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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잘꾸 Nov 08. 2019

장모님 이제야 고백합니다.  

신청곡은 UV의 장모님

10월 말일경 감을 따다가 비가 와서 작업을 중단하고 술을 마셨다.    

  

장인어른과 이웃분 나 그리고 중국에서 온 일 잘하는 삐 아저씨였고, 술 먹는 걸 싫어하시는 장모님은 그만 먹으라는 눈치를 주셨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술이 취했고.. 사건은 벌어졌고 훗날 라디오 사연으로 최초의 글을 쓰게 되었다. 

라디오는 나의 치부와 부끄러움을 소리치는 대나무 숲이 되어 주었다.


아무도 봐주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 혼자 웃었고, 글을 쓰면서 즐거움을 느꼈다. 있었던 일을 쓰는 것이니 술술 써지지 시작했고 그렇게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라디오 사연으로 올렸던 글은 아래에 있다. 

이 못난 글 한편이 나의 출발점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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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 귀농하여 농사를 배우며 살고 있는 초보 농부입니다.          

저는 쌀과 곶감 농사를 지으며 처갓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처갓집 식구들과 함께 한 지붕 아래 사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닌데요. 저희 사랑하는 장모님은 성격이 확실하고 호불호도 분명하신 스타일이에요. 같이 산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제가 잔소리를 많이 듣기도 했죠. 한 번은 장모님이 저를 불러다가 조용히 얘기하시더군요.            

장모님께서 “이보게 안서방. 내 얘기 자존심 상해하지 말고.. 아니 왜 남자들은 소변보러 화장실 가면 왜 이리 흔적을 남기나?”         

      

제가 “죄송합니다.”      

“어머님 뒤처리를 좀 더 잘해볼게요.”라고 말하자 장모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조준을 잘하던지 그게 잘 안되면 혹시 “앞으론 앉아서 볼일 보면 안 되나?”      

“내가 워낙 깔끔하지 못한 것은 못 보겠어서 그러네.”               

저는 자존심이 조금 상했지만 장모님 말씀대로 앉아서 소변을 보려고 노력해본 후 장모님께 말씀드렸죠.          

“장모님!” “노력해 봤는데 습관이 안 되어 볼일을 보려고 앉으면 잘 안 나와서 어렵네요.” 이렇게 말씀드리니 호탕하게 뒤집어 지시며 웃으셔서 저는 살짝 민망했습니다.       

      

장인어른은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셔서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일을 하시고 해 가지고 어두워지면 퇴근하셔서 일찍 잠자리에 드시는 편입니다. 열이 많으셔서 꼭 거실에 주무십니다. 장모님은 추위를 많이 타셔서 안방에서 주무시고요.           

         

아침엔 뉴스 시청. 그 후엔 야인시대, 요즘은 드라마 마의 시청하시다가 일과를 본 후 점심 식사 후 잠깐 사극 드라마를 즐겨보시고 저녁식사 시간엔 여섯 시 내 고향이 마지막 보시는 TV 프로그램입니다. 아참, 가장 즐겨보시는 건 '나는 자연인이다'입니다. 덕분에 저는 다른 예능프로그램은 볼 엄두도 못 내고 저도 보다 보니 이제는 재미를 붙이게 되었답니다.          

       

그 일은 약 한 달 정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올해 10월에 있었던 일인데 이제는 고백해 보려 합니다.      

여기 상주는 10월이 되면 집집마다 감을 모두 따서 곶감을 만들 준비를 한답니다.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여서 일손이 부족하답니다. 저는 올해 처음 본격적으로 장인어른, 장모님과 감을 따고 곶감을 만들기 위한 일을 했답니다.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1년 전에 함께 일했다던 아저씨 한 분이 중국에서 오셨습니다.           

이름은 “삐”인데 제가 봐도 너무 일을 능숙하게 잘했습니다. 저와 장인어른 그리고 중국에서 온 “삐” 아저씨는 감 따는 일을 맡아서 장대로 감나무 가지를 흔들어서 감도 줍고 새참도 중간중간 같이 먹으며 친해졌답니다. 장인어른이 소주를 좋아하셔서 힘든 감 따기 일하는 중에 자주 한잔씩 마시며 일도 했죠. 하지만 “삐” 아저씨는 장인어른의 잦은 권유에도 한국의 소주는 죽어도 먹지 않더군요. 괜찮다고 사양하면서요.          


그날은 비가 많이 내리며 날씨가 오락가락했기에 감을 따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던 날이었습니다. 비가 점점 내리며 오후에 작업을 일찍 마치게 되었고 저녁식사 겸 소주를 다 같이 먹게 되었습니다. 술이 얼큰하게 취하신 장인어른이 소주를 다시 “삐” 아저씨에게 권하게 되었고 몇 번을 사양하던 중국 아저씨는 자신이 가져온 커다란 가방에서 사이다 병에 든 정체모를 술을 꺼내고 따봉을 연신 외쳐 되었습니다. 

