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잘꾸 Feb 02. 2020

이유 같지 않은 이유

IU

병영생활 행동강령.


군대에서 병사끼리 생활할 때 지시할 수 있는 권한과 직책을 가진 (분대장)을 제외하고 명령, 지시, 간섭, 폭언, 욕설, 인격모독, 성군기, 성희롱, 가혹행위 등을 금지한다는 내용인데 어떠한 부대, 어느 행정반, 아무 내무반에 가도 떡하니 붙어 있는 기본적 수칙이었다.


군대도 변하고 있다며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며 밝은 병영, 병사들 핸드폰 사용, 부대개방행사, 부대 관련 SNS나 홍보까지  어쨌거나 보이는 모습은 바뀌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이다. 일부 꼰대를 자처하는 어른들은 '요즘 군대가 군대냐?'며 혀를 끌끌 차고 각종 사건사고 뉴스가 나올 때마다 '라는 말이야'를 강조하며 그것도 못 참냐? 혹은 '더 힘들게 굴려야 돼'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도 기억하는 추억의 부조리가 있다면 (치약 미싱)이다.

초록창에 검색해보면 (치약을 이용하여 물청소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검색이 된다. 그렇다 치약을 사용하여 화장실 등 청소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결과만 놓고 본다면 엄청 좋은 거다. 반짝반짝하게 광택이 나며 고약한 냄새마저 치약 냄새로 뒤덮여 대청소할 때 참 좋은 청소방법이란 생각인 번쩍 든다.


라떼는 말이야 한 번만 쓰도록 하겠다. 라떼는 말이야 '치약 찍는다'라는 고급스러운 표현을 선임들이 사용했다. 대청소하면 깨끗해지고 좋은 거 아닌가? 생각하겠지만 치약을 찍겠다는 의미는 내무반의 누군가 큰 잘못?을 저질러서 선임이나 고참의 심기를 건드렸는데 한마디로 '이짜식들 군기 한번 잡자' 이거였다. 치약 미싱을 주도하는 행동대장은 항상 권력의 실세를 쥐고 있는 상병 선임이었다. '번데기'라 지칭하던 그분은 모든 내무반의 병력들을 통제하고 감시했다. 작업을 하거나 훈련을 나가도 마찬가지였고 주말에 옆 내무반과 내기 축구를 해도 축구화 깔창으로 머리를 때리며 수비하지 못한 후임들을 갈궈대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병사들이 무서워하고 기피하고 눈치를 보는 사람 1호였다.  


오늘 치약 찍는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계급이 낮을수록 이 말에 체감하는 공포감은 온도가 달랐다. "뭣 때문에?"  사실 이유를 알고 나면 보잘것없고 사소하기 그지없었다. 특정 병장의 심기를 건드렸거나 내무반 분위기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혹은 간부가 병장을 불러 은근히 내무반 군기가 빠졌다며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치약 미싱은 항상 저녁 청소의 하이라이트였다. 청소 시간은 저녁 점호전 30분 내외였다. 국방부 시계도 흘러간다지만 시계가 20:28분을 가리키고 있다.

젠장 마른침이 꿀꺽 목젖을 타고 넘어간다. 나와 맞선임은 가장 계급이 낮은 이등병에다가 당연하듯이 가장 바쁘게 뛰어다녀야 했다. 할 게 없어도 그냥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며 눈치를 봐야 했다. 한편으론 속으로 이런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단체의 규율과 부조리는 엄격했다. 이윽고 20:30분이 되었고 번데기인 상병 선임이 외쳤다. 그 당시 내무반은 침대가 없고 양 침상이 마루처럼 있고 양쪽 벽 쪽에 관물대가 있는 모습이다. 관물대 위에는 군장이 올려져 있고 중간 통로에는 서로 마주 보는 군화와 운동화, 슬리퍼가 가지런히 각 잡혀 있었다.


"청소 시작하자!!"

