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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잘꾸 Nov 04. 2019

거실과 안방 사이에서

서로 다른 온도

처갓집에서 느낀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두 분이서 주무시는 공간이 같지 않다는 것.

장인어른은 거실에서 주무신다. 이유는 몸에 열이 많아서 그렇단다. 반대로 장모님은 안방에서 주무신다. 차가운 거실보다 따뜻한 안방을 좋아하시기 때문이다. 



이 별거 아닌 사실이 나에겐 엄청난 불편함이 될 줄 겪어보니 알게 되었다. 보통의 집 구조를 떠올려보면 방과 방 사이에 거실이 존재한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내가 자는 작은 방문을 열고 나오면 거실에 주무시는 장인어른 얼굴 부분을 볼 수밖에 없다. 거실과 반대 방향으로 꺾으면 예전 처 할아버님이 쓰시던 빈방이 나오고 그 방을 통과해야 화장실을 갈 수 있다. 공동의 공간으로 사용되는 거실이 장인어른의 개인 공간을 겸하고 있는 것이다.      



밤에 배가 고파서 라면을 먹을 수도 있고 TV를 잠시 볼 수 도 있다. (안방에도 TV가 있으므로) 하지만 장인어른이 일찍 주무시기에 나의 공간은 작은 방 한 칸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잠들기 전 잠시 산책하는 습관이 있다. 복잡한 생각도 정리하고 잠도 잘 오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간다면 마을은 온통 어둠에 휩싸여 작은 발소리에도 온 동네 개들이 짖기 시작한다. 논길로 나가지 않는다면 밤에 산책하기도 쉽지 않았다.  

    


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농업 일지를 작성하고 컴퓨터를 잠시 하거나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밤 귀가 밝으신 장인어른은 내가 새벽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방문을 열면 금방 깨시는 눈치였다. 최대한 살금살금 화장실을 다녀오고 방문을 닫아야 했다. 방문엔 출입을 알리는 장식용 종이 달려 있어서 문을 열 때마다 ‘딸랑’ 소리가 났다. 이걸 불편하게 왜 달아 놓았는가 생각이 들면 떼어 놓았더니 다음날 장모님이 다시 걸어 놓으시더라.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정리하고 깨끗이 정돈하는 성격을 알기에 “이 장식의 제자리는 내 방문이구나.” 싶어 장식용 종을 다시 떼어놓지 않았다.    

  


수학여행이나 친한 친구와 단체 여행을 가서 누군가는 거실에서 자고 누군가는 방에서 자는 상황이면 모르겠는데 “이제 계속 이렇게 살아야 되나?” 싶어 혼자 피식 웃었다. 거실과 안방의 온도는 확연히 차이가 나고 있었다. 작은 방 안에서 느끼는 나의 온도는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가야 하는데 아직 낯섦은 계속되고 있었다. 

한 지붕 아래 사는 세명의 온도는 잠자리에도 뚜렷이 달랐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기에, 서로 달라도 많이 다른 세 사람이기 때문에.      



그 후에도 물을 마시기 위해 화장실을 가기 위해 답답함에 마당에 나가기 위해 내 방문을 나설 때면 종소리와 문 여는 소리로 나의 위치를 두 분에게 알릴 수밖에 없었다.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다른 공간에 머물고 싶었다. 최대한 빨리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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