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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오 May 23. 2020

재외공관 요리사의 고민 - 무슬림들을 위한 메뉴

단체급식, 군대 취사병, 병원 조리사, 영양사 등 일반 레스토랑처럼 고정된 메뉴가 없이 요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메뉴를 짜는 것일 거라 확신한다. 매일매일 또는 매주, 매달 되도록 식재료와 조리방법이 겹치지 않도록 메뉴를 구성하는 게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 수교 중인 나라 159개국에 대사관 또는 총영사관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재외공관에서 하는 수많은 일들 중 하나가 '한식외교'이다. 훌륭하고 의미가 담긴 음식은 각국의 외교관들이 서로의 목표를 향해 동행하는데 제대로 된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음식이 자신들의 전통음식의 형태를 지키면서 초대된 손님들의 종교, 문화, 식습관까지 고려해 대접한 음식이라면 그 날의 대화는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 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각 공관에서는 상황에 맞게 재외공관 요리사를 채용하고 있다. 이들은 한식을 기본으로 중식, 일식, 양식이나 제과제빵, 아세안 푸드 등 수많은 음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단순히 요리에 대한 지식 외에도 종교, 문화, 체질 등과 관련된 지식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재외공관 요리사들은 관저에서 열리는 오, 만찬 행사가 예정이 되면 메뉴를 구성하는데 가장 큰 힘을 쏟아붓는다. 물론 수많은 레시피와 메뉴 구성을 가지고 있지만 방문하는 손님의 특성에 따라 반드시 변화를 주어야 한다.


 이 곳은 이슬람교를 따르는 무슬림이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지만 소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양고기, 말고기까지 다양한 고기를 고기를 먹는다. 또한 술을 마시지 않아 늦은 저녁시간보다는 점심에 술 없이 가볍게 즐기는 오찬 행사에 초대하는 경우가 많다. 이 날 방문한 손님들은 모두가 무슬림은 아니었지만 한두 명의 무슬림 손님을 위해 돼지고기를 이용한 요리는 일절 배제하고 메뉴를 구성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 나라의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는 고기는 단연 닭고기라고 할 수 있다. 애피타이저로 샐러드 대신 닭고기 냉채를 선택했다. 값이 저렴하고 가장 즐겨먹는 채소인 오이와 당근을 채 썰어 사용했고, 닭가슴살과 다릿살을 곱게 찢어 양념해 사용했다. 닭고기를 무칠 때 들깨가루를 조금 넣어도 좋지만 익숙하지 않은 식재료에 거부감을 느낄까 봐 빼버렸다. 가장 큰 걱정이었던 발효 시켜 만든 겨자소스는 한국인들이 먹기에도 매운 소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묽게 만들어 매운맛을 줄였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소스에 대한 칭찬이 많아 놀랐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로 제공된 메뉴는 대하를 이용한 꼬치 메뉴이다. 대하의 머리와 꼬리를 살려서 요리를 했다면 좀 더 먹음직스러워 보일 수 있겠지만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 새우껍질을 발라내고 있는 상상을 하니 대화가 순조롭지 않을 거라 판단되어 껍질을 모두 제거하고 구워냈다. 이 곳은 바다가 없는 나라라 해산물이 다소 생소하지만 그나마 새우는 꽤 쉽게 접할 수 있는 식재료이다. 새우 사이에 가래떡을 넣고, 매콤 달콤한 강정소스를 발라가며 구워낸 대하구이는 이 날 최고의 인기 메뉴가 되었다. 촉촉한 새우 한입, 쫀득한 떡 한입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해냈다.



 바다가 없어 해산물은 대부분 냉동이고, 종류도 다양하지 않지만 대신 최상급 품질의 고기를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단순한 고기 요리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신선한 소고기 안심에 한국식 불고기 소스로 절여 수비드 한 불고기 스테이크를 메인 요리로 선택했다. 수비드라는 요리기법이 일반 사람들에게는 생소하지만 부드럽게 스테이크를 만들 수 있으면서 이렇게 많은 손님들에게 빠르게 제공해야 할 때도 좋은 요리방법이다. 고기에 이미 양념이 되어 있으니 소스를 따로 뿌려줄 필요도 없고, 속까지 다 익었기 때문에 겉만 바삭하게 구워 나가면 색다른 식감의 불고기를 맛볼 수 있다. 역시 Do you know 불고기의 한축을 맡고 있는 음식답게 남은 음식이 없었다.




 재외공관의 코스 메뉴가 조금 특별한 것이 있다면 적은 양이지만 밥, 국, 반찬(김치)으로 구성된 메뉴가 꼭 들어간다는 것이다. 한국음식의 가장 원초적인 매력은 갓 지은 하얀 쌀밥에 김치나 젓갈 등의 반찬을 올려 한 입 먹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 맛을 알려주기 위해 디저트가 제공되기 전 꼭 밥과 국이 들어간 한상차림을 제공한다. Do you know 불고기에 이어 Do you know 비빔밥과 손수 빚은 만두로 만든 만둣국이 제공되었다. 매운 음식이 익숙하지 않아 고추장 소스와 간장소스 두 가지를 준비해 기호에 맞게 먹을 수 있도록 설명했다. 만두에 들어간 고기조차도 소고기와 닭고기를 섞어서 이용했고, 육수 또한 건어물을 이용한 육수를 사용했다.



 마지막으로 커피나 차와 함께 제공되는 디저트 역시 대부분 한국식으로 제공된다. 매작과나 떡, 양갱, 한과 등 많은 종류가 있지만 이 날은 조금 다른 디저트를 준비했다. 이 나라에서는 팥을 잘 먹지 않지만 딱히 싫어하지도 않는다. 종종 팥이 들어간 음식들을 제공했지만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먹는 방법이 다양하지 않아 좀 더 맛있게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 항상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팥을 이용한 디저트를 만들어보았다. 녹차가루를 섞은 반죽에 팥을 삶아 설탕을 섞어 단팥 소를 만들어 넣어준다. 팥 자체를 달게 먹거나 디저트로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엔 긴가민가 하다가 이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익숙한 식감의 케이크에 생크림 후에 들어오는 달콤한 팥향이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디저트를 마지막으로 코스요리는 끝이 난다. 돼지고기를 이용하지 않은 코스 메뉴를 구성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양한 매력을 가진 한식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재외공관이 설치되어 있는 160여 개 국의 나라 모두가 다른 식문화, 예절, 종교 등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들의 입맛을 맞추는데 한식만큼 적합한 음식이 없다고 자부한다. 수많은 식재료를 사용하고, 수많은 조리방법을 이용하는 한식이기 때문에 조금의 변화를 주면 전 세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식이 될 거라 굳게 믿는다. 재외공관 요리사로서 앞으로도 한국음식이 외교활동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작은 손을 보탤 것이다.


*이 행사는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 진행된 행사입니다. 현재는 모임이 불가하고, 공관 자체에서 자재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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