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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잘꾸 Nov 08. 2019

제가 쓴 글이 라디오에 나온다고요?

라디오와 글.. 첫 느낌

   

10월의 가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만 지나가며 11월을 맞았다.


황금빛 농사의 결실은 농부의 땀과 함께 추수가 되고, 잘 익은 주황빛 감들은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에서 땅 위로 상자로 트럭으로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깨끗이 껍질을 벗어 영롱하고 반짝이는 알맹이를 드러내며 가을 햇빛 아래 매달려서 바람을 맞이한다.      

추수가 끝난 논 가장자리에는 다시 제 순서를 기다리는 콩들이 영글어 갔고 밭에서는 팥과 쥐눈이콩이 바스락거리며 품고 있던 콩알, 팥알을 땅으로 뱉어 내며 콩깍지를 비틀어 수확의 시기가 적정했음을 알려주었다.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 전 우리는 콩 타작을 시작했다. 도리깨는 있었지만 농기계가 먼저 일손을 도왔고 타작이 끝난 콩과 팥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선별하고 체에 걸러서 온전한 콩알로 구분되어 진짜 주인을 기다리게 되었다.      



쥐눈이콩 밭에 콩깍지가 벌어져 '딱딱' 소리를 낸다.






콩 타작하시는 장인 장모님




메주콩은 장인어른이 가마솥에 푹 삶아서 각진 틀에 담아 꾹꾹 눌러서 메주를 만들었다. 서툰 솜씨로 메주를 만들던 내 손에는 구수한 콩 냄새가 스며들었고 갈수록 마당의 바람은 찬 기운을 마음껏 뿜어내며 입김을 불게 만들어 주었다.  

    

12월 성탄절이 되어가면 두 달간 건조된 곶감을 털어 내어 꼭지를 잘라내고 본격적인 곶감이 나오기 탄생했다. 그날은 곶감을 장모님과 털어내고 꼭지를 손질하였고 약간은 지루한 반복적 작업이 계속되던 순간 전화기를 꺼내시곤 라디오를 켜셨다. 


채널은 MBC 라디오 고정이었고 오전 9시경부터 오후 5시까지 쭈욱 라디오와 함께 했다.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와 감동적인 이야기, 각종 퀴즈까지 들으며 때론 피식 웃고 고개를 끄덕이게 해 주며 공감을 이끌어 내었고 점점 라디오에 빠져들었다. 마지막엔 항상 프로그램 선물이 소개되고 장모님은 선물이 소개될 때마다 좋은걸 준다며 부러워하시는 듯했다.


 그때 장모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듣기만 하지 말고 라디오 사연을 한번 써보게!”  

“선물이 여기 널렸다네!” 

멋쩍게 웃고 말았다.

써본 적도 없고 쓸만한 얘기 거리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 밤 무심코 있던 내 머릿속에 번뜩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지난 10월 말일경 중국에서 온 삐 아저씨가 준 술을 먹고 방 안에서 실수한 일이 소개된다면 재미있을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날 밤 사연을 보냈고 까맣게 잊어버렸다. 다시 한 달 하고 보름이 지난 1월의 한 겨울 아침에 02로 시작하는 전화를 받았다. 무심결에 받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여자 목소리였지만 자주 찾아주던 김미경 팀장도 아니었고 다짜고짜 내가 나인지 확인하셨다. 

“축하드립니다.” “00 라디오입니다.”

“보내주신 사연이 오늘 아침에 소개되니 꼭 들어보세요!”     

“네?”

“제 글이 라디오에 소개된다고요?”      

그날 오전 내내 기분이 붕 떠 있었다. 

방송에 편집 하나 없이 소개되고 혼자 일하며 듣다가 킥킥 대며 웃었다. 내가 혼자 썼던 글이 전국에 방송이 되고 누군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간질간질해 죽을 거 같았다. 묘한 기분. 

이걸 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장모님에게 말했더니 펄쩍 뛰시며 놀란 눈으로 말하셨다.     

“라디오 사연이 소개되는데 쉬운 게 아니야!” 

“어디 장모 얼마나 깠는지 한번 들어보세!”     


그날 저녁 장인어른은 거실에 누워서, 장모님은 컴퓨터 앞에 귀를 기울이며 민망해하는 나의 최초의 라디오 글을 듣고 놀라셨다. 선물을 받게 되었고 어쩌다 한 번의 행운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라디오 상품이 도착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흘렀고 지루한 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해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어차피 선물 받기까지 오래 기다리는데 그 시간에 다른 글을 또 써보자!” 

“여러 개의 선물이 차례대로 온다면 기다리는 지루함이 없어지겠지.”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선물을 받기 위해 쓴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글 쓰는 자체가 재미있어진 것이다. 물론 방송에 나오는 것도 신기하고 떨리는 느낌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내가 쓴 글을 누군가 봐주지 않을까?’ 기대하며 글감을 찾아 헤맸다.

글을 쓰면 쓸수록 그 깊이에 빠져 들었고 라디오 사연이 아니어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나 환경에서 때론 우리는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길 위에서 최고의 교훈을 배울 수도 있고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오래전 최초의 배낭여행을 떠나며 메모했던 내 일기장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삶을 바라보는 인간의 방식이 그 삶을 결정한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          

글쓰기를 우연히 만났고 나는 이제 글 쓰는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설레기 시작했다. 그 길로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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