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

첫번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고

by 도토리


누구나 목가적인 삶을 꿈꾼다.

바쁜 삶을 뒤로하고 어느 작은 시골에 집을 마련하여 마당 한켠 작은 텃밭을 일구고 일 년 내내 먹을 만큼의 채소를 심어 자급자족의 꿈꾼다. 가득 싼 쌈의 달콤함을 생각하며 어서 그 날이 오기를 꼭 그땐 그런 삶을 살리라 꿈을 꾼다. 하지만 가끔 사람은 미련하여 그것이면 될 것이라는 오산을 늘 놓치고 만다. 촌부의 텃밭의 삶은 늘 기를 쓰고 자라는 잡초와의 싸움이고 쨍한 여름날의 햇살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고된 노동의 현장이다.


몇 해 전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보았다. 자급자족프로젝트 영화인건가?

봄부터 겨울까지 일 년을 살아내는 주인공의 모습은 먹고 살기 위해 농사를 짓고 계절의 흐름을 따라 시선이 자연스레 음식으로 옮아가며 그것을 먹기 위해 어떠한 과정이 있었는지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 간다.

고즈넉한 시골의 풍경, 시간의 흐름에 따란 계절의 변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 작고 아담한 시골집의 마루, 그리고 갖고 싶은 아기자기한 부엌과 그릇들 외엔 별다른 감흥 없어(늘 그러한 곳에서 살아 온 나로선) 극찬의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일부러 두세 번 정도는 더 보았던 것 같다.

영화 속 토마토를 먹는 모녀 앞에서 동네 아낙이 밭에 잡초를 뽑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하며 지나간다. 그들이 꼭지와 씨를 남겨 토마토 밭에 던지면 자연스레 토마토는 이듬해 싹을 틔우고 또 그들에겐 맛있게 먹었던 토마토가 주어지게 된다. 자연의 삶이란 순환이라고 생각하며.


더 많은 토마토를 갖고 싶었다면 그들은 벌써 잡초를 걷어 냈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한 그들의 삶은 간소하다 못해 애써 자연스럽다. 하지만 먹을 만큼의 경작은 생각 보다 어렵다.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씨앗 값은 나와야 수지가 맞는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오래 전부터 부터 자급자족의 삶은 어려워졌고 필요한 땅에서 얻어지는 것 외의 생필품을 사기 위해 더 많은 이익을 내고자 했다. 이로 인해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한 대규모 농법 출몰은 당연한 일이였다. 하지만 이러한 농법은 인간에게 유익한가? 무익한가? 질문을 수없이 던지고 있었고 수많은 병폐로 나타났다.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짓는 대규모 농법을 하는 대농장의 병폐와 노예제의 부당함을 자신의 목적 있는 행동으로 숲으로 들어간 소로는 그 문제를 숲에서의 삶을 통해 수많은 사유로 이야기 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자연의 소리 그리고 월든 호수의 찾는 모든 방문자들과의 일상을 오롯이 즐거운 고독으로 선택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는 콩코드 월든 호수에서 지냈던 2년 2개월 동안 바람과 비 뜨거운 햇살을 막아줄 3평 남짓한 작은집,

최소한의 가구, 옷, 음식으로 스스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으며 도끼를 들었던 그 순간부터 이미 짐작했을 것이다. 그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생태주의적인 삶을 실천한 소로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또한 나 역시 그러하다.

남편과 나는 많진 않지만 먹을 만큼의 벼농사와 밭농사를 짓는다. 올 해는 비가 자주 내리고 연이은 태풍으로 일조량도 적어 걱정이 많다. 잡초가 무성한 들깨 밭은 어쩔는지 걱정이지만 간헐적 햇살에 놀작지근하게 익어가는 벼이삭에 내려앉은 참새 떼에게도 가을의 햇살과 바람을 내어 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여든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새들은 어떻게 하실꺼에요?”

작년 참새 떼들을 쫓으려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계신 어머니께 그러지 말자고 해두었던 기억이 났다.

“참새들 먹고 남은 거 우리가 먹어야지... 그냥 놔 둘란다.”

어쩌면 벼의 일부는 새들을 위해 자랐던 것이 아닐까?

내가 이 콩들의 씨앗을 소중히 다루어 가을에 수확한들 그게 어쨌다는 걸까?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살핀 이 넓은 밭은 나를 주된 경작자로 의지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자신에게 물을 주고 푸르게 가꾸어주는 더 친절한 자연의 영향력에 의지한다. 이 콩들의 결실을 내가 다 수확하는 것도 아니다.
이 콩들의 일부는 마멋을 위해 자란게 아닐까?
-월든 중-


농가의 삶은 목가적이기 보다 고된 노동이 동반되는 삶이다.

하지만 익어가는 무화과를 말벌과 나비에게 내어줄 여유와 그것을 보고 즐기는 느긋함이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아름다운 자연이 보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