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음과 틀림의 경계에는 늘 내가 있었다. 그건 왼쪽과 오른쪽, 혹은 위와 아래와 같은 단순한 반의어가 아니라 동전. 숫자와 그림을 보는 시선의 차이일 뿐. 다만 우리는 선택의 오차를 버틸 수 없는 마음을 타고 태어난지라, 한 면을 석고에 대고 오랫동안 굳히고, 굳히고, 굳히고, 굳히고, 굳히고, 굳힌다. 비로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선택한 면만 볼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마침내 기뻐한다. 내 선택이 결국 옳았다고.
그 사람의 30,000쪽짜리 일기는 그렇게 끝나 있었다
보드라운 붓질과 후-, 후-, 하던 대학원생은 무언가를 다짐한 듯 그 길로 떠났다 들리는 말로는 카페를 했다던가 유적(流賊)을 만나 죽었다던가 그러나 그건 조금 뒤의 일 당장은 새빨간 가죽 덮개가 품은 노생을 뒤집어엎어야 했다
교수는 대학원생이 팽개친 붓을 반으로 쪼개어 하나는 캠프에, 다른 하나는 일기가 있던 자리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흙으로 덮어버렸다
나는 그 일기와 석고를 분석하는 일을 맡았다 그 말인즉슨 하얀 테이블과 잘 소독된 장갑 없이는 숨도 골라 쉬어야 하는 처지라는 뜻 그러나 딱히 반감은 없다 교수의 말대로 올해는 꼭 졸업해야 하니
다만 의구심이라면 처음부터 중간까지 눌어붙은, 누군가 꾸역꾸역 눌러 붙인 일기장 자칫 찢어버리면 졸업이고 뭐고 교수가 날 찢을 게 분명하고 그렇다고 두기에는 내용이 너무나도 궁금한, 그러나 마지막 내용만 보자면 마땅히 알고 싶진 않은
석고와 일기는 한 세트로 대영박물관에 팔려 입구의 로제타석을 치우고 당당히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나는 흰옷 차림으로 흰 천을 치우는 역할이었고 설명란에는 내 이름이 영어로 적혀 있었고, 있고, 있을 것이다
그렇구나 그 대학원생이 옳았었어
교수는 내가 팽개친 흰색 옷을 연구실과 석고가 있었던 자리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흙으로 덮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