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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잘꾸 Nov 05. 2019

삐 아저씨

꽐레~꽐레~ 츠페!

   

일을 잘한다는 것! 그 기준은 무엇일까?      


10월 중순에 감을 따기 시작했다. 감을 따기 위해 일손이 많이 부족했고 감을 깎고 매달기 위해서도 일손은 부족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바쁜 시기가 왔고 저마다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 노동력은 거의 비행기를 타고 온 외국인 일꾼들이었다.       

작년에도 왔다던 삐 아저씨는 중국에서 오셨다. 워낙 일 잘한다는 말을 계속 들어왔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나는 묻혀 버릴 거 같아서 말이다.      

“삐가 자네 보고 이런 초짜가 있니?” 하겠다고 장모님은 슬슬 오지랖을 보여주셨다. 


장인, 장모님과 반갑게 인사한 삐 아저씨는 일을 함에 거침없이 능숙함을 보여주었다. 감을 딸 때도 일절 요령 피는 모습이나 느린 제스처가 아닌 말 그대로 속전속결하는 스타일이었다. 눈치도 워낙 빨라서 장인어른이 무얼 원하는지 바로 알아차리고 행동했으며 그런 삐를 향해 장인 장모님은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저 멀리 감 따는 삐 아저씨





 


난 슬슬 질투가 나기 시작했다.      

장모님은 또 말하셨다.

“눈치도 정말 빨르지 일도 잘해서 돈을 줘도 아깝지 않더라니까.” 

“작년에도 어찌나 잘하던지 일당에 보너스까지 얹어주고 보냈잖아.”     

“안 그래 보이나?”

“........”     

장모님의 말 뒤에는 내게 하지 못한 말이 숨어 있는 듯했다. 


졸지에 찬밥신세가 되었지만 원망보단 배울 점이 많은 분이셨다. 

일을 하다가 새참을 먹어도 제일 늦게 왔다가 제일 먼저 일을 다시 시작했다. 먹는 것도 욕심내지 않았고 술은 입에 대지 않았다. 담배를 태우지만 피면서도 몸은 계속 움직였고 주변에서 보기에 일을 하지 않는다는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하나의 일만 시키는 대로 계속하지도 않았고 자기 생각이나 주관대로 차를 옮겨 감상자를 싣거나 줍는 등 유연하게 일을 해 나갔다. 시킨 일 하나만 쭉 하다가 다른 일을 할 때 해야 되는지 망설이는 내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그분은 해가지면 일을 하지 않으려 했다. 저녁 6시가 되면 날이 아직 어둡지 않은데도 시계를 가리키는 제스처를 취하며 퇴근시간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숙식은 집에서 함께 해결했다. 화장실 가는 길에 있는 처 할아버님이 쓰시던 빈방에서 생활했고 한국음식은 입에 맞지 않는지 반찬이나 국 등은 아주 조금만 드셨다. 그런 모습에 장모님은 어떻게든 맞는 음식을 맞춰 주시려 했고 생양파와 쑥갓, 파를 식탁에 조리 없이 올려놓으며 해결책을 찾으셨다.      

한국말은 거의 못했기에 깊은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 일하는데 전혀 지장은 없었다. 장인어른과 비슷한 나이여서 그런지 서로 담배도 바꿔 피시고 술도 권하면서 편하게 대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 한편으론 궁금해졌다.      


“어떤 사연으로 한국까지 와서 일을 저렇게 열심히 하실까?”

“한국에서 돈을 벌어 중국에 돌아가면 큰 도움이 되는 걸까?” 

“중국에서 어떤 일을 하셨을까?” 


답답함에 중국어 어플을 활용하여 짧은 해석을 공유하기도 했지만 바디랭귀지 수준을 벗어나진 못했다. 삐 아저씨가 중국으로 돌아간 후 1년 뒤 다른 중국 아저씨들과 감을 따게 되었는데 너무 힘이 들어서 계속 생각이 났다. 


일을 시키는 사람과 일을 하러 온 일꾼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농땡이를 피우거나 시켜도 안 하거나 딴짓을 하거나 행동이 느리거나 하는 등 내 맘대로 따라와 주지 않아서 뭔가 지시하고 함께 일하는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삐 아저씨가 정말 일을 잘하는 거고 열심히 해준 거구나.”

“스스로 알아서 해줘서 내가 편했던 거구나.”     

 

우리는 가까이 있을 때 깨닫지 못하는 게 많아서 지나고 난 후 후회를 하기도 한다. 가족과의 사랑이나 연인, 친한 친구, 인생의 지인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고 때론 도움을 주어야 할 때 도 있다. 삐 아저씨는 나로 인해 얼마나 도움을 받았고 한편으론 불편했을까?    

  

삐 아저씨가 돌아간 후 많은 일들을 할 때 습관처럼 비교당하곤 했다. 

“이렇게 해가지고 삐 아저씨 따라가겠니?” 

“내년에 오면 삐 아저씨만큼 할 수 있겠어?”

"언제 삐 아저씨 따라갈래?" 


당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굳이 내가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할까 생각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살기도 한다. 칭찬에 인색하고 잘하고 우수한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한다. 타인과 비교할수록 자존감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저 사람은 잘하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는 왜 저 사람만큼 잘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비교하는 말은 상대방을 화나게 할 수 있다. 그런 비교 말고 차라리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삐 아저씨는 이런 일을 잘하는데 자네는 저런 일은 삐 못지않게 잘하더라.” 

“삐 아저씨와 자네가 있어 이번 일은 아주 잘 될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      


현재 한국에는 외국인 분들이 여러 분야에서 일을 하신다고 생각한다. 농장, 마트, 시장, 식당, 농촌 등 각 분야에서 종사하시는 외국인 분들을 많이 봤었다.

특히, 농촌에 외국 노동력이 없다면 과연 일을 할 수 있을까? 란 의구심이 들었다. 농촌인구 문제 때문일까? 젊은이들이 농촌을 많이 떠나기 때문일까?      


농촌의 고령화 문제도 심각해 보인다. 내가 태어난 고향의 마을은 이제 사시는 분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빈집들이 하나 둘 늘어가고 현재는 8가구 정도 거주하고 계신다. 마을이라 부르기도 애매모호한 지경이 된 것이다. 처갓집이 있는 동네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장인어른 세대가 앞으로 10년 이상 농사를 이어가기는 힘들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이고 농사의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받을 사람이 남아 있을까란 의문이다.           


삐 아저씨와 감을 따다가 비가 내렸다. 

자꾸만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작업을 중단하고 곶감 작업장 안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당연히 소주와 안주 옆집 애주가 아저씨가 오셔서 합석하셨고 뜨근한 홍합탕과 어묵탕에 삐 아저씨가 가 중국에서 가져온 이름 모를 마른반찬이 꺼내어졌다.

한잔,  두 잔,  먹다 보니 나도 모르게 취기가 올랐고 앞으로 벌어질 일의 서막이 될 줄 나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곶감 건조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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