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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오 May 20. 2020

적당히 아날로그 한 인생 살기

1. 집중력 저하

원래도 나는 집중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노력한 것에 비해 대부분 성과가 좋았기 때문에 집중력을 키우려고 노력해본 적이 없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3년 내내 친한 친구 한 명과 시험 점수 내기를 했다. 그 친구의 공부 철학은 시간과 점수는 비례한다고 믿는 것이었다. 그래서 시험기간에 하룻밤을 그대로 밤새는 일은 당연한 것이었고, 3일 동안 중간중간 눈을 붙이는 정도로만 쉬어주며 공부를 하기도 했다. 반면에 나는 시험기간에도 책을 보는 시간이 하루에 2시간을 잘 넘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는?

3년간 12번의 시험 중 6번을 이기고, 6번을 졌다.


그렇게 나는 내 학습능력에 대해서 크게 불만을 가지지도 만족도 하지 않은 채 살았다. 20대에 들어서서도 도전한 자격증을 곧잘 따냈고, 좋은 대학교는 아니었지만 받은 학점으로 불이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 자신에 나름의 자부심을 느끼고 살고 있었는데 그 얕은 배움에 대한 한계치가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30대에 들어서서 좋아하는 분야 외에도 어쩔 수 없이 배워야 하는 몇 가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범죄나 남에게 피해가 주는 행위만 아니라면 뭐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배운다는 것 자체에는 거부감은 없었다.


그렇지만 큰 문제가 있었다. 단지 열심히 또는 오랫동안 배운다면 어느 정도의 레벨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열심히도 아니고 오랫동안도 아니었다. 바로 집중하는 습관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본래도 어떤 한 가지에 집착하고 집중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30대가 된 내가 사는 환경은 나 같은 사람이 집중하기에 더욱 쉽지 않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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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이 예전보다 더 떨어졌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1. 영화관이 아닌 공간에서 어떤 영상을 볼 때 그것을 2시간 내내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관이라는 특수성이 있는 곳이면 영화가 끝날 동안 핸드폰을 끄거나 가방에 넣고 잘 꺼내지 않게 된다. 적어도 남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영상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해 주고, 덥거나 춥지 않아 영상에만 집중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집이나 다른 공간(주로 집이지만)에서 보는 영상에는 온전히 집중을 하기 어렵다. 보는 중간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곧바로 핸드폰을 열어 검색을 해보고, 검색을 한 김에 SNS까지 한번 둘러보고 다시 영상에 눈을 돌린다. 게다가 조금 지루한 장면이 나오기라도 하면 키보드나 핸드폰의 오른쪽 화살표를 마구 눌러준다. 최근에 (집에서) 2시간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화에만 집중했던 적이 있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브루클린 나인나인이라는 20분짜리 미국 시트콤을 열심히 보고 있다.


2. 음악을 듣는 시간이 짧아졌다. 해군에서 군 복무를 했는데 그 당시 해군 특성상 MP3를 소지할 수 있게 허가해주었다. 그렇지만 아직 일병이었던 나는 과업 시간에 노래를 들으면서 일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라고 자주 생각했다. 후에 MP3를 가지게 되었을 때 지루한 일상을 음악에 의지하며 뗄 수 없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여전히 음악을 듣지만 음악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생긴 것 같다. 샤워를 할 때도 음악보다는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고 샤워를 하거나 영상을 보지 않아도 영상의 소리만 듣는 시간이 길어졌다.


3. 화장실에 갈 때나 버스, 지하철에서 잠시라도 무료한 시간을 보낼 때 뭔가를 읽거나 보지 않으면 답답하다. 하지만 꼼꼼하게 읽지는 않는다. 무언가를 반드시 읽어야 하지만 그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지는 않게 되었다. 초록창의 뉴스를 읽을 때면 제목으로 내용을 예상해 보고 바로 댓글창으로 내려와 사람들의 의견을 보게 된다. 내가 꼼꼼하게 뉴스를 읽고 스스로 내 의견을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정리해놓은 것,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용을 읽는 것이 더 편해졌다.


