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보내는 법

꽃 같은 그대에게

by 도토리


가을이 익어간다.

노란 들녘은 비워져 가고 숲은 붉게 채워져 간다. 계절이 무르익었다는 게 이런 것일까? 1초의 망설임 없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침나절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오늘 수업이 있는 학교 병설유치원 선생님이다.

"네 선생님. 저 9시 30분까지 갈게요."

"선생님. 우리 아이들이 좀 늦어서 10시에 만나 시게요."

항상 웃음이 많고 자유스러운 선생님은 늘 시간도 자유스럽다. 흔쾌히 대답을 해놓고 나니 세탁기 속 빨래가 생각났다. 이 좋은 가을볕을 그냥 놔둘 수 없다.

여유를 부린 집안일도 마치고 유치원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칠보산 하나를 넘어간다. 산 도로를 구비구비 넘어 그곳으로 가는 길은 벌써 붉은 물든 단풍이 곳곳에 보인다. 어제 보았던 입암산의 붉음도 요 며칠 사이 가을볕이 좋아서 그랬을까? 멀리서 보아도 가을산은 이미 단풍과 목하 열애 중이다. 바람도 적당하고 들녘의 억새는 나부끼며 흐드러진다. 절기상 상강이 지나 온데간데없이 지나간 줄 알았던 잠깐의 가을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래! 오늘은 아이들과 신나게 가을을 찾으리라.


도착한 유치원은 텅 비어 있었다. 어딜 가신 걸까? 주인 없는 유치원 앞을 한참을 서성이다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선생님. 저 도착했는데 어디 가셨나 봐요?"

"네~ 여기 전에 만났던 탐방소 느티나무 앞인데 도착하셨어요?"

"네에? 어... 어디요?"

"생태공원 화장실 앞이요. 오늘 여기서 만나기로 했잖아요."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오늘날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그랬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서.

"어떡해요! 선생님!! 전 학교로 왔어요. 지금 그곳으로 내려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급한 마음에 굽이치듯 도로를 순식간에 내려왔다. 기다리는 아이들과 선생님의 얼굴이 자꾸만 그려졌다. 방금 전까지의 호기로운 여유와 달리 가을의 풍경 따윈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슴이 콩콩 뛰었다.

그저 빨리만 가고 싶었다... 아아.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내장 생태공원의 단풍


생태공원에서 기다리던 아이들과 만나는 순간 나는 입이 딱 벌어졌다.

미안한 반, 민망한 반에 달려온 길.

그런데 생태공원의 여기저기는 오색의 나뭇잎들이 색색의 색종이를 잘라 바닥에 뿌려 놓은 것처럼 가을 한철 귀한 볕 아래 곱게 곱게 바람 따라 꽃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 이때를 기다려온 것처럼.


도토리 샘이 오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바람처럼 뛰어다닌다.

가을볕이 내어 준 고운 색의 나뭇잎을 찾아보고

나무 아래 거미줄에 붉은 나뭇잎을 걸어주고, 떨어진 단풍 씨앗을 주워 한참을 날려도 보고, 떨어진 때죽나무의 열매를 벗겨 씨앗을 꺼내보기도 하며 생태공원을 제집처럼 누비고 다녔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가장 붉은 잎을 가진 신나무 아래에서

주황색으로 물든 이국적인 설탕단풍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다양한 계절의 옷을 입은 나무들을 보고 만져 보았다.

계절이 왜 생길까? 왜 단풍이 들까? 하고 말하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저만치 달아난다.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유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책에서 보고 들었으니 이론적인 것은 알고도 남음이다. 요즘 아이들은 배움이 빠르기도 하다. 세상 모든 것을 책으로 배우는 아이들이다.

하지만 숲으로 이끄는 누군가가 는 이유는 관찰자이자 경험자로서 이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계절을 느낄 수 있게 해주려 함이다. 경험적 재구성의 이론처럼 생태감수성 또한 경험하고 스스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여물어가는 열매와 계절을 달리해 빛의 색이 달라짐을 알고 나뭇잎이 물들어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오는 것을 알아채는 감각을 갖는 것. 가을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기억되고 있지 않을까

붉어서 가을인지, 가을이 되어서 붉어진 것인지..


봄을 지나 여름 한철 핀 꽃이 지고 열매가 맺혀 여물어 가니 이 가을에 다시금 꽃이 피었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 떨어져 꽃이 된 나뭇잎들을 그러쥐고 한참을 이리저리 보았다. 아무리 봐도 꽃 같다. 찰나의 아름다움, 이때만 볼 수 있는 꽃다발이다. 엄밀히 말하면 계절이 남긴 흔적이다. 겨울이 곧 올 거니까 준비해! 라며.


나에게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가끔은 필요하다. 가을볕이 좋아 그랬다며 애써 나의 실수를 말해 포장해두는 건 핑계겠지만 역시나 일이 많아 그런 것이다. 일이 많아 잊어버린 건지 잊고 싶어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지만 말이다. 주변에서 건강을 챙길 나이가 됐다고 했다. 잘 먹고 잘 자라고 한다. 공원을 걸어 나오는데 어떤 이가 찍는 사진 속 배경 뒤쪽을 지나갔다. 빨리 찍으라는 연인의 성화에 그는 저 아줌마 지나가면 찍겠다고 말한다. 피식 웃음이 났다. 생각에 난 아직도 꽃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 나도 부지런히 준비할 때가 되었다. 나를 위한 시간.

꽃인지 나뭇잎인지. 가을빛이 내어준 꽃 같은 나뭇잎들이 이젠 바람에 흩날린다.

가을이 간다. 가을은 짧기에 더 아름답고 간절하다. 이처럼 고운 태를 남기는 것은 강렬하게 기억되길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채 떨어지지도 않은 나뭇잎 가지 끝마다 이미 품은 겨울눈들이 빼꼼히 눈을 맞춘다. 그래 알고 있었어. 너도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거지?


꽃 같은 그대들. 애썼소. 내년에 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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