냄새를 맡아보니 짙은 과일향과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찌르는 맑은 색깔의 술이었습니다. 술이 한잔씩 들어간 저희 세 명은 소주와 정체모를 중국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말은 비록 잘 통하지 않아도 손짓 발짓으로 대화가 화기애애하게 되며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었습니다. 술이 스스로 좀 과하게 되었다고 느낀 제가 먼저 일어났고 샤워를 한 후 그대로 방에서 잠이 들었던 거 같습니다. 그 후가 기억이 안 나거든요.           

     

쿨쿨 술에 취해서 자다가 새벽에 속이 메스꺼움을 느끼고 불쑥 잠이 깨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부처님 오 마이 갓! 저도 모르게 이불과 깔고 자던 매트리스 위에 구토를 한껏 해놓은 겁니다. 순간 장모님께 꾸중 듣고 혼날 것을 생각하니 술이 확 깨더군요. 침착하자 침착하게 수습하자고 다짐한 저는 일단 다행히 방에 있던 물티슈와 휴지 등으로 대강 수습을 시작했습니다. 이불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보니 소름이 돋았습니다.   

  

 쉽게 냄새가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고 당장 방문 밖에는 장인어른이 거실에서 주무시고 계셔서 깨실까 봐 너무 조심스러웠습니다. 하필 그날 자기 전에 술에 취해서 깔아놓은 덮는 이불이 있는데도 옷장에서 새 이불을 굳이 꺼내서 덮고 자다가 일이 터진 겁니다. 전 스스로를 혼내 키며 이놈의 술! 술~술! 왜 자제하며 마시지 못했을까? 갑자기 중국술을 왜 먹었을까? 새 이불은 왜 또 덮고 자서 이불 두 개 모두 수습불가 상황이 된 것인지 혼자 속으로 자책하였습니다.          


이불에는 당연히 토사물의 흔적이 누렇게 묻어 있었고 살살 풍겨오는 역한 냄새를 갖추느라 창문을 매일 조금씩 열어놓고 시간 날 때마다 걸레로 닦으며 지워보려 노력하였습니다. 장모님이 늘 곁에 계시며 일도 같이 하니 빨래는 감히 엄두도 못 내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냄새가 쉽게 없어지지 않아서 장모님이 아실까 봐 불안에 떨던 저는 다음날 저녁에 몰래 차 트렁크에 이불 두 개를 넣어둔 후 저녁식사 후 처갓집에서 가장 가까운 인근 빨래방을 찾아갔습니다. 부끄러워 차마 토한 흔적이라고 주인아주머니께 말은 못 하고 아기가 이불에 토를 한 흔적이라고 구차한 변명을 하였답니다.           


빨래방 주인아주머니는 스윽 보시더니 이불세탁을 거절하시더군요. 이거는 일반 세탁으로 절대 지워지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시며 집에 가서 표백제가 들어있는 강력 세제로 손세탁해보라고 하시더군요. 울상이 된 저는 필사적으로 그래도 한번 세탁을 해봐 주세요. 조금이라도 지워질지도 모르잖아요. 그랬습니다. 제가 세탁을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는다며 애걸복걸한 끝에 겨우 빨래방에 맡기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 이불을 찾으러 갔습니다.      

일부는 다행히 어느 정도 지워졌고 자국은 조금 남게 되었지만 냄새는 나지 않아서 기뻤습니다. 그때부터 이불을 덮고 잘 때 항상 뒤집어서 깨끗한 면이 위로 오게 하고 자게 되었답니다. 지금은 점점 자국이 옅어져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지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계속 숨겨왔다가 장모님에게 이제야 고백해 봅니다. 술 마시는 것을 정말 싫어하셔서 항상 장인어른이 마시는 술자리에 잔소리하시고 저에게도 술을 멀리하고 줄이라던 장모님, 제가 이제야 고백합니다. 장모님 말씀대로 술을 절제하고 실수하지 않도록 더 노력하는 사위되어 일도 열심히 도와 드리겠습니다.

항상 정신적 지주가 되시는 장모님, 그리고 장인어른 건강 챙기시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지난 과오를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술 마시고 실수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장모님, 장인어른 안서방이 두 분 모두 많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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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안에서 수많은 작가님들을 만났다. 


어쩜 그렇게 글을 잘 쓰시고 예쁘고 말랑말랑 하게 때론 눈물 콧물 짜내는 울림과 깊이를 보여주시는지 그저 감탄할 따름이었다. 별거 아닌 이야기로도 이렇게 재미있게 담백하게 글을 풀어내는 분들이 많은 것에 깜짝 놀랐다. 

각자의 사연 속에 던져주는 메시지는 분명했고 감정을 듬뿍 담아서 가슴속을 건드려 주었다. 

마음에 들어오는 글을 만나면 꼭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렇게 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표현하여 쓴다면 더 좋지 않을까?”     


나를 글쓰기 세상으로 알려주신 분은 장모님이다. 

우연이든 운명이든 그 사실은 분명하다. 항상 적극적이고 호불호 분명하신 장모님에게 나는 배울 점이 무척이나 많았다. 엄청난 잔소리와 급한 성격에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나에겐 사랑하는 장모님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주셨고 내가 가야 할 길도 인도해주셨기에...        


DJ가 장모님 꼭 드리라던 냄비세트


장모님  꼭 드리라던 라디오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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