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왼손잡이앤 Dec 02. 2021

 붕어빵을 사 오시던 그 환자분

물리치료사의 퇴사 이유 중 하나

“김 선생... 그 00 환자분 기차에 뛰어들어서 자살하셨다고 하십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서 탈의실로 갔고

거기서도 소리 내어 울 수가 없었다.

오후 3시에 예약되어 있던 환자였다.



그 환자는 질문이 항상 똑같은 분이셨다.

"선생님, 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 


그 당시 3년 차 물리치료사라서 환자분께 

뭐라고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었다.


"원장님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완전히는 아니지만 조금씩 좋아질 거라고 하시던데.... 

그게 벌써 6개월 전입니다..... “ 


나의 짧은 소견으로 보아도 

환자의 팔과 다리는 쉽게 좋아질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선생님" 



2004년 날씨가 무척이나 더웠던 어느 날 교통사고 환자가 오셨다. 

다른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를 위해서 우리 병원으로 옮긴 환자였다.


선한 눈에 쌍꺼풀이 짙고 얼굴이 제법 말끔하게 생긴 그는 

나의 환자로 정해졌고 환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힘든 직장 생활 위로가 된 소주를 한잔하고서

4차선 길 건너편 집으로 얼른 가고 싶은 마음에 무심코 하게 된 무단횡단이 문제였다.


정신을 차리니 병원이었고 한쪽 팔과 다리는 움직이질 않았다고 말이다.


중앙선까지 가다가 뒤로 다시 휘청거리며  달려오던 차에 부딪쳐서 

운전자 차 수리비에 보험 처리를 받지 못한 수술비와 치료비

거기다가 일도 못하게 되니 가계에 엄청난 타격이 생겼다고

눈시울이 붉어진 그는 차마 말을 끝맺지 못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겠다고 하면서 같이 파이팅하고는  치료를 시작했다.  


나는 그 환자 덕분에 남아서 공부라는 것도 해 보았다.

관절 가동범위를 좋게 하려고 고민하고 지도교수님께도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좋다는 운동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많이 힘들어했지만 예약 날짜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치료하러 오셨다.  


겨울에  붕어빵을.. 여름에는 하드 바를 손에 들고서 

어색한 미소를 지으시던 그분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분명히 희망을 품고 가셨는데... 

이틀 동안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까? 


이틀 전 내가 그에게 건넨 마지막 한마디,

“00님 오늘도 재활 운동한다고 수고 많으셨어요.  

집에서도 열심히 하시고 모레 뵙겠습니다."


나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했던 그 환자의 소식이 나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었다. 치료사로서의 자질이 너무 부족했구나.. 

나 말고 좀 더 유능하고 좋은 치료사를 만났다면? 


나는 그 환자의 장례식장에 갔지만 차마 들어가지 못했다.

그 환자의 아내와 자녀분들을 볼 자신도 들어가서 조문할 자신도 없어서

그냥 우두커니 서 있다가 다시 돌아오고야 말았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나의 부족한 실력을 탓하면서

그렇게 슬픔과 방황으로 매일 술을 마셨던 그해 거의 1년이 지나갈 무렵 알게 되었다. 


그 환자 아내가 준 이혼 통보... 환자에게 너무 소중한 

가족의 해체가 그렇게 그를 벼랑 끝으로 밀었던 것을...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힘든 재활 기간을 묵묵히 견딘 건데 

얼마나 허망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그 결과가 가끔씩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드는 환자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래서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다.


바로 환자들의 가족들이다. 자식과 아내, 남편 , 부모님

그들이 전과는 달라진 자신의 팔과 다리를 보고서 좌절하고 힘들어하고 다시 일어서고 하는

힘든 병원 치료를 견뎌낼 수 있는 것도 바로 가족들의 응원과 위로 그리고 사랑이었다.


간혹 돈이 문제가 될 때도 있긴 했지만.... 돈보다는 가족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크다는 것

즉, 몸의 상처보다는  마음의 상처가 환자들을 더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한다는 것을

3년 동안 병원에서 많은 환자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사직서를 냈지만 처리되지 않았고 주위 동료들의 위로와 격려로 

다시금 힘을 내어 일을 시작했지만 늘 두려웠다.


나는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환자들과 사회적 거리를 여전히 두지 못했다.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저 따뜻한 한마디

어쩌면 오늘의 이 말이 누군가에게 건네는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겨울만 되면 대부분 크리스마스를 떠올리지만 나는 여전히 그분이 생각난다.

팍팍한 상황에서도 붕어빵을 사 오시던 그분의 정이 아직도 나의 가슴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에서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00학번 - ㄱ자 책상을 만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