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르세데스 Jan 17. 2024

나는 지방출자출연기관 일반 행정직 8급 직원입니다

부서회식업무

몇 개월 지나고 보니 난 전화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공공근로를 하시는 분이 오전 10시에 오셔서 자리를 잠시 비운 직원을 대신해 전화를 받고 계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전화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이는 없었다.


전화를 대신 자주 받는 일이 많아졌음에도 난 그저 그 현장 업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매주 월요일 9시 반, 주간업무 시간에 간단하게 있는 업무 브리핑 때도 동료들의 업무와 일정에 대해, 혹여 연차나 병가로 자리를 비우는 것도 기억해 두려 노력했다. 심지어 매주 화요일에 있는 부서장 회의의 회의록도 꼼꼼히 읽었다.
하지만 읽어도 이해되지 않고 눈에서 겉도는 자료가 있었으니 그것은 "지방출자출연기관 예산편성지침"이었다. 그동안 책은 1,000여 권 읽었고 서평도 그의 반쯤 썼기에 나름 문해력을 갖췄다고 하는 나이지만 그 자료는 도통 무슨 말인지 쉽게 숙지할 수 없었다. '이건 뭔 말이지? '하고 처음 겁을 집어먹고 난 이후 다시 볼 엄두도 나지 않을뿐더러 사무관리비 집행을 첫 행정업무로 시작하고부터 이런저런 일들로 바빠졌기에 볼 여유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별것 아닌, 사무용품 산다고 견적서 받고 품의 올려 결제하는 일 모두 전에 해보던 일인데 왠지 햇병아리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느낌의 나는 사소한 일처리 하나하나가 생소했다. 그런 내가 두 번째로 한 굵직한 일은 부서회식을 진행한 일이다. 그것도 내 업무라고, 갑작스레 점심 회식을 잡아보라는 과장님 말씀에 장소는 어디로 할지, 차는 몇 대를 배차하고 누구 차를 배차할지 누가 어느 차에 탈지 체크하고 일정을 잡아야 했다. 제일 어려운 건 아무래도 음식취향을 모르는데 모두가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식당을 예약하는 일이었다. 잠시 고민한 채 남편에게 물어 회식 장소를 여럿 추천받았고 그중 고심해서 고른 곳이 낙지볶음과 보쌈, 막국수를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어, 오*집으로 간다고요? 거기 제가 엊그제 아무개랑 갔는데 막국수도 다 불어 나오고 보쌈도 비계가 많고 넘 별로였는데....."
'물에 빠진 고기류를 싫어하는 동료', '든든하게 먹었다고 느낄 만한 음식', '적당한 가격', '열댓 명이 한자리에 앉을 수 있는 곳', '넉넉한 주차 자리'등 등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해서 겨우 고른 곳인데, 본인이 얼마 전 가봤다고 별로니 다른 곳으로 택하는 게 어떻겠냐는 동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결국 난 그곳으로 정했다. 난 입사한 지 2.5준데 어색한 동료들을 차에 직접 태우고 이동하는것도 도맡아야했다.
와중에 여러 조건을 따져가며 어느 정도 만족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긴장해서 그만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식당 예약을 했는데, 날짜를 명확히  언급했어야하는데 시간과 인원만 강조했나보다.

그날 점심 과장님과 몇 명이 함께 백반을 먹으러 가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익숙한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낙지 보쌈세트 예약 주문하신 ○○○씨 아니신가요? 음식 세팅 완료됐는데 아직 오시지 않아서요."
"아니요. 누구한테 전화 거셨나요? 전 안 했는데?"
전화를 끊고 나자 등줄기로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느낌이 싸해서 밖에 나와 수신된 번호로 다시 걸었다.
"아......" 전화 통화를 하고 불길한 느낌이 훅 끼쳤는데 정말 새하얗게 질려 하마터면 소릴 지를 뻔했다.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어머나 제가 날짜를 다시 한번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나 봐요. 오늘이 아니라 내일 예약한 건데... 당연히 미리 예약을 하지 않나요?..."

1,2초 스치는 생각이 '식당에서 예약날짜를 다시 한번 정확히 확인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라고 세게 말을 할까, 했지만 결국 나와 우리 동료들은 내일 그 장소에 가야 했기에(다른 곳을 다시 엄선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몇 번이고 죄송하다며 (1 테이블에 해당하는 미리 나온 ) 음식 포장해 가면 안 되겠냐고 말씀드렸고 식당에서는 "어쩔 수 없이 직원들이랑 먹어야겠네요. 괜찮으니 내일 오세요."라고 이야기해 주셨고 "정말 죄송해요. 저 블로그에도 인스타그램에도 꼭 후기글 올려서 가게 홍보해 드릴게요."라고 말씀드렸다.

식당에 들어와 막 나온 음식을 마주했는데 어찌나 밥알이 까끌거리던지 식사를 하기가 힘들었다.  나의 실수인지, 식당 측 실수인지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당혹스러웠지만 다행인 건지 함께 식사를 하러 온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3편에 계속...


#직장인에세이
#햇병아리신입
#경력공백 딛고 직장인

작가의 이전글 나는 행정 일반직 8급 직원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