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 무덤 목격담

by 하현태



식겁한 여름 오후 나는 기억해요

그 시간은 머뭇거리는 순간 얇아지고 말아서

산호 틈틈이 먹물 담아 보내지요


만경(晩景)은 늘 느려서요

연거푸 삼키는 숨 닮아서요

쌓을수록 묻히고만 싶어서요


시인은 바람에 나부끼는 여름에서 시를 읽었고

독자는 덮어둔 시집에서 시인의 여름을 들었죠


공기의 맛을 묻는 아이에게 어른은 답해야만 한다

어렴풋한 매실 향이 난단다

어렴풋한이 뭔가요

공기를 머금다 보면 알게 된단다


아이는 어른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른은 아이가 된다

여름은 그런 불합리함을 품은 유사한 계절

유일할지도 모를 핑계를 달고 살아요


비스듬한 엇나감을 나는 참 좋아해요 빗나감이 하나둘 모인 곳을 교차점이라 부르고 엇갈리거나 마주친 부분에서 두루 관계된 서로는 살아가죠


행운을 얼려 투명한 플라스틱 잔에 담아주세요

어른의 요구에 아이는 응해야만 한다


네에-

행운이 뭔지 알고는 있니

뒷산에 무더기로 널려있어요 그래서 빨리 가야 해요 안 그러면 독자가 시집에 꽂아두고 다시 펴보지도 않아요 까먹을 준비가 된 얼굴로 왕창 가져가서 왕왕 돌아와요 근데요 어디 뒀는지도 모를 거면서 왜 가져가는 걸까요 그리구요 이미 한 번 잃어버렸으면서 왜 돌아오는 걸까요


창백한 여름 오후를 나는 기억해요

그 시간은 머무르는 순간 엷어지고 말아서

휴지 틈틈이 수돗물 담아 던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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