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반 겨울반

가을. 곱게 아름답게 보내주기

by 도토리

"지금은 어떤 계절일까?"

11월의 아침 유치원 꼬맹이들에게 묻습니다

"가을이요! 겨울이요! "

여기저기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느라 옆 친구의 의견에는 타협할 생각을 전혀 질 않습니다.

말 귀가 트인 초등학생이면 입동이 지났으니 절기상 '겨울이다'라고 말해 주겠는데 천방지축 우주의 중심 유치원 꼬맹이들에게는 전혀 먹힐 이야기가 아니다.

"음ᆢ가을인가? 겨울 아니고? 아침과 저녁엔 제법 추워서 이렇게나 옷을 껴 입었는데, "

나는 조끼에 패딩까지 두 겹으로 입은 옷을 보여줍니다.

너무 많이 입었다며 꼬맹이 친구들이 까르르 웃습니다.

그런데도 그중 한 아이는 한사코 겨울이 아니랍니다.

"이, 선생님이 그것도 몰라요?

아직 눈이 안 왔잖아요. 그러니 가을이에요."

아하! 름의 명백한 논증을 갖춘 이유요.


그런데... 전 분명 겨울의 냄새를 맡았던걸요.

어찌 된 걸까요?


어쩌면 말이에요.

겨울은 오지 않은 게 아니라 잠시 기다리는 중일 수도 있어요.

저기 어디 단풍잎 끝자락, 은행나무 아래 노란 은행잎 사이 그것도 아니면 가장 맨 높은 곳 까치밥 근처에서.

겨울이요! 하며 눈이 오기를요.


찬바람이 불어 계절이 바뀌니

즘은 비염 알레르기가 심해져 콧물과 두통이 아침잠을 깨웁니다. 영락없는 절기의 전환 근본 없는 알레르기 역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계절이 바뀔 시기가 되면

신기하게도 코끝에서 느껴지는 새벽 공기의 무게가 계절마다 다르곤 했답니다.

바람에서 느껴지는 한 줌의 흙냄새, 공간을 채운 이슬의 찬기로 말이에요.


어릴 적 시골 큰집이 있던 마을은 새벽 연무가 곧잘 내리곤 했어요. 아침이 되면 집집마다 깊은 아궁이 속에서 피어오르던 굴뚝 연기와 함께 그 계절에만 맡아지던 계절의 냄새가 지문처럼 변하지 않아 특유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어요.

어린 시절 찬기를 품은 안갯속을 뛰어다니서 맡았던 알싸한 그 냄새들은 어른이 되었어도 어느 때에는 봄으로 어느 때에는 가을로 불쑥불쑥 기억에서 튀어나와 그 순간을 기억하게 하곤 했어요.

어쩌면 특별한 계절의 냄새를 통해 시공간의 정서를 고스란히 기억하 위해 스스로 각인되었던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온몸의 신경세포들이 주변 공기 속에서 냉큼 알아차리고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오! 이제 곧 겨울이 오겠군!



우리가 숲의 냄새라고 말하는 식물들의 다양한 항생물질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곤충처럼 전적으로 그건 제가 가진 동물적인 감각이었을지도 모를 노릇이지요.


가을반 겨울반

요즘은 예전과 달리 겨울이 따뜻니다. 계절의 선이 흐려지고 그 선을 오고 가며 일 년의 달을 셉니다. 그래도 키 큰 나무들과 숲을 이루는 많은 식물들은 잎을 물들이고 떨어트리며

겨울을 준비합니다.

요즘은 단풍잎 한 줌과 은행잎 한 줌을 움켜쥐고 가을을 보내줘야 하는 시간을

자꾸만 미루고 있는 것 같아요.

가을을 보내주고 싶지 않은 사소한

마음 욕심인지도.


이젠 보내주려고요. 가을

곱게. 아름답게.

잘 가요.



도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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