마. 주치의가 뭐래? 그동안 좋아졌던 것 같던데 아빠가 갑자기 그러시는 이유가 뭐래?"

"뇌가 그렇다는데 어쩌냐..."

"퇴행되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이젠 치매성으로 가는 거래? 그래서 그런 거야?"

힘든 엄마를 붙들고 나 자신도 자제력을 잃었다. 뇌가 그렇다는데...로 설명이 된다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

엄마와 나는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좋아지시겠지... 엄마! 아빤 괜찮아지실 거야..."

엄마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사실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는 지난해 연말을 내내 집에서 보냈다.

아동센터에 수업을 다녀오고 나서 이튿날 저녁 전화를 받았다. 그날 수업했던 아동들 4명이 줄지어 코로나19에 확진이 되었다며. 그곳에서 두 시간 동안 수업했던 나는 그 아이들의 밀접 접촉자가 되어있었다. 두려웠다. 내가 누구를 만났던가. 동생들과 그 사이 식사도 했고 그중 누가 아버지에게 다녀왔던가... 내가 다녔던 모든 동선을 수없이 되돌리는 순간 수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확진으로 아픈 것이 두렵기보다 병원에 계시는 아버지에게, 다른 이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하여 더럭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마치 대역 죄인 된 것처럼...

수동 감시자가 된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려는 듯 집안에서 그동안 미뤄뒀던 일들을 하나씩 하기로 했다. 집안 청소를 하고 재봉틀을 돌리고, 여름휴가 기간에 읽으려고 했던 책들 중 차마 읽지 못하고 미뤄두었던 책을 읽기로 했다.


지난해 봄. 오랜만에 신경숙 작가의 신작이 나옴을 알았다.

멀리 제주에서 서점을 한다는 동향의 시인이 운영하는 서점을 알게 되었고, 여름이 한창일 때 그곳에서 그녀 책과 다른 책 몇 권을 주문했다. 갓 스무 살의 시절부터 글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녀의 작품들이 나오면 곧바로 사서 읽곤 했었다.

여름휴가가 시작되기 전날 밤. 그 책의 몇 페이지를 넘겨 읽었던가.. 오랜만에 그녀의 책은 작은 기쁨을 주었다. 나 나름대로 휴가의 첫날은 내장산 어느 산행 코스를 다녀오고 그다음은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책을 읽으리라 다짐했던 휴가의 첫날 아침.

햇살에 찬이슬이 가시지 않았던 시간. 원두를 갈아 놓고 커피를 내리려던 찰나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사고소식을 들었다.


책 표지의 하늘이 푸르다. 집만 보았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늘 찍고 보았던 J시의 하늘처럼 보이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때 샀던 책은 다른 분에게 드렸었다. 당장은 읽기가 어려웁기도 했고. 어쩌면 읽는 것이 오래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실상은 읽기가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여동생을 따라나서자 J시의 오래된 집에는 아버지 홀로 남게 되었다.>사고로 딸을 잃은 작가인 헌은 집에 홀로 남은 아버지와 함께 지내기 위해 고향인 J시로 내려오며 고향인 J시를 눈으로 써내려 간다.

헌의 시선이 닿는 곳은 나에게도 익숙했다. 그녀의 고향 J시는 내 부모님의 고향이며, 내가 태어났고 한때 떠났음에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곳이었으므로 책 속 글로 옮겨지는 곳곳의 익숙함이 당연하기도 했다. 책을 읽는 도중 나는 헌의 친구가 된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 시선이 글이 아닌 그녀가 걸었던 그 길 위의 발걸음을 따라 걷고 있었다.

이전에 내가 쓴 글에 있던 제사음식으로 올린 그 꽃 같던 달걀이 여기서도 반갑게 나온다.


나는 가운데에 칼집을 넣어 문양을 내 소복이 쌓아놓은 삶은 달걀을 좋아했다.
내가 그 달걀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버지는 곶감을 집어주려다가
노른자가 꽃 속처럼 보이는 달걀을 내 손에 얹어주었다.

익숙하지만 아버지의 낯선 이야기


누군가의 자식이지만 누군가의 어미였던 헌은 아이를 잃은 상실감을 감추고 부모의 걱정 어린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부자도, 능력이 있는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한없이 다정했고 누구보다 자식을 귀애해주던 아버지였다. 헌은 어린 시절 대흥리 다리 저편에서 걸어오던 허름한 아버지의 모습을 외면했던 순간부터 오래도록 그 미안함을 죄책감으로 남 두었다.
이 한사코 떠나고 싶었던 그 곳을 다시 돌아올 때마다 아버지는 늘 헌을 기다렸고 헌을 믿어주고 헌이에게 기둥이 되어 주었다.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준 아버지를 한때는 젊었던 그러나 지금은 다 늙고 쇠락해진 아버지를 보며 헌은 아버지가 아닌 한 사람으로 아버지를 바라보게 된다. 젊은 날 아버지가 경제적인 이유로 아니면 다른 이유로 가족을 떠나 있었던 시간들 속에서 남편과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아내기 위해 떠남을 용인했던 순간들, 헌은 자신과 다른 이들의 오래된 기억들을 더듬어 가며 온 생애의 아버지를 아버지라는 이름이 아닌 한 남자로 살아온 세월을 작가로서 담담히 읽어 내린다. 온전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통해 희생과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점철된 아버지의 다른 이름을 부르며

