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잘꾸 Nov 08. 2019

개그우먼 오나미 씨도 가지고 있는 자격증이에요!

나는 서당개였다.


무엇이든 공부하고 배워야 하는 시대.


농민도 예외는 아니다.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알아야 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농업기술센터에는 농민을 지원하는 행정, 복지, 교육프로그램이 다양하다.      

“매일매일 센터 홈페이지 들어가 보고 교육받으러 가!” 

장모님이 내게 자주 하시던 말이다.      


정부 지원의 농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다양한데 일부는 교육시간을 이수해야지만 가능한 것들도 있었다. 초보 농부였던 나는 왕초보였기에 거의 모든 교육 대상자이기도 했다. 그 당시 종자 기능사 자격증 교육반이 개설되었는데 처음 들어보는 자격증 이름이었다. 쌀이나 보리 시금치 같은 익숙한 종자(씨앗)부터 톨 페스큐, 페레니얼 라이그라스, 이탈리안 라이그라스 같은 낯선 종자들도 꽤 많았다. 교재는 무료 제공이고 간단한 절차인 농민 서류만 제출하면 교육신청 후 반이 개설되었다.      



사실 어느 작물의 어떤 품종을 언제 심고 어떻게 관리하는지 수확시기는 언제인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후에 교육 종료 후 강사님이 말하셨다. 

“처음에 교육생들이 농촌 출신이니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진도를 나갔는데 알고 보니 모르는 교육생이 훨씬 더 많았어요.”     






강사님은 유능하신 분이셨다.

열정이 느껴지실 정도로 가르치는데 애를 많이 쓰셨다. 준비물도 직접 다 공수해 오시고 자격증 시험 노하우도 아낌없이 알려주셨다. 도시농부와 유기농, 텃밭에 대한 책도 쓰셨는데 아토피를 앓던 아들의 식습관을 바꿔주기 베란다 텃밭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강사로도 활동하신다고 하셨다.   

   


세심하게 알려주시고 무엇보다 잘 핵심을 짚어 주셨다. 수업내용도 탁월하시고 미모와 유머까지 겸비하신 텃밭, 종자 강사님입니다. 필기 교육 중 졸음이 밀려와도 강사님의 열의에 죄송해서 졸음이 조금씩 올 때면 ‘참아야지’하고 생각했었습니다. 필기 공부를 게을리해서 시험에서 혼자 정답을 몇 번이나 바꾸곤 했는데 턱걸이로 합격해서 죄송합니다. 실기는 좀 더 나아질 거예요 강사님!      


시험은 종자 감별과 병충해, 방제법, 접붙이기, 발아율 계산, 종자 파종 등 필기와 실기가 있었고 기능사인 만큼 전체적인 난도는 높지 않았지만 공부를 안 하고는 절대 자격증을 딸 수 없었다.      

교육생은 당연히 주변 농부들의 후예였다. 표고버섯, 천마, 벼농사, 감농사, 청포도 등 다양했으며 이야기 나눌수록 농부로서 깊이가 느껴졌다.   




실기 시험 준비를 하며 집에서 접붙이기를 연습하고 있으니 장모님이 말씀하신다.      

“내 앞에서 한번 해봐!”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장인은 이거 할 줄 몰라.” 

“자네가 잘 배워서 장인 코를 납작하게 해 주라고.” 하시며 웃으셨다.      

그날 밤 종자기능사 교육이란 멋진 경험을 하며 그간 메모했던 글감을 가지고 라디오 사연을 적었다. DJ가 짧은 글로 읽어주더니 말했다. 

“종자 기능사 자격증 개그우먼 오나미 씨도 가지고 있는 자격증이에요!”     


오나미 씨 대단해요!


 

이외에도 교육은 계속되었다. 블로그 중급반, 스토어팜 교육까지 농산물의 판매와 홍보, 마케팅을 위한 과정도 쉽지 많은 않았다. 연령대가 높으신 분들이 많으셨는데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시며 더듬더듬 강사님을 따라가지만 그 열의가 대단하셨다.      

교육을 듣고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장모님이 질문을 하셨다.

“오늘은 뭐 배웠어?” 

“뭐가 재미있었어?”      

유치원생 딸에게 내가 하던 말이었다. 

그 말을 여기서는 내가 듣고 있는 것이다.     

장모님은 나의 농사지식과 경험을 유치원생이라고 비유하셨다. 

장인어른과 처음 하는 농사일에서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으셨다.

“유치원생이랑 똑같으니까 시범도 잘 보여주고 천천히 해요.”

“자네는 장인어른 하는 것 잘 배고 배워!”      

어쩔 때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란 속담에서 ‘서당개’에 비유하셨는데 이웃 아저씨께선 이렇게 말하셨다. 

“서당개도 아직 안되는데...”     

처갓집으로 이민을 온 후 나는 시간을 거슬러 유치원생이 되었다. 

농업기술센터 유치원에서 무언가를 배워오고 보고 듣고 왔으며 받아쓰기 대신에 종자기능사 시험을 치르고 농사짓는 친구들을 만났다. 집에 돌아오면 어떻게 보냈는지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고 영농일지란 곳에 일기 같은 기록을 남겼다.     


농민들은 참 똑똑한 거 같다. 수많은 작물들의 생태를 이해하고 사계절 관찰하며 수확을 하고 공부도 많이 한다. 어려운 농기계도 척척 운전하고 1년에 며칠 혹은 몇 달만 쓴 채 후년에 다시 작동법을 기억해내고 농사를 짓는다. 농사에 필요한 각종 농기계, 창고, 등을 직접 만들고 수리하며 관리도 한다. 외부 인력을 쓸 때면 일을 시키면서 인력관리도 하고 마을 공동의 일이나 모임에도 빠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계모임도 하면서 여행도 가시고 처자식, 친지도 돌보면서 멋지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농부가 될 수 있을까?

서당개는 언제 될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장모님 이제야 고백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