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는 눈이 많이 왔다.
1월의 어느 날 눈이 많이 내린 입암산의 풍경-명산이라 하여 시가 할아버지께서 그 먼 구룡포에서 당신 아버지 유해를 이 곳에 끝자락에 이장하셨다. 날이 마른날은 눈이 내려도 따뜻하지 않다. 살갗을 에는 추운 바람이 옷깃 안으로 자꾸만 파고들어 더 이상 덮을 수도 없는 몸이 자꾸만 움츠려지기만 한다.
설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일을 마치고 물건을 수집하듯 마트에 들러 제수장만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 엄마는 한 달 전부터 명절 장을 보기 시작하셨다. 그 정돈 아니지만 성수기 프리미엄으로 비싸지기 전에 제수 과일과 물품을 사 두어야 하고, 이리저리 신경 쓸 것들이 많다. 고령의 시어머니가 하시던 일을 합가 한 후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나 일이다. 장을 보고 만들고 먹고 언제부터인가 명절이 버겁게 느껴졌고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여인의 삶에서 다시 말해 며느리의 삶에서 명절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합법적인 노동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며느리가 된 순간부터 명절을 지내는 일련의 일들이 싫었던 건 아니다.
어린아이들의 설빔 장만에 늘 들뜨고 즐거웠던 젊은 날도 있었다. 내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그 옛날 엄마는 늘 내게 새해 명절엔 시장 한복집에 들러 맞춤 한복을 해주시곤 했다. 어린 나는 예쁜 한복을 입고 설 명절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붉은 치마에 색동저고리 연두색 앞섶에 매달린 옷고름을 곱게 매어 입혀두면 울 엄마의 기억 속의 나는 그렇게도 예뻤단다. 예쁜 설빔을 개어 두고 명절을 기다리는 마음이란 매일이 설레는 나날이었고 매일이 명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곤 했다. 내장 큰집에 가서는 동갑내기 사촌언니와 한복을 입고 동네 앞을 괜히 서성이곤 했다. 시내에서 살았던 나는 누가 봐도 그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제일 깨끗하고 예쁜 설빔을 입은 아이였다.
언니들 손을 잡고 말아 논 멍석 위에 올려놓은 널을 뛰기도 하고 동네 남자아이들이 치는 팽이를 따라 쫓아다니거나 연을 날리는 오빠들을 따라다니며 북풍한설 바람에 휘휘 날리는 연을 보았다. 그것만 구경거리였던가. 신작로 바로 앞에 있던 큰집은 동네 어른들의 사랑방이었다. 명절이면 큰집 마당에 모여든 동네 어른들이 스텐 밥그릇 안 작은 윷을 넣어 윷이야! 하며 던져 올리는 윷판 구경도 얼마나 재미났었는지.
명절에는 뭐라도 해도 음식이 얼마나 맛있었던가.
들기름에 고소하게 지져진 전과 맛난 고기반찬, 달콤한 생강편을 올린 매작과와 유과, 시원한 식혜 평소에 보지 못한 음식들이 가득 올려놓은 상을 보는 것이 명절의 즐거움 중 가장 으뜸이었다. 하지만 그 많은 음식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삶은 달걀이었다.
지금이야 흔하게 달걀을 삶아 먹지만 그땐 그러지 않았다. 달콤한 매작과와 고기전보다 차례상이나 제사상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건 바로 삶은 달걀을 꽃처럼 반을 잘라 칼집을 넣어 둔, 음식이라 하기에도 뭐하지만 그래도 명절 차례상에 그것이 음식으로 올려놓아졌다. 고기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니 달걀도 그랬으리라.
명절에는 어른들이 많아 내 차례까지 오지 않았지만 제사를 지낼 때면 그나마 그 차례가 오기도 했다. 지금이야 제사를 일찍 지내긴 하지만 어릴 적 큰집 제사는 12시에 지내는 것이 일례였다. 예닐곱 살도 채 되지도 않은 어린 기억 속 나는 그 삶은 달걀을 먹겠노라고 그 늦은 시간까지 잠을 애써 참았다. 하지만 애쓰고 애써도 결국은 달걀 접시를 앞에 두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우리 할머니는 말없는 분이셨다. 말만 없으셨던가. 다정한 말 한마디 해주시지 않는 냉랭한 그 성격에 무덤덤한 얼굴이 참으로 매섭게 보였다. 큰집에는 아이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금침의 구역이 있었다. 큰 방에 딸린 작은 윗방에는 갖가지 물건들이 있었는데 그 방안의 장롱 위에는 대바구니 석작이 있었다. 할머니는 누군가 사온 초코파이나 사탕 같은 간식들이나 달콤한 유과를 석작에 넣어두고 동갑내기 사촌에게만 두고두고 그것을 내어주시곤 했다.
할머니는 우리는 농지개량 조합에 다니셨던 아버지의 월급으로 읍내에 사는 우리가 충분히 잘 먹고 살 꺼라는 말을 하셨다. 실상은 그러지도 않았다. 형제가 많아 흔한 과자 하나도 쉽게 먹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나중에 엄마도 이것을 두고두고 서운하다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서야 할머니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일까? 그 자리가 아니면 그 맛난 음식들은 어린 나에게는 잘 오지 않았던 이유로 제사상을 지키고 먹고 말리라는 의지가 있었던 것이었는지 모른다.
다음날 아침에서야 깨어나 삶은 달걀을 못 먹었노라고 울던 어린 나에게 엄마가 내어주셨던
꽃 같은 달걀 두 조각.
엄마와 오래되어 이젠 가물가물한 기억 속 옛날 그 꽃 같은 달걀을 이야기를 했다.
“올해 명절 상에는 그 달걀 삶아주랴” 하신다. 그 옛날처럼 꽃처럼 칼집도 넣어 준다고 하셨다.
생각만 해도 즐겁다. 그 옛날의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 같다. 실상 옛 그 맛은 아닐지라도.
제사상에 올려놓은 꽃 같은 달걀. 할 일은 많고, 궁금한 것도 많지만 역시나 먹을 것도 많은 인생이다.
겨울나기 새들을 위한 유치원 아이들과 만든 스트로브잣나무 열매 사이에 끼워 놓았던 남천 열매 (버드 피더) -누구나 먹는 것은 중요하다. 대충 먹고 대충 하면 될 것을 그리 먹는 것에 공을 드린다며 먹는 것에 진심이라고 놀리던 동생의 말이 생각난다. 농담처럼 흘려들으면 될 것을 들을 때마다 대꾸하지 못해 늘 생채기가 났다.
그래도 흔하디 흔한 것에도 진심은 있다.
그 옛날 나에게는 열리지 않았던 장롱 위 석작 안의 음식들이 오래된 기억에 덧입혀지면서 먹는 것에 진심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흔하디 흔하다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나를 위한 밥상이라도 정성을 다한다면 그 흔하디 흔한 작은 것이라도 나에게는 특별함이 되지 않는가.
나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 흔하디 흔한 것에 담는 진심.
소나기 내린 여름의 어느 날 바닥의 물을 마시느라 사진을 찍거나 말거나 제 할 일에 집중한 제비나비 (여름형 수컷) -흙 속에는 다량원소들이 많다. 부족한 것들을 채우는 것인지도.
새해가 또 온다.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에 열심이지는 않다. 나이가 드니 구멍 나고 누벼지는 누비옷의 묵은 솜처럼 몸이 무겁다.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추억을 남겨야 한다. 명절에 어떤 음식을 해줘야 하나 나는 또 물어야겠다.
흔하디 흔한 도토리샘의 식탐 이야기.
끝.
21년 1월의 글을 갈무리를 하며 22년을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