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밍겔라 1999.
세상이 그대에게 속을지라도.
근데 영화 진짜 잘 만들었다. 이제는 공식과 같은 흰 옷에 번지는 혈흔, 더 나아가 깨진 머리 대신 피를 뒤집어쓴 조각상. 피아노 뚜껑에 비치는 톰 리플리의 얼굴이 두 개로 갈라지는 것도 적절했다. 이 현상을 우연히 발견했을 것 같은데 작품에 잘 녹여낸 듯하다.
허투루 쓰지 않는 재즈와 오페라도 압권이다. 디키는 색소폰과 드럼을 좋아한다. 둘 다 보통의 오케스트라에서 사용하는 악기가 아니다. 취향에서 드러나듯 자유분방하고 재지하다. 반면 톰은 피아노 조율가이자 오페라 공연에 큰 감동을 받는다. 디키를 따라 할 수는 있으나 자연스럽게 디키가 되지는 못한다. 반면 피터는 피아노를 굉장히 잘 아는 인물이다. 톰 같이 다정하고 디키 같지 않게 눈치 없다. 디키인 톰, 혹은 디키 친구 톰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톰 리플리 자체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톰은 피터에게는 슬쩍슬쩍 자신의 침침한 내면을 드러낸다.
영화는 내내 비극적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씬 속 피터는 영화 그 어떤 장면에서보다 어두운 곳에 있었다. 거울들에 둘러싸여. 외면했던 톰을 마주하며. 세상이 그대에게 속을지라도 모두를 속일 수는 없다. 살아있는 한 본인은 죄의 영원한 목격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