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내렸던 첫눈과 달리 12월 첫날은 이젠 겨울이라고 신고라도 하듯 쌓인 눈은 오랜만에 작은 시골 도시를 하얗게 만들었다.
난감하다. 유치원 수업을 가야 하는데,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 오전 수업을 하기로 한 00 병설유치원 선생님이다. 토끼같이 어여쁜 선생님. 아무래도 눈이 와서 전화를 한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선생님. 오늘 좀 일찍 오실 수 있으신가요? 시간이 지나면 눈이 더 올 것 같은데, 걱정도 되고요. 그리고 오늘 학교에서 바자회가 있는데 거길 풀타임으로 참여시키고 싶어서요."
이유인즉슨 학교 바자회에 참여시키고 싶은 마음을 내리는 눈을 매개로 한 적극적인 설명이었다.
고사리 손을 가진 아가들이 바자회에서 무엇을 할까 싶지만, 아이들 나름대로 언니 오빠들과 같이 학교의 일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크나큰 학교 행사이니 마음이 얼마나 셀레였을지 생각해 보았다.
작고 귀여운 얼굴들이 함박꽃처럼 환하게 피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40분의 수업을 하기 위해서 그곳으로 20분이 넘게 차를 타고 달려가야 한다.
일찍이라는 것은 하루 전에 연락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통화를 마치던 마지막 대화에 그래도 그래도 어쩔 수 없다면 그 시간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토끼 선생님의 덧말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
바자회와 숲 놀이수업, 그 중심에 서 있는 나.
올해의 마지막 수업이었고 여러 번 날짜를 옮기는 것도 어려워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지라 나는 토끼 선생님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선생님. 지금 출발해 볼게요. 눈이 많이 오지 않으니 열심히 가면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준비를 하던 내내 머릿속으로는 최단거리를 생각하며 어디로 갈 것인지 계산을 했다.
최대한 시간이 짧게 걸리는 길로.
눈이 내렸다. 많은 눈은 아니지만 다행히 도로에는 눈이 녹아 있었다.
충분히 갈 수 있으리라 회심의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흐흐흐
짧은 길, 최단거리 길. 주문처럼 외워본다.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그 눈에 담긴 기대와 설렘을 내가 어찌 망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의 선택은 과감하게 산 고갯길 하나를 넘어 가보기로 한 것이다.
늘 넘어 다니는 길이었으니 자신 있었다.(아이 학교 가는 길이었으니 오죽 잘 다녔을까?)
차를 타고 용감하게 출발했는데 막상 도로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 시내 도로보다 그 도로는 이미 눈길이다.
하지만 얼마 전에 타이어를 바꾼 터라 이쯤이야 하는 생각에 걱정이 덜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눈은 날린다. 펄펄
고개를 진입하여 앞서가던 차가 고갯길 초입을 넘어서자마자 천천히 멈췄다. 앞차에서 비상등이 들어왔다.
깜빡깜빡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일까? 아무래도 미끌렸나 보다. 멈춘 차를 뒤로 하고 고갯길을 올라가는데 없던 초조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초조함을 애써 용감함으로 에둘러 버렸다.
'괜찮을 거야.'
그런데 속도가 붙질 않는 것이다. 고갯길 중턱을 올라가는데 바퀴가 헛도는 것 같았다.
계기판에 경고등이 자꾸만 뜬다.
오래전 남편과 한겨울 체인을 감고 대관령 고갯길을 올라가던 생각이 났다. 이런.
용감함이 무모함으로 바뀌는 순간
경사지고 굽이진 산길을 달려가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무모함이었다는 것을 미련하게도 산 고갯길 중턱을 넘어와서 뒤늦게 알았다. 차는 산 고갯길 터널을 앞두고 바퀴가 헛도는 바람에 종내는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다. 낭패다. 머릿속이 칠흑 같다.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것 같았다.
토끼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제가 무모하게 산길로 왔네요. 여긴 눈이 많이 와서 속도가 나질 않아요.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좋은 날 다시 만나야겠어요. 아이들과 얼른 바자회 가세요."
어쩌냐는 토끼 선생님의 난처한 웃음 섞인 위로를 듣고 복잡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발은 열심히 멈추지 않고 가속페달을 살살 밟았다. 움직이지 않으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속절없이 눈은 계속 왔다.
아아....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누구에게 전화를 하던지 욕을 들을 것이다.
아주 차지게. 제정신이냐며.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던 순간, 거짓말처럼 반대편 도로에서 큰 소리를 내며 내려오는 커다란 차 하나가 보였다.
제... 제설차다!!!!
아... 안도의 한숨이 와이퍼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뛰던 가슴을 한순간에 진정시켰다.
다행이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났다. 아이고 소리도 동시에.
눈이 오면 늘 여기저기 눈을 끌고 다니는 제설차를 쉽게 볼 수 있다. 이곳은 눈이 많이 오는 고장이다.
눈이 왔다 하면 '정읍답다'라는 말을 많이도 듣는다. 그 덕에 제설차는 만설이 내릴 때에는 시내 곳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외지고 외진 오지인 이곳에서 제설차를 딱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인적 드문 산 고갯길의 몇몇의 운행자들에게도, 칠흑의 바다를 헤매는 무모한 돛단배 같은 나에게도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제설차가 지나간 산길- 새벽 눈이 내리던 순간, 이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던 이들이 있었기에.
시골 면사무소에서 한동안 근무를 했던 막냇동생이 말이 생각났다.
"눈이 오면 각 마을마다 도로와 작은 샛길의 눈을 맡아 치워 주는 분들이 계셨는데 따로 댓가 없이 해주셨거든 지금은 연세도 많으시고 일할 사람들이 없어서 그나마도 힘들어. 지금은 얼마라도 유류비가 나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상시 대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다.
겨울이 되면 늘 준비하는 것. 평범한 일상을 잘 지내게 하는 것, 내가 잊고 사는 것.
누군가 나의 삶 속에서 내가 잘 지낼 수 있도록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수많은 씨실과 날실로 연결되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왜 잊고 있었던 걸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듯, 꽃도, 잎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듯이.
겨울눈은 겨울에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맞겠지.
그런데 나무에게도 눈이 있는 거 아니?
나무는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나뭇잎을 떨어트리지만 더 중요한 것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식물들에게는 꽃과 잎은 아주 중요하거든
기나긴 겨울을 보내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 가지 끝과 마디마다 작은 꽃눈과 잎눈을 숨기고 있어.
그게 바로 나무의 겨울눈이야.
나무에게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도 아주 중요하단다.
세상의 모든 생명들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없어.
그거 아니?
우리에게도 각자의 겨울눈이 있단다. 비록 지금은 눈에 보이진 않아도 말이야.
언젠가는 그 겨울눈이 어여쁜 꽃으로 잎으로 피어나겠지.
봄이 되면 우린 또 어딘가에서 만나게 될 거야.
12월의 첫날,
결국 난 수업을 못 갔다. 대신 수업을 톡톡히 잘 받았다. 무모함을 신중함으로 바꾸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