헌은 다시금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이야기한다.
살아내야 한다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용케도 살아낸 건 너희들 때문이었다고.


헌의 큰오빠가 아버지를 기억하는 장면. 가족들이 부모를 회상하며 쓴 글에 하나씩의 비밀이 드러난다. 아마도 너는 모르는 비밀처럼.
어젯밤은 그 기억을 붙잡고 나를 다독였네. 이제 부모의 보호자가 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그런데도 이렇게 마음이 무겁군. 이 무거운 마음을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막막하여 이렇게 쓰고 있지만 너의 대답을 듣고자 함은 아니다.
남에게 일어 나는 모든 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는 나이 아닌가.(p392)


읽는 내내 나는 많이 울었다.

다 읽을 때까지 중간중간 책을 덮고, 한참을 울고 난 후 몇 번이나 붉어진 얼굴을 씻었는지 모르겠다.

내 아버지의 삶과 나의 할아버지의 삶이 그리고 수많은 아버지들이 헌의 아버지가 살아왔던 그 세월 속에서 자꾸만 겹쳐 보였다. 굳이 알고자 하지 않았던 감춰진 그림자를 본 것처럼 그 어려웠던 시절을 견뎌오고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쩔 수 없었던 그럼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가 미안하고 아팠다.

아버지라는 이름 이전에 한 때 젊고 건강했던 한 남자로서의 삶이 얼굴에 파인 주름만큼이나 굵고 깊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이제는 늙고 아프고 자는 것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삶을 사는 아버지의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시장 입구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점심을 먹고 설 명절에 쓰일 것들을 미리 장 보던 엄마의 전화벨이 계속 울렸다.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버지가 계속 엄마를 찾는다는 동생의 전화다.

불안증상이 심해진 아버지는 십 분에 한 번씩 엄마를 찾는다고 했다. 동생은 부러 빨리 오라며 큰 목소리로 전화기 너머의 엄마에게 말을 했다.

그 역시 불안한 건 엄마도 마찬가지다. 평생 자기 몸을 아끼지 않아 허리가 굽은 엄마는 허리가 아픈 것보다 아버지 걱정에 마음이 급해졌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버지의 얼굴이 엄마를 보는 순간 달맞이꽃처럼 환해졌다.

해맑게 웃는 아버지 때문에 방금까지 발을 동동거렸던 동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쩜 이럴 수 있냐며.

"아빠! 거봐요. 엄마가 맛있는 것 사 왔네! 내가 금방 온다고 했잖아요. 그니까 내말 듣고 다음 주에도 나랑 같이 있는 거예요."

기분이 좋아진 아버지는 동생에게 그러마 약속하신다. 하지만 또다시 그 순간이 오면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다.

괜찮다 하시지만 앞으로의 당신의 삶이 그렇게 녹녹지 않음을 아버지 당신도 알고 계신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연약함을 긴 세월 함께 한 엄마에게 의지를 하실 것이다.

선망 증상으로 뇌가 잠을 자지 않았던 지난 몇 개월 동안 남의 나라 전쟁에 나간 아들을 기다리며 머리맡에 라디오를 항상 켜놓고 계셨다는 어머니를 늘 부르던 아버지가 이젠 자신의 아내를 늘 부른다.


병원을 나서기 전,

말없이 당신의 손바닥 손금을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던 아버지의 손을 슬그머니 잡아보았다. 잡은 아버지의 손은 그리 크지 않았다. 손이...이렇게도 작았었던가.

나는 아빠의 손을 손가락을 손톱을 닮았다. 여자인 나만큼이나 작은 손. 그 손으로 다섯의 자식을 키웠고 땅을 일궜던 힘이 세던 아버지.

왈칵 눈물이 났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던 그때 누워 계시던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에게 수없이 말을 했었다.

아버지 꼭 살아주세요. 살아만 내시면 바랄 것이 없다고 수없이 되뇌이지 않았던가.


"아버지 또 올게요. 엄마랑 잘 지내세요. 싸우지 말고요."

'그려' 하고 웃으며 대답하신다.

손을 흔들며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대답해 주시는 아버지가 있어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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