"옙!!"


우레와 같은 함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유명한 가수 콘서트 가면 분위기를 유도하기 위해 관객들을 보며 더 큰 소리로 외치라고 '소리 질러~!' 하듯이 약속된 암묵적 행동으로 우리는 더욱 큰 목소리로 (나 군기 바짝 들었어)를 목소리로 증명해야 했다. 그때부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이등병들은 걸레를 마구 빨며 내무반 옆에 위치한 화장실을 뛰어다니며 일병에게 걸레를 공수해야 했다. 그 바쁜 와중에 걸레를 벽에 대고 돌돌 말아서 딱딱하게 만든 다음 일병들에게 공수한다. 일병들은 무릎 꿇은 자세로 침상 끝에 위치해서 이등병이 빨아온 걸레를 좌우로 밀치며 먼지를 닦아내며 조금씩 몸은 전진하고 있다. 무릎 끓은 자세에서 한쪽 다리만 편 상태로 걸레로 좌우를 닦아내며 2명씩 똑같이 전진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장판이 깔려있는 침상에는 치약이 덕지덕지 깔려 있고 그 치약을 제대로 닦아 내지 않으면 번데기 상병이 고함을 친다.


"똑바로 안 하냐?"  물론 말만 하지 않는다. 상상할 수 있는 갖은 욕설과 폭언이 난무하며 침상에는 물이 뿌려진다. 물이 뿌려지면 침상은 미끌거리고 걸레질하는 일병은 치약을 닦는 건지 내가 입고 있는 군대 운동복으로 닦고 있는 건지 헷갈려지는 순간이다. 속도도 중요한 포인트이다. 평소 청소하는 속도가 1이라면 그날은 10으로 청소해도 욕먹는 날이다. 침상에는 일병들이 왔다 갔다 뺑이치며 흘린 땀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고 있고 그 화풀이는 고스란히 걸레를 빨고 말아서 갖다 받치는 이등병에게 전해진다.

일병은 이등병에게 소리친다.


"걸레 똑바로 안 빨아 올래?" 혹은 "걸레 똑바로 안 말아 오냐?" 물론 욕설은 덤이다.


이등병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목소리가 제일 커야 했다. 이등병의 머리에도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옆에서 심하게 걸레를 빨리 빨고 있는 동기 녀석이 얼굴이 벌겋게 변해서는 굳게 다문 입술 사이로 속으로 내뱉기만 하던 욕설이 에스프레소처럼 진한 풍미가 느껴지듯 외쳐댄다. "18"


가끔씩 번데기 상병은 화장실 문 앞까지 와서 우리를 닦달한다. 참고로 이등병은 걸레를 배달하며 화장실 청소도 미친 듯이 닦고 쓸고 왔다 갔다 바쁘다. 번데기 상병이 한 번씩 와서 정리해놓은 빗자루나 쓰레기통 위치를 트집 잡아 발로 뻥뻥 차며 다시 정리하라고 어지럽히고 나간다. 안 해도 욕먹고 해 놔도 다시 발로 차 버리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무반에 액자로 걸려있는 병영생활 행동강령이 무색해진다.


일병보단 높지만 번데기 상병보단 짬밥이 낮은 상병은 침상 위의 후임병 관물대를 굳이 샅샅이 정리하고 있다. 번데기 상병의 터치는 없다. 계급이 깡패이기 때문이다. 한 명 한 명 관물대를 손수 정리하며 정리 상태를 트집 잡는다. 각 잡힌 상태, 쓰레기를 숨겼는지 여부와 혹시라도 날짜 지난 우유나 빵이 있다면 공중을 날아다니다가 바닥이나 침상에 처박히고 온갖 짜증을 감수하며 '죄송하다느니 주의하겠다느니' 대역죄인 멘트를 날리며 내손으로 치우면서 쌍욕을 먹어야 했다.


