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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리댄 Nov 18. 2021

나야 뭐 별일 없었지. 그렇게 말한 날도 글을 올렸다.

어제의 오늘의 내 일

 블로그에 일기가 꽤 쌓였다. 투데이 수가 올라가는 건 좋다. 아직 아는 사람만 들어오는 것 같지만. 그래도 조금씩 느는 기분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 sns를 봤다며 인사를 건넬 때는 어딘가 숨고 싶다. 인스타 잘 보고 있어. 블로그 잘 보고 있어. 이 말이 '너 사실 단정하고 밝은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들린다. 아무래도 속내를 털어놓는 건 불안한 것들, 멋지지 않은 점들을 드러낸다는 거니까. 몰라. 보는 사람은 심드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에겐 가장 가까운 애인에게조차 조심스러운 이야기들이다.​


 나는 애인과 매일 한 시간 가까이 통화한다. 보통은 일상 이야기다. 오늘은 무슨 일 없었어? 나야 뭐 별일 없었지. 그렇게 말한 날에도 블로그에 일기를 올렸다. 오늘 일들이 비밀이라서가 아니다. 그가 내 블로그를 종종 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냥 원체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서툴러서 그렇다. 사실 그가 블로그를 예전보다 덜 방문하면 살짝 서운하기도 하다. 그래도 그의 입에서 "너 어제 쓴 글 봤어."라는 말을 듣는 건 두렵다.

 오늘 오랜만에 그를 만났다. 요새 블로그에 글 자주 올리던데. 화끈거렸다. 다 보고 있었구나. 내가 가족에 대해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생리에 스트레스받아하는 걸, 이루지 않은 꿈에 미련이 있다는 걸 다 알고 있구나. 요새 각 잡고 글을 안 쓰다 보니 문장도 어색할 텐데. 그가 내 모습들에 실망할 것 같았다. 그와 통화하면서는 아무 내색 안 하다가 블로그에 주절주절 글을 쓰는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말을 돌렸다.


 피자를 먹었다. 와인도 마셨다. 새로운 보드게임 세트를 구경했다. 서로를 꼭 껴안았다. 애인은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

잉잉아.
블로그에 계속 글 써. 네가 네 속 이야기 잘 못한다고 이야기했었잖아. 내가 계속 계속 들어가 볼게. 나는 진짜 네가 다 좋아.


​​​​​​


 그 담담한 말이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모르겠다. 냉큼 울어버렸다.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부분인데 바라봐주니 고마웠다. 몇십 년은 모르고 산 사람이다. 애인과 감정을 나눈다는 건 뭉클하다. 계속 이해하고 이해받으며. 계속 오해하고 오해받아도. 우리는 집을 나서려 했던 시간 10분 전에 맥주 한 캔을 더 땄다.




언젠가 썼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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