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말고 비가 오길..
농부에게 비는 기본적으로 반가운 존재이다.
적당한 때에 적당량만 내려준다면 말이다. 비가 여름에는 많이 내릴 수 있다.
가을에는 많이 내리면 역효과가 일어난다. 가을은 비보다 일조량이 더 중요하다. 과일이나 곡식이 영글고 익어가기 때문에 잦은 비는 병충해에 약하게 만들고 기형의 유발하기 때문이다. 올해 가을은 유독 태풍이 자주 왔다. 이제 그만 와도 될 텐데 일주일 간격으로 비가 오더니 추수를 앞두고 논의 벼가 모두 쓰러져 수확은 엄두도 못 내는 집도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농작물 보험에 보통 가입을 해 놓지만 피해를 온전히 보상받긴 사실 까다롭게 번거로운 게 사실이다. 피해를 애초에 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예방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한다 해도 강력한 태풍에 직격탄을 맞는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농사라는 것은 날씨와 기후 하늘의 운도 많이 좌우하고 있었다. 아래쪽 지방에서 많이 하던 사과 품종이 점점 강원도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기후가 급속도로 바뀌고 있으니 그 영향에 따라 점차 북쪽 지방으로 따라 올라가고 있은 것이다.
작년에는 미세먼지가 한껏 기승을 부렸다. 여름의 끝자락부터 한겨울이 끝나고 다시 봄이 올 때까지 뿌연 하늘 아래 종일 마스크를 쓰고 다니게 만들었다. 사실 시골에서는 미세먼지 따위? 는 어르신들이 큰 신경을 안 쓰신다. 하늘이 흐릴 정도로 뿌옇게 변한다 해도 날씨가 흐려서 좋지 않다 말하며 끝이다.
마스크를 쓰는 아주머니들도 먼지보다는 자외선을 염려해서 쓰시니 말이다.
장인어른은 농담조로 말하시곤 했다.
“농부는 먼지쯤은 소화제 먹듯이 먹어야 해!”
작년 겨울과 봄에 먼지가 하도 심해서 곶감 작업할 때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었더니 괜히 핀잔을 주시곤 하셨다.
“젊은 놈이 무슨 마스크를 매일 쓰냐며 데모하는 것도 아니고..” 하시는데 이런 것까지 괜히 심드렁하게 간섭하시며 못마땅해하시는데 할 말이 없었다.
비가 오면 일과는 취소되거나 연기된다. 비를 맞고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비가 자주 많이 오면 일을 쉬거나 술을 한잔 마시게 되었다. 이웃집 아저씨가 말해주신 대로 비가 오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나신 것 같이 기쁘다는 말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주말에 집에 내려가 휴식을 취했던 나는 비 오는 날이 겹치면 하루 더 쉬기도 하고 일이 없어지니 사실 몸이 편하게 되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비 오고 흐린 날이면 기분도 센티해지면서 가족들도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 마련이었다.
매일 밤 좁은 방안에 어둠이 깔리면 두 눈에 외로움이 뒤엉켜 갈 곳을 잃고 나는 여기 왜 있는지 혼자 되묻곤 했다. 혼자 우주 다른 행성에서 잠들기 전 모습이 바로 나였다. 외로워서 라디오를 듣고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삼았다. 등을 붙이고 다리를 쭉 편 다음 불을 끄고 누웠을 때 다시 혼자가 되었다.
빗소리가 주룩주룩 창밖에 들릴 때면 고요한 밤에 잠도 오지 않고 가족 생각만 났다. 지금 시간에 무얼 하고 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별거 아닌 일상 속에 가족들과 함께 있지 못하는 사실이 왠지 서글프게 느껴져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 문밖에는 장인어른의 코 고는 소리가 드르렁드르렁 크게 들려왔다. 이내 나도 잠이 들고 만다.
다음날 아침엔 항상 날씨에 귀 기울인다.
일이 고되거나 외로워질 때면 큰 피해를 주는 태풍 말고 잔잔한 비를 뿌려주길 바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