수건이 각이 안 잡혔다든지 선임 관물대보다 정리 상태가 불량이라면 옷가지와 신발이 붕붕 날아다니며 관물대는 박살이 난다. 군장도 막 날아다니고 애인에게 받은 연애편지도 날아다니고 바빠서 마구 쑤셔 박아 놓은 마른빨래나 속옷도 날아다닌다. 그야말로 망연자실. 내가 혹은 누군가가 무슨 잘못을 이렇게 저질렀기에 이처럼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군대라는 명목 하에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당해야만 하는 걸까. 눈물을 보일 순 없어 청소가 끝나고 동기와 담배를 입에 문다. 화가 나기보단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과 잘 수 있다는 행복이 머릿속을 꽉꽉 채우는 하루 중 3분이다.


지옥 같던 청소가 순식간에 끝났다. 그 아수라장 속에도 내무반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번데기 상병은 마지막 미션을 날린다.

"야외 샤워장 가서 몇 시 몇 분까지 씻고 각 잡고 점호준비!"

"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후다닥 뛰어가기 바쁘다. 밖은 아직 겨울이라 영하의 날씨지만 몸은 달아올라 화끈거리고 있다. 씻는다기 보다는 씻는 흉내내기다. 그 씻는 것에도 순서가 있어서 이등병들은 제대로 찬물에 씻을 시간과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늦지 않기 위해 또 안 씻을 순 없으니 그저 눈치 보며 바쁘기만 하다. 점호가 끝나고 당직간부는 청소가 잘돼 있다며 칭찬하거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점호를 끝내고 유유히 사라진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미리 보고를 하고 대청소를 한다는 것이다. 간부가 바보도 아닐 테고 군기 명목으로 서열 잡는 이런 대청소를 좋은 쪽으로만 해석해서 묵인하며 수동적 동의를 한다는 것에 더 치가 떨리곤 했었다.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휴가를 바라보며 옆에 있는 동료나 선임을 며칠 안 보는 게 가장 큰 천국이었다.


점호가 끝나고 방관자 병장들은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며 얘기를 하거나 뽀글이 라면을 만들어 먹거나 열심히 TV 시청 중이다. 불은 꺼져서 깜깜한데 번데기 상병은 모두를 불러 모은다. 모두 조직의 부하들처럼 둥글게 모여 각 잡고 앉아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바뀐 게 있다면 조용하지만 절도 있는 대답으로 "예"를 외친다는 것. 번데기 상병은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이제야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다분히 과장된 그 이유에 모두가 속으로 치를 떨 것이 보이지만 아무도 내색하지 않고 모두 동의한다는 표정을 내비친다. 이 한마디로 모두가 수긍할 테니까. "여긴 군대고 나는 군인이니까."

치약 미싱의 이유는 보잘것 없이 사소하기 그지없었다. 해당 잘못을 저지른 몇 명을 불러다가 조용히 주의를 주거나 얼차려 몇 번이면  끝날 일을..


군대 부조리는 군대로 끝난 줄 알았다. 사회에서 회사에서 우리 주변에서 병영생활 행동강령은 과연 지켜지고 있는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며칠 혹은 몇 달간 나와 동료 몇 명을 간 보는 사람이 있었다. 다행히 그 인간은 나에게 지시를 할 수 있는 권한과 직책을 가지고 있고 처음부터 거부감은 없었다. 아는 것이 많은 척을 했다. 조금은 그래 보였는데 밑천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사고를 쳤고 손쉽게 은폐하더니 이상한 변명을 했다.


