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아, 아무리 불어봐라. 내가 포기하나.

봄 출사표

by 도토리


바람아, 아무리 불어봐라

내가 포기하나


앙다문 입술사이로 노란 꽃니를 드러내며 웃습니다.


봄은 지척 인대,

때를 모르는 눈발이 나립니다.

그래도 지치지 않는

꽃은 피고 새 잎은 틔울 테니

주저앉아 울고 날아갈 그 마음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봄인 게지요.


물결을 이는 눈발의 찬바람도

산허리 지그시 넘어가는 햇살에

부끄럽지도 않은지

잠시 그 시간 속에 머물다 갑니다.


실로 봄이 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산수유의 꽃봉오리. 산수유나무 꽃은 봄소식을 상징한다. 산에는 생강나무 꽃이 피는데, 둘은 비슷하여 헷갈리기 싑다. 향을 맡아 생강향이 나면 생강나무로 구별하면 되겠다.




작은 시골학교 초등학교에 일을 보러 왔다가

잠시 본관 뒤편의 있는 학교 작은 숲을 걸었다.


자연 관찰자의 생각은 늘 자연의 시간을 탐한다. 그곳이 어디든

가을날 학교숲 풍경 속에서 아이들은 색색의 나뭇잎을 줍느라 모두들 바쁘다. 나뭇잎 보물찾기 중

그곳의 가을은 참 아름답다.

단풍을 입는 다양한 나무들과 갈잎의 나무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 잘 꾸며진 숲 같다.

일의 특성상 학교숲을 여럿 다녀보았지만

이유를 불문하고 여러 종류의 나무로 학교 안 작은 숲을 꾸미기가 쉽지는 않다.


잘 꾸며진 노력들로 다양한 수종과 사시사철 피는 꽃들이 있어 작은 숲에서는 아이들과 즐겁게 숲 놀이를 하곤 했다.

재미난 건 해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아직도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아이들에게 시선을 잘 떼지 않는 것인지.

지난 여름날에는 떨어진 꽃을 보고 노각나무가 있는 것을 알았다.

수업하다 말고 내가 참 좋아했더랬다.


거닐다 보니

작년 가을 끄트머리에 유치원 꼬맹이들과 함께 나무의 이름표 줄에 꽂아 두었던

백합 나뭇잎과 갈참 나뭇잎이 고대로 남아 있었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던 나뭇잎들

아이들이 떠나간 자리

겨울의 빗장을 움켜 쥔 수문장처럼 딱 버티고 그곳을 지켜온 것 같이 보였다. 배시시 웃음이 났다.

꼬맹이들은 알고 있으려나.

"우리는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을.


겨울의 끝은 맑은 하늘이지만

춥고 건조한 2월의 바람은 차고 간혹 눈발이 날렸다.

그럼에도.

산수유나무는 얄상한 나뭇가지 마디 끝마다 겨울 내내 품어 온 노란 꽃살을 내였다.

차가운 눈발에 굳건한 산수유의 꽃망울을 보고 있노라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걷다 보면 늘 이전에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한다. 흔적들.

노각나무 아래 떨어진 갈참나무 열매. 그 안에는 이미 싹을 틔울 영양분이 충분하다. 털 이끼 위에 떨어진 건 신의 한 수!!


작년 가을 떨어진 토토리가 보였다. 아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잘 숨어 있었나 보다.

그러다 미처 보드라운 땅에 진입하지 못했던 것일까. 겨울을 춥게도 났다. 숨바꼭질은 잘했는데 말이지.

그래도 싹을 틔우길 바라는 마음에 손가락으로 쏙 밀어 넣었다. 봄기운이 그것을 그렇게 해주리라는 실낱은 희망도 함께 담아서.

되돌아 나가려는데 오래전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이야기가 햇살에 반짝거렸다.

한 겨울 지하수에 손을 담그면 따뜻함이 혈관의 곳곳을 스미는 것처럼 갑자기 온몸에 돌돌돌 그 물소리가 났다.

몇 년을 오가며 보아왔던 곳인데 나는 그동안 무엇을 보았을까?

그 마음을 왜 이제야 눈치챈 것인가.


개교 백주년이 된 학교숲의 기념식수는 16년이 되었다. 그때의 그 학생들은 서른 즈음의 청년들이 되었겠다. 그들이 남긴 나무들이 아이들에게 즐거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휑휑한 2월의 찬바람 아래

발밑에는 겨울을 지내온 풀들이 푸르고 붉은 잎을 내보인다.

봄까치꽃(큰개불알풀)

찬 바람에도 꽃을 피운 봄까치꽃이 한때의 빛을 따라 시간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작은 들꽃들이 오후의 시간이 되면 꽃잎을 닫고 다시 빛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때는 어쩌지 못한다. 때려죽인다고 해도.


누군가는 떠나가고 또다시 채워지는 그곳

그들이 남긴 산수유의 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지척의 봄을 기다리는 자연 관찰자의 희망도

어쩌면 백 년이 지나도 내가 남기고 싶은 봄

그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 것처럼.



봄을 출사 하다. 토토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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