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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잘꾸 Feb 09. 2020

투명인간

달콤한 반전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말해봐요. 진짜 낱낱이 다 말했어요?



처음부터 널 좋아하진 않았어. 

같은 공간에 있지만 우린 다르다고 생각했거든. 회사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몰아세우고 괴롭힌다는 것을 눈치챈 후 사실 예전의 내가 떠올랐던 거야. 나 역시 그런 적이 있었는데 너도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구나 라고 동정 심보단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는 건 아닐까 라고 생각했어. 한 번쯤은 주변의 눈초리와 편견을 깨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싶기도 했어. 미안해 벌써 이런 마음들이 큰 오지랖이란 걸 느끼면서도 그땐 감정이 앞섰으니 이해해줘. 친구가 되고 싶었어. 먼저 다가간 내가 이상했는지 날 경계했지만 개의치 않았어. 내 이야기를 들어줄 한 사람만 있다면 너도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거라 멋대로 판단했거든. 직장 이야기, 사적인 이야기까지 남들 시선에 관여하지 않고 우린 통한다고 믿고 털어놓았지. 


인생은 항상 엉뚱한 곳에서 진실을 마주하게 하지. 우연히 너희 집에 들렀을 때 네 어머님이 계셨고 처음 가보는 네 집에서 잠시 쉬다가 나오는 순간 차라리 여기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어. 네 어머님은 내 이름을 정확히 알고 계셨고 날 어떻게 아실까? 란 질문에 속사포처럼 모든 이야기를 엄마에게 털어놓는 너. 


가슴속이 훤히 거울에 비치듯 거리낌 없이 우리들의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속속히 엄마에게 말하는 너를 보며 당황스러움과 불편한 이 마음을 애써 감추느라 혼났어. 어쩜 그럴 수가 널 믿고 많은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털어놓곤 했는데 넌 모든 말을 엄마와 아빠에게 전달하는 역할이었어. 이제야 이해가 되었어. 어쩜 그리 자기 결정에 약한지에 대해서 말이야. 


"네가 이거 먹으면 나도 이거 먹고, 네가 이거 사면 나도 이거 사고." 란 말 안에 모든 뜻이 담겨 있었을 줄이야.


난 네가 단지 자존감이 낮아서 자신감이 부족한 건 줄만 알았는데 같은 공간이 아닌 나 혼자 같은 공간이라 착각하며 그동안 네게 말을 걸었던 거였어. 넌 그 모든 이야기를 엄마와 아빠에게 쏟아냈을 테고 수많은 조언을 받았겠지. 그간에 나한테 명언처럼 해주던 말들이 모두 네 의지와 생각, 경험이 아니라 네 엄마 아빠의 말이었다니... 그 사실이 너무 안타깝고 슬퍼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단다. 


그만 껍질을 깨고 나와서 진짜 세상과 마주하렴. 부모와도 때론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될 말이 있단다. 내 모든 속을 가감 없이 꺼내어 보여준다는 것은 가족이라고 해도 매일 그렇게 하면 안 돼.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결국 옅어지고 존재하지 못하는 투명인간이 될 테니까.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 이제부턴 말을 아끼기로 했어. 차마 부끄럽고 개인적인 치부를 네 엄마 앞에서 들킨 느낌이야. 

사실 매우 불쾌해.

나보다 속이 깊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는데 지금은 네가 한없이 어리광 부리고 엄마 말만 철석같이 믿는 바보처럼 보여. 


네 삐뚤어진 사상과 생각을 결국 만들어 주신 장본인께서 내 이름을 아주 정확히 알고 내가 어떤 애인지 알고 계시는 눈치였어. 이미 한번 취조를 당한 사람은 더 이상의 감추고 싶은 개인정보가 남아 있지 않지. 

난 네게 개인정보를 모두 털린 기분이야.


네 집을 나오면서 해주신 덕담도 아니고 악담도 아닌 말꼬리 잡는 한마디가 가슴에 남았어. 

예를 들자면 이런 느낌.

"브런치 대학교 진학할 거야? 브런치대학교가 전통 있고 명문대에 교수님도 정말 좋지 학생들이 질이 안 좋은 것 만 빼고."

"수능 잘 보고 다음에 또 놀러 오렴 근데 브런치 대학교.. 좋은 대학교는 아닌데..."

느낄 수 있었어. 네가 커오며 행동하는 모든 상황과 행동에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결국, 부정적인 영향을 주입시키며 선택 장애를 만들어 주신 분이 아이러니하게도 네 어머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네게 말을 아낄 거야. 네 엄마에게 강제로 날 파헤치게 내버려 둘 순 없어.


마마보이.. 우린 여기까지.. 


부디 안녕! 


비상구로 급히 나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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