 "이렇게 사고가 터진 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너 혼자 만들어낸 사고였다고. 웃기고 있네 라며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말과 행동이 너무 달라도 다르다. 우리에겐 준법과 규율, 규칙, 단체를 강요하며 지키라고 하지만 정작 자신은 쉽게 무시하고 변명하기 바쁘다. 그 와중에 자기편이 아니라고 점찍어둔 사람이 사소한 실수를 하면 순간 이동한 사람처럼 뿅 하고 나타나 아주아주 크게 확대하며 정색하고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다. 이런 일도 가만히 보니 해코지하는 사람을 정해놓고 하더라. 게다가 이런 부류는 어디까지 이 사람을 흔들어도 되는지 귀신처럼 잘 알고 있다. 그 이상은 절대 건들지 않는다. 때론 강하게 하려고 하고 때론 어설픈 연기를 보이며 내 말을 듣지 않아 너를 개고생 시킨다는 암시를 보여주며 이상한 일만을 콕 지목해 시키거나 당신! 당신은 이거 하세요! 하는 식으로 보내 버린다.


너무 노골적이라 내가 다 민망하다. 이런 부류의 장기는 비열한 야합이고 건설적 대화는 불가능하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말해봐도 그의 함정에 빠지기 일쑤다. 주위 사람들은 항상 그의 심기를 건드릴까 눈치를 보고 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척하는 인간. 자기가 필요한 순간에는 물건처럼 이용하려 하지만 필요 없거나 내치고 싶을 땐 바로 버리려는 인간.


이상하게 그런 부류의 인간 측근에는 그 행동을 도와주고 감시해주는 사또 옆의 이방 같은 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익에 따라 움직이며 겉으로 티를 안 내려 말을 흩뿌리고 다니지만 알 수 있다. 그의 부자연스러운 행동과 말투, 억양, 눈빛, 감시하는 눈초리를. 이방 앞에서 사또 이야기를 한다는 건 날 잡아 잡수라는 것과 동일한 처사다.


근데 이방이 더 밉다 요즘은. 일제시대라면 앞잡이라고나 할까? 군대에서 치약 미싱을 핑계로 부조리로 불합리하게 괴롭히던 상병이나 선임이 생각났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면 주변 사람들을 수동적 조력자로 만든 후 끊도 없는 괴롭힘과 조금씩 찔러대는 무한반복 스트레스를 주겠다는 의미인가? 변태들을 상대하기에 너무 힘들다. 초미세먼지가 너무 작아서 느끼지 못하지만 언젠가 암을 유발하는 것처럼 주변에는 항상 변태들이 도사리고 있다. 나는 이제 당하는 입장은 진절머리가 나서 그만하기로 했다.


한없는 죄의식, 무력감, 좌절감, 끝없는 분노, 장기적이고 집요한 미세먼지 같은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기로 마음먹었다.


"이러다 내가 미치는 게 아닐까?"


누구도 당신을 제 맘대로 하게 내버려 두지 마라.


임기응변, 예의, 유연성, 냉정함, 단호함으로 무장하고 나를 무너뜨리려는 수작에서 방어하기로 했다.

그리고 단단한 사람이 되겠다. 아무도 나를 쉽게 건드리지 못하도록 하겠다.


부디 감정과 폭력으로 부딪히지 말지어다. 적이 원하는 대로 싸우는 것은 바보짓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술자리 안주거리가 되면 안 된다.


살면서 지쳐서 겁이 나서 도망간다면.. 그래 잘살아라 하고 나를 놔주고 내버려 둘까?

더 이상 도망가지 않기로 했다. 도망가고 싶을 땐 순전히 내 의지로 인정하는 순간에 도망가겠다.

아직은 도망갈 때가 아니다.


마음을 치료하고 다잡고 다스릴 수 있는 글과 종이 펜이 항상 곁에 있어 그래도 다행이다.

"저 사람은 왜 저런 말을 할까?" 지금의 이런 쓰레기통 같은 감정과 경험이라 말하기 싫은 경험도 언젠가 글쓰기의 피와 살이 되어줄 거라 믿고 있다.

이젠 이것들이 나의 무기가 되어준다면 좋겠는데...


이유 같지 않은 이유..




아이유..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가수다.






힐링 +1

매거진의 이전글 따돌림과 열등감, 인간에 대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