이 외에 사소한 일들이 많지만 나의 삶에서 크게 변한 것이 있다면 이 정도로 줄여볼 수 있다. 인생에서 가장 능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에 가장 집중력이 떨어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세상이 바뀌는 만큼 사람들의 습관이나 성격이 바뀌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변화(집중력 저하)에 큰 위기감을 느꼈다. 학창 시절에 중간, 기말고사를 준비를 제대로 못했을 때보다, 취업준비 때 남들보다 스펙이 부족했을 때보다 더 큰 위기라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파훼법은 적당히 아날로그 한 삶을 살아보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가장 중심에 서있는 스마트폰이 삶의 질을 높여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삶의 깊이를 얕게 만들었다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미 우리의 삶에서 뗄 수 없는 존재인 스마트폰을 단순히 멀리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스마트폰을 억지로 멀리하지 않되 아날로그틱한 습관들을 좀 더 가까이 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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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이와 펜을 좀 더 가까이하는 습관

장 볼거리, 약속시간, 해야 할 일 등을 핸드폰이 아니라 종이에 펜으로 직접 쓰고 있다. 비싼 다이어리도 필요 없고, 글씨가 이쁠 필요도 없고, 깔끔하게 정리할 필요도 없이 단순히 정보 기억을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 깔끔하게 정리를 위한다면 후에 당연히 엑셀이나 워드를 이용하면 된다. 이쁜 펜과 샤프, 그리고 연필 등이 여전히 많이 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수 십장이 적힌 메모장을 보면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저장이 안 되어 곤란한 경우도 생기지 않는다.


2. 충전하는 제품들을 줄인다.

핸드폰, 스마트워치, 블루투스 이어폰, 블루투스 스피커, 카메라 등 요즘은 대부분 케이블이 없이 무선 제품이거나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사용한다. 아침 집에서 나올 때 이어폰이나 스마트워치가 충전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면 그 날 하루는 시작부터 불쾌하고 불안한 하루가 될 것이다. 케이블이 있는 이어폰은 핸드폰에 꽂기만 하면 고음질의 음악이 펑펑 나오고, 한번 사면 몇 년 동안 배터리 바꿀 걱정 없는 싸구려 손목시계는 시간 딱 하나만 알려주고 있지만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다만 주머니 속에서 꼬인 줄을 푸는 게 조금은 귀찮긴 하고, 몇 걸음이나 걸었고 몇 칼로리나 소모했는지 볼 수는 없지만 본래 자신의 역할은 제대로 하고 있다. 또 가끔은 인터넷에서 감아서 쓰는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구입해서 사진도 찍어보았다. DSLR이 있어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던 내가 아주 감성적인 사진작품을 찍어내고 있다.


3. SNS 활동은 핸드폰이 아닌 컴퓨터나 태블릿으로만 하기

나는 특별히 사진이나 일상을 많이 올리지는 않지만 그 누구보다 눈팅을 많이 한다고 자부한다. 댓글을 많이 남기지도 않고, 팔로워에 집착하지도 않는 내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SNS를 들어갔다 나오곤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끊을 수는 없겠다 판단해서 일단 전용 어플을 지워버리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나 태블릿을 이용해서 몰아서 보고 있다.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무언가를 할 때(예를 들어 집에서 영화 볼 때)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줄여줄 수 있다.


4. 글을 꼼꼼히 읽는 습관

인터넷으로 뉴스를 볼 때 특히 연예나 스포츠면을 볼 때는 기사 내용보다 바로 스크롤을 내려 다른 사람들의 댓글을 좀 더 집중해서 보게 된다. 겨우 20줄 정도밖에 안 되는 기사지만 이 조차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 그래서 일단은 가장 흥미가 생기는 제목의 기사를 하나 선택하고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 그것을 읽는 데는 1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렇게 하나의 기사를 읽은 후에는 이전처럼 제목과 댓글을 보러 가면 된다. 하나의 기사를 꼼꼼히 읽자는 취지였지만 요즘은 훑어보더라도 좀 더 꼼꼼하게 훑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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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여전히 집중력이 부족하지만 30년간 이렇게 살아온 내가 한순간에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나름의 그 이유를 찾고 고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한다면 생각보다 쉽게 바뀌는 것이 사람의 습관이다. 내가 집중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100세 시대를 대비해 제2의 직업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나의 치명적인 단점을 발견했다. 현재는 머리보다는 몸이 고된 직업을 갖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래서 반대로 머리가 고된 일을 제2의 직업으로 삼기로 마음먹었고, 몇십 년간 제대로 쓰지 않은 머리 덕분에 집중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깨달았다. 먹을 갈아 글씨를 쓰거나 스마트폰을 완전히 배제하고, 인터넷 없이 살기 등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는 없지만 나는 2번째 내 인생을 좀 더 차분하고 집중하며 살기 위해 지금부터 적당히 아날로그 한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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