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간 아이들

매의 눈으로 찾아보기

by 도토리

"도토리 선생님! 여기 와서 보셔야겠어요."

'도토리 선생님'을 다니던 곳마다 내비게이션 마냥 부르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 반 담임선생님의 호출이다. 뒤를 돌아보니 느티나무 아래를 둘러싼 맥문동의 검은 열매들 있던 그곳에서 아이들과 담임선생님이 코를 박고 고개를 들지 않는다.

'뭔 일이야?'

황급히 가서 보니 맥문동의 긴 잎들이 어지럽게 뉘어진 사이로 보이는 작 앙증맞은 큰호리병벌 집이 그 반 수집광인 아이에게 딱 걸린 것이다.

떼어가려는 아이와 그것을 사수하려는 담임선생님의 노력은 눈물겹기만 했다.

"호리병 벌집이네요. 이걸 어쩌려고?"

"떼어가서 집에 가서 키울 거예요."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 순간 냉큼 그 잎을 잡아 뜯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다행히 작은 아이의 손이어서 그런지 맥문동의 질긴 잎이 쉽게 뜯기진 않았다.

"이건 작은 벌의 집이야. 너도 학교 끝나면 집에 갈 텐데 벌도 집이 없으면 속상하지 않겠어?"

"그러겠네. 이건 벌집이니 그냥 놔두는 게 좋겠어."

보기엔 아이가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 같은 기세였는데, 담임선생님의 말에 내가 찰떡같이 쿵작을 맞추니 아이가 한참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편으로는 고집을 피워 결국 그것을 가져가면 어쩌나 하는 위태위태한 마음도 있었는데 말이다.


큰호리병벌 집은 사실 어른인 내가 봐도 참 많이 탐나는 흙 항아리였다. 유약을 발라도 좋을 만큼 멋지지만 벌집도 집이다. 먹고살고 알을 낳기 위해 짓는 집.


작은 시골학교들을 다니며 아이들과 학교 주변의 숲을 다닌 지 벌써 5년이 되어간다. 학교마다 학년마다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날씨에 따라 수업의 결과 나의 생각도 조금씩 달라졌다.

숲에 관련한 놀이로, 자연물로 아이들의 정서를 충분히 보듬어 주어 생태감수성과 생명 존중감을 자연스럽게 삶 안에 스며들게 만들어 줘야 한다는 책임감에 얼마나 많은 밤들을 지새웠는지 모른다. 어린아이들일수록 순간의 집중은 하늘의 별따기다. 숲 강사는 교구빨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다양한 교구로 아이들의 시선을 잡아끌어야 하고 나름의 차별화된 수업을 진행해야 겨우 아이들이 집중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면 아이들은 그 수업을 즐거워했을까? 정작 나는 즐거웠을까?

오늘은 수업을 시작하며 나는 이렇게 말했다.

매의 눈으로 바라보기

잘 살펴보면 보이지 않은 것들이 보일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매의 눈으로 살펴보라고 했지만 정작 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아이들은 잘도 찾아낸다.

루페로 나무에 붙은 이끼의 꽃을 살피지 않아도 더 높은 곳에 붙어 있는 거미의 알집이나, 사마귀의 알집은 맨눈으로도 더 잘 찾아낸다. 나무의 이름은 몰라도 나무를 만지며 그 느낌을 어른보다 더 잘 표현하다.

한 아이가 내가 멀리서 나를 또 부른다. 있는 힘껏 부른다.

"도토리 선생님 이 꽃은 무엇이에요?"

멀리서만 봐도 알겠다. 그 꽃.

"여뀌, 여~~~ 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노안이 오더라도 잊지 않는다. 가을 하늘 아래 붉은 분홍의 꽃 색만 봐도 그것이 여뀌임을 알아채는 감각, 계절의 감각과 사랑하는 것들을 묵묵히 아는 감각.

오늘도 그냥 지나갔을 것들을 수업이라는 미명 아래, 자연을 수업하게 만들어준 아이들.

나도 오늘 매의 눈으로 아이들을 눈을 바라보았다. 나무의 사진을 열심히 찍는다며 나무를 만지는 아이들의 눈에서 반짝이는 별이 보인다.

아주 자아 알~

도토리 매의 눈으로 바라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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