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이 있는 곳에 살아요.

정읍 사람이 가을에 내장산에 안 가는 이유

by 도토리

막 차를 주차하고 집에 가려는데 막둥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여기가 아니래! 내장산 터미널점이래."

순간 아이의 말의 의중을 눈치챘다.

"그럼 어쩌려고? 어떻게 가려고?"

"몰라, 버스도 없고 택시를 타야 하나?"

"택시를 탈 수는 있고? 그게 말이 돼?"

철없는 아이의 말에 기가 찬다.

아이는 일요일 하루 내장산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편의점의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시급이 짱짱하단다.

그곳이 마침 친정집 근처라 아침 일찍 내장 친정집 근처에 내린 아이는 시간에 맞춰 터덜터덜 걸어갔다.

가을철에는 친정도 마음대로 오고 가지 못한다.

나는 잠시 들른 집 안에 앉을 새도 없이 도로가 막히기 전에 나와 집 주차장에 주차를 했던 찰나였다.

아이의 말에 화가 났다. 택시를 탄다니. 친정집에서 10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 반은 족히 더 걸릴 텐데.

"그러면 어쩌라고! "

되려 아이는 화를 내고 전화를 끊는다. 나는 아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는 못 간다.

정말 못 간다. 길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운전은 하기 싫었다. 지척인 내장산을 가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운전하는 건 시간낭비

가을엔 정읍 사람들은 내장산을 가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서 못 간다. 차가 밀려서. 사람이 많아서.

입동(11.7)인 오늘의 내장산 가는 길
슬로 슬로 퀵퀵

춤을 추자는 것이 아니다.

삶은 느리게 느리게. 이동 시간은 빠르게 빠르게.

어느 곳을 가도 10분에서 20분 사이다. 정읍의 끝과 끝을 달려도 그 시간 사이이다. 대도시에 살다 온 지인이 그랬다. 도로에 신호등이 있는데 점멸등이라고. 신호 기다리다가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이다. 이곳은 신호등이 많지 않은 곳이다. 그나마도 요즘은 회전 교차로로 바꿨다

이렇게 좁은 도시 안에서 내장산 단풍을 보러 가기 위해 2시간의 길고 긴 차량행렬을 따라가다 서다를 반복한다는 것은 바쁘게 살아가는 이곳 사람으로선 소모적이고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을철이 제일 바쁘다는 사람들. 단풍 구경은 길가 가로수에서나 보는 것이다.

오색, 붉은 단풍이 아무리 유혹해도

단풍 할아버지가 온다고 해도 말이다.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왔던 나는 잠시 남편 직장 때문에 다른 곳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곳에 살았던 때 사람들은 나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정읍이에요."

"거기가 어디예요?"

"내장산 아시죠? 거기예요"

"아!"

정읍은 몰라도 내장산은 아는 사람들, 단풍으로 유명한 고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고향을 물어오면

'내장산이 있는 정읍에 살아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야 두세 번 말하지 않아도 잘 알아듣기 때문이다.


정읍을 대표하는 대명사는 '내장산''단풍'이다.
오래전부터 정읍 사람들은 관광객이 얼마나 많으면 내장산 근처 식당가는 가을철 장사로 일 년을 먹고 산다고 했다. 나는 어릴 적 역 근처에 살았는데 내장산 단풍철이 되면 금요일 저녁 기차에 내려 길을 걸어 내려오는 관광객이 정읍 시민보다 더 많은 적이 있었다. 그 관광객을 상대로 집에서 민박을 하셨던 엄마. 그 작은 집에 가을철마다 민박을 하고 밥을 해 먹여 돈을 벌었던 엄마는 가을철 그 돈으로 김장을 하고 쌀을 사서 겨울을 났다. 가을 단풍철은 춥고도 풍족했던. 어쩜 이 시골 사람들이 한 철 큰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고 또 하나의 자부심이었다.


내가 이곳을 떠나 있을 때 언제나 그리웠던 건 내장산의 사계절이었다.

오래전 고향을 떠나 한동안 살았던 곳은 동해 바다가 인접한 큰 도시였다. 평생을 내륙에서 살았던 나는 유난스럽게 바다 물고기도 그 비린 냄새도 아주 질색했다. 그런 원초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내가 평생을 살았던 곳을 떠나 다른 가족도 없이 덜렁 경상도 어느 바닷가 도시로 옮겨왔으니 오죽 정이 붙을 수 있었을까.

아파트 창 밖으로는 넓은 정구지 밭(그 지역 사람들은 부추를 정구지라 불렀다)이 대부분인

빛이 많았던 그 도시는 겨울엔 눈이 잘 오지 않았다.

어느 해 그곳에 눈이 살짝 내렸는데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도로가 마비가 되었다고 유치원 통원버스가 못 왔다)

눈이 왔다 하면 무릎 위까지 쌓이던 정읍에 비하면 그 정도 눈은 눈도 아닌데 하며 그 난리는 코웃음에 붙일 정도였으니. 난 그 눈 쌓인 도로를 체인도 없이 운전하고 다닌 정읍 사람들의 일상을 무용담처럼 말하곤 했다.

매번 돌아오는 계절마다 달리하는 새벽의 저밀 한 공기를 따라 난 늘 마음의 향수병을 앓았다.

결국 여러 가지 이유로 난 이곳으로 돌아왔다.


내장산이 있는 정읍에 산다고 하면 나를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내장산의 단풍 보러 해마다 가겠어요. 정말 좋겠다."

나는 내장산에 가서 가을 단풍을 본적이 손가락으로 꼽아질 만큼 몇 번 되지 않는다.

이곳에 오래도록 살았어도.

제주사람이 정작 성산일출봉 안 가는 거랑 똑같지 않을까? 봤으면 어떻고, 안 봤으면 어떤가?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셔틀버스 타는 곳까지 태워다 줄게. 박물관 다리 넘어서 있어. "

"어 걸어가고 있어"

막둥이는 엄마가 올 줄 알았다. 나쁜.... 놈.

한 번 가보지 뭐! 가다 서다를 반복하더라도. 인터넷 기사에선 내장산 단풍 절정이 입동인 오늘이란다.

물론 속은 천불이 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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