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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잘꾸 Nov 05. 2019

네! 아~네! 넵!

나는 농부가 될 수 있을까

바야흐로 10월이 되었다. 

들판에 곡식은 황금빛이 되어갈 때 장인어른이 낫을 하나 쥐어주면 따라오라고 하셨다. 

수많은 논자리를 아직 나는 다 알지 못했다. 보통 ‘영식이네’ , ‘상옥이네’ , ‘감열네’처럼 부르기에 단번에 외워지지 않았고 논이 경지정리를 하면서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헷갈리기도 했다.      

추수 때 콤바인이 들어가는 공간을 수작업으로 베기 위해 온 것이다. 




콤바인의 길 베기







이름하여 ‘갓돌림’이라 부르던데 논이 네모의 모양이라면 논의 입구와 네 모서리 부분을 일정 베어주는 것이다. 베어놓은 벼는 모아서 묶어 발을 세워놓는 것이다. 이렇게 해 놓아야 콤바인이 베면서 모서리에 가면 방향을 쉽게 바꾸어 또 베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시골 출신인 나는 알았으면 좋겠지만 몰랐다. 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지나가다 눈으로만 보았고 아주 어릴 적 희미하게 풍경만 기억날 뿐이었다.      

마른 볏짚단을 가지고 와서 두 갈래로 들고 엮어서 길게 만들었다. 그 위에 낫질로 베어놓은 벼를 차곡차곡 모아 짚으로 묶어서 두 개씩 들고 서로 기대어지게 세워놓아야 했다. 





10월 농촌의 흔한 갓돌림


묶는 작업은 ‘메까리’라고 부르시던데 요령이 없으니 잘 묶이지 않고 쉽게 풀려 버리기 일쑤였다.      

장인어른은 슬슬 짜증을 내시기 시작했다. 

“자 봐!” 

“이래 잡고 놓고 묶고..”     

“네... 아네!”      

“꽉 세게 묶어!”

“벼를 벨 때는 최대한 아래를 베어야 힘이 덜 드는 거야!”     

“네... 아네!”      

장인어른은 한 번의 낫질에 3~4줄을 베시는데 난 잘 되지 않았다. 당연히 속도도 더디게 되었고 직선으로 두 구간씩 맡아서 나눠했지만 느려 터진 내 작업 속도를 멀찍이서 지켜보시며 좀 빨리 하라는 눈치를 주셨다.      

허리는 또 왜 이리 힘이 들어가던지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마음은 바쁘고 속도는 안 나고 묶는 건 잘되지 않고 며칠 동안 끙끙 대며 애를 썼다.      

힘에 부칠 때면 가져간 새참을 먹으며 쉬곤 했다. 

소주는 필수 새참이었다. 날씨는 가을 치고 제법 더웠지만 미지근한 소주를 꿀꺽 삼키고 안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알싸한 술기운이 온몸에 퍼지며 알 수 없는 기운이 솟는듯한 착각을 안겨준다. 소주 네가 없었다면 쉬지 못했을 것이다.      


논 안에는 메뚜기가 흩뿌려지듯 날아다녔고 간간히 메뚜기를 잡는 사람들이 논과 논 근처에서 서성이며 열심히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걸 언제 다한담?” 

“장인어른은 지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내가 베고 세워 놓은 갓돌림 흔적들은 온전치 못했다. 죄다 쓰러지고 넘어지고 풀려버리고 제대로 서있는 게 별로 없었다. 바닥에 넘어지면 습기 때문에 벼가 썩고 싹이 나면 먹지 못한다. 건조도 잘 안되기 때문에 까맣게 변색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논에서 베어 나가는 방향도 한 방향이었고, 5조 6조처럼 콤바인이 논의 몇 줄을 베어 나가는지에 따라 몇 줄을 베어놓을지 정해졌다. 우리는 6칸을 베어야 했고 베는 공간은 콤바인 길이를 감안하여 넉넉히 베어야 했다.      

갓돌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면 지쳐 있었다. 종일 논에서 잔소리를 들어서 너덜너덜 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장인어른은 계속 말하셨다. 

“계속해봐야지!”     

집에 오면 장모님에게도 말하셨다. 

“메까리를 못해 메까리를..” 

“그러니 다 풀리고 안서는 거지..”     

“네... 아네!”      

그러면 장모님은 옆에서 거드신다. 

“에효 우리 안서방 갈길이 구만리인데..”

“장인 하는 걸 옆에서 잘 배워!”

“모르면 자꾸 묻고!”           

“네... 아네!”      


일할 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네... 아네!”였다.

대답 어조로 말하는 이 말이 지겹도록 입안을 맴돌았다. 

모든 일에 부딪힐수록 온순해지기 시작했다. 잘 알지 못하니 그저 시키는 대로 갈 수밖에 없었고 하면서도 이게 맞는 것인지 궁금해했다. 

그러니 그냥 시키는 대로 하게 되었고 YES가 되든 NO가 되든 확인을 받아야 했다. 

YES라면 말없이 넘어가고 NO가 나온다면 다시 잔소리 재방송이 되었다.      


“뭔 말인지 아직도 못 알아들어?”


짜증 섞인 말투를 받아들여야 할 때 말의 내용보다 상대방의 표정과 분위기 억양 등에 더 신경을 쓰는 성격 탓에 나는 늘 한발 늦고 생각이 짧은 사람으로 각인되기 시작했다.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가야 할 때 묘한 거부감이 깊은 곳에 움트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거나 시작할 때 우리는 움츠려 들고 낯설기 그지없다. 익숙해지고 잘할 수 있기 전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배워야 한다. 당연한 거겠지만 초보니까 칭찬보단 훈계나 질책이 자주 따라왔다. 칭찬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고 칭찬에 목말라 있었다. 무엇이든 좋으니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칭찬을 많이 받을수록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는 나라는 사실을 모르시겠지.      


나는 농부가 될 수 있을까?

잘해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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