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고향은 아니지만 인생의 절반을 부산이라는 도시에 살았다.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본래 그 도시에서 태어난 토박이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후 이사를 온 사람들이 그 도시에 대해서 구석구석 잘 알고 있다. 토박이들은 자신들의 구역을 쉽게 벗어나지 않지만 이사를 해 온 사람들은 맛집, 관광지, 숨어있는 명소 등 이곳저곳을 전부 가보려 애쓰곤 한다. 나의 경우는 후자로써 요리 공부를 하면서 부산 곳곳을 돌아다니곤 했다.
부산하면 특히 '생선회'가 유명했고, 나 또한 생선회를 좋아했기 때문에 돈만 생기면 회를 먹으러 나섰다. 하지만 바다와 접해있는 도시라고 해서 특별히 가격이 싸다거나 특별한 생선을 맛볼 수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평균적으로 횟집의 개수가 많고 올라오는 반찬들의 좀 더 푸짐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자주 즐겨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그래서 해운대, 광안리, 자갈치시장, 송도 등 생선회를 싸게 먹을 수 있다고 알려진 모든 곳을 돌아다니며 나만의 맛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생선회를 먹다 보면 손님이 많은 주말 또는 제철 생선이 많이 나오는 늦은 겨울에서 봄에는 밑반찬으로 나오는 해산물들의 종류가 좀 더 다양해진다. 단골을 잡기 위함 또는 사이드 메뉴를 주문하게 유도하는 마케팅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서비스로 새우, 낙지, 해삼, 멍게, 키조개 관자 가끔은 전복까지 맛볼 수 있었다. 좀 비싼 해산물이 서비스로 나오는 날에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한두 젓가락씩만 먹어서 그런지 조개나 새우, 전복 등이 특별히 맛있게 느껴졌다. 메인 메뉴였던 생선회를 다 먹을 때까지 제일 처음 먹었던 서비스 해산물이 맛이 기억에 남아 입안에서 맴돌았다. 그래서 하루는 조개나 대하구이만 파는 곳을 먹으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갑각류 파티를 하기 위해 날을 잡고 계획을 짰다.
부산에서는 생선회 외에도 여러 가지 갑각류를 맛볼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해운대 청사포와 송도 암남공원의 모둠 조개구이와 대하구이, 기장시장의 대게와 랍스터 찜 그리고 전복까지. 요즘에는 해산물을 취급하는 술집에서 파는 꽃새우 회나 딱새우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조개구이는 일단 서빙이 시작될 때부터 압도적인 비주얼 덕분에 '와 정말 잘 왔다.' , '조개구이를 먹기 정말 잘했다.' , '돈이 아깝지 않다.' 등의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것이다. 이쁜 모양의 가리비와 엄청난 크기의 키조개와 전복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을 보면 저절로 군침이 줄줄 흐른다.
하지만 조개구이의 가성비는 지금부터 따져볼 가치가 있다. 빨갛게 달아오른 숯불 위에 석쇠를 올리고 각종 조개들을 올리기 시작한다. 이미 눈으로 조개들을 맛보았기에 위장은 착각을 하고 요동을 치고 있다. 하지만 커다란 석쇠 위에 올라갈 수 있는 조개의 기껏해야 5개 정도. 그나마 큰 껍질의 키조개는 빼고 가리비와 전복 몇 개 바지락 몇 개가 전부다. 크기가 작은 바지락만 올리면 꽤 많이 올릴 수 있지만 구워진 바지락은 어금니로 씹기도 민망할 만큼 살점이 쪼그라들어있다. 조개구이는 제공될 때부터 푸짐해 보이지만 먹지 못하는 커다란 껍데기들이 대부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먹을 수 있는 속살만 발라내서 서빙을 한다면 절대 이 가격에 사먹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갓 구운 신선한 조개의 맛은 그 어떤 해산물보다 맛이 좋았다.
소스와 치즈가 듬뿍 들어간 포일 접시에 구워진 조개를 넣어서 먹는 것도 별미인데 치즈와 소스를 넣어둘 접시 때문에 석쇠에 조개가 올라갈 자리는 좀 더 좁아졌다. 삼겹살처럼 한 번에 구워져서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맥 한 잔 들이켜고 조개구이 한 점, 그리고 식어버린 미역국이나 오이를 쌈장에 찍어 아쉬움을 달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추가로 대하구이를 시켰기 때문에 좀 더 많이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손가락 두 개를 합친 것보다 큰 신선한 대하가 나오고 껍질 째 숯불에 올리면 금세 빨갛게 익는다. 머리를 따고, 껍질을 벗기고 초장을 찍어 한 입 먹으면 어느새 대하가 중하가 되어버리는 기적을 볼 수 있다. 대가리가 커서 대하였나 보다.
조개구이를 한 점 먹고 쉬었다가 또다시 한 점을 먹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사람이 음식을 섭취한 뒤 20분 후부터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덕분에 몇 점 먹지 않았어도 배가 부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별미인 라면으로 만족하지 못한 배를 채워준다.(+3,000원)
조개구이는 이 길쭉하고 얇은 다리를 가진 '대게'에 비하면 양반이다. 이 대게찜은 대부분 Kg을 기준으로 판매한다. 하지만 대게와 킹크랩은 이런 판매방식에 가장 불리한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울긋불긋 촉촉하게 익은 대게의 껍데기를 보면 역시나 저절로 입맛이 생긴다. 하지만 먹음직스럽게 빨갛게 익은 껍데기는 이쁜 쓰레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아니 오히려 맛있는 식사를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다. 촉촉하고 보들보들하면 적당히 쫄깃한 속살을 맛보기 위해서는 이 딱딱한 껍데기의 관문을 넘어야 한다. 먹지도 못하는 이 껍데기마저 비싸게 계산하고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래도 촉촉한 속살과 고소한 내장으로 만든 볶음밥을 맛보면 화가 수그러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주말에 연차를 붙여서 아주 빽빽한 일정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주어진 시간과 여비가 많지 않아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짧은 일정이 천추의 한이 되어 아쉬웠지만 그 여행의 여운이 너무나도 짙어 한동안은 아름다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지낼 수 있었다. 몇 년 후에 회사를 관두고 시간과 돈의 여유가 생겨 아름다웠던 기억만 남아있는 그때의 도시로 가서 한 달을 보냈다. 하지만 한 달간 지내본 그곳은 예전의 그곳이 아니었다. 곳곳에 쌓인 쓰레기와 수많은 사람들의 노상방뇨로 불쾌한 냄새, 더러운 길거리 음식, 꽤 자주 보이는 소매치기 등 많은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모든 도시에서 있을 법한 현상이지만 그때 짧았던 아름다운 일정에선 볼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이처럼 조개구이나 대게 등의 해산물들이 다소 비싸고 가성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짧은 여행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과 비슷하다. 누군가가 먹기 좋게 익혀주고, 가격이 저렴해서 이런 해산물들을 원없이 맛볼 수 있었다면 이 갑각류들의 인기는 지금처럼 높지 않을 것이다. 조개에서는 어느 순간 비린내가 느껴질 것이고, 대하구이는 뻑뻑함에 금세 질릴 것이다. 대게 역시 껍질을 발라내며 먹는 것에 짜증을 느끼게 될 것이고, 이런 갑각류들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다. 비록 가격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숯불향, 힘들게 벗겨낸 껍데기 속에 들어있는 하얀속살 그리고 시원한 소주 한잔 등의 맛이 더해져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는 음식이 되었다. 가격이 저렴하고 누구나 쉽게 맛볼 수 있는 음식으로 발전하면 좋겠지만 지금처럼 가끔 찾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음식으로 즐기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