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래오 May 20. 2020

대패 삼겹살은 값싸야 제 맛?

 대패 삼겹살, 벌집 삼겹살, 고추장 삼겹살 등 치킨 공화국에서 치킨 못지 않게 삼겹살 역시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삼겹살을 대패로 긁어낸 듯이 얇게 썰었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이 삼겹살은 대패 삼겹살만 파는 전문점이 있을정도로 높은 경쟁률을 뚫고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백종원 대표의 실수로 만들어 진 메뉴로 알려져 우리에게 더욱 친근해진 메뉴가 되었다. 그렇다면 대패 삼겹살의 인기요인은 무엇일까?


얇게 썰어서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

동그랗게 말려서 삼겹살 답지 않게 귀여운 모양 때문에?

아니면 저렴한 가격 때문일까?


 나는 17살 때부터 혼자 살기 시작했다. 크게 불우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혼자 살다보니 경제적으로 100% 독립은 못하더라도 적어도 짐은 되지 말자라는 마음이 독립하기 전보다 급격하게 커졌다. 성장기여서 먹는 양이 많아지는 시기였지만 고등학생이 아르바이트로 벌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었고, 그 돈은 먹고 싶은 것을 마음 껏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끼니를 거르는 정도로 어려운 상황은 아니라 단순히 고기가 먹고 싶어 부모님께 손을 빌리기는 싫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조금의 여윳돈이 생기면 선택했던 것이 고기뷔페나 대패 삼겹살집이었다.


당시에 1인분 1,900원 ~ 2,500원의 가격이면 식당에서 사먹을 수 있었던 대패 삼겹살은 가난했던 고등학생 자취생의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대패 삼겹살은 여전히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 땐 돈이 부족해서 대패 삼겹살을 선택했지만 지금은 그 때의 추억을 맛보기 위해서 대패 삼겹살을 종종 찾는다.


 저렴한 가격 때문인지 첫 주문임에도 불구하고 5인분은 주문해야 했다. 5인분을 주문하더라도 1만원이 채 나오지 않았고, 대패 삼겹살 1인분의 정의는 한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라는 의미가 아니었기 때문에 별 고민없이 5인분을 시켰다. 남자 고등학생에게 대패 삼겹살 5인분은 무난한 양의 식사량이었다.


 직원들은 주문을 받으러 오면서 이미 기본 밑반찬을 가지고 온다. 인위적으로 신맛을 내 익힌 중국산 김치, 콩나물 무침, 그리고 숨이 죽은 지 한참 되었고 끝이 마르기 시작한 파절이까지. 고기를 주문하기전에 이미 세팅이 완료되고 불판에 불까지 켜진다. 그리고 고기의 주문마저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대패 5개랑 밥 하나, 된장 하나 주세요."


고기가 나오기전에 기본으로 세팅되는 반찬의 양이 워낙 적어 이미 반찬이 담긴 접시를 가지고 셀프코너로 향한다. 김치와 파절이를 듬뿍 담고, 꼭지가 손질되지 않은 생마늘, 쌈무, 그리고 상추를 몇 장 담아서 자리로 돌아온다. 불판은 이미 충분히 달궈져 있고, 수북히 담긴 5인분의 대패 삼겹살은 어느새 테이블에 올려져 있다.


 

기름이 빠질 수 있게 약간 기울어져 있는 불판의 끝쪽에 중국산 김치와 콩나물을 먼저 얹는다. 그리고 남은 불판의 공간에 돌돌 말린 대패 삼겹살을 쏟아 붓는다. 하나씩 얹으면 마지막 고기를 불판에 얹으면 처음 올린 고기가 이미 익어버린다. 5인분의 반정도를 다소 좁아보이는 불판에 억지로 올려서 익혀준다. 부지런한 성격이거나 고기를 잘 굽는 친구가 있다면 돌돌 말린 고기를 일일이 풀어주면 좋지만 납작하게 눌린 원통 모양으로 구워지기도 한다.



불판만 잘 달궈져 있다면 대패 삼겹살은 올린 지 30초 정도면 먹을 수 있을만큼 익어버린다. 성격 급한 한국인들에게 최적화된 메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삼겹살에 비해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양을 한번에 올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기는 금세 익는다. 고기를 먹을 때 밥을 먹는 나는 익은 고기가 생길 때까지 은색 밥그릇의 뚜껑을 열지 않고 기다린다. 시원한 생수로 가볍게 목을 축이고, 불판위의 잘 익은 대패 삼겹살 한 점을 눈으로 먼저 고른다. 밥 뚜껑을 열고 달짝지근한 쌈장을 젓가락을 떠서 하얀 밥 위에 올린다. 바삭하게 잘 익은 대패 삼겹살을 잡아 쌈장이 올려진 밥 위에 올린다. 갓 지은 밥은 아니지만 김으로 싸 먹듯이 삼겹살와 쌈장과 밥을 감싸서 한 입에 넣는다. 복합적인 삼겹살 맛을 즐기기 전에 가장 깔끔하고 원초적인 삼겹살을 맛보는 일종의 순수한 의식이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 과정은 지금까지도 생략하지 않고 있다.


 그 후의 대패 삼겹살은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섭취된다. 상추쌈 위에 3점의 고기 그리고 쌈무, 파절이를 곁들여먹으면 전혀 느끼함이 없는 쌈이 된다. 깻잎과 구운김치, 그리고 생마늘의 조합은 강력한 한국의 향을 선보인다.

몇 가지 조합의 삼겹살을 먹다보면 처음 시킨 5인분은 간에 기별도 주지 못한 채 새로운 주문을 부른다. 한번에 10인분을 시킬까 고민하다가 가난한 주머니 사정이 떠올라 5인분을 추가한다. 설령 10분을 더 먹을 예정이라도 5인분씩 두 번을 주문하는 것이 좀 더 유리하다는 건 많은 사람이 아는 방법일 것이다. 팩트는 모르겠지만.



 쌈무, 파절이, 구운김치와 콩나물, 상추 등 단순하지만 고기와 딱 맞는 궁합의 조연들 덕분에 느끼함을 잊고 10인분의 고기를 수월하게 삼킬 수 있었다. 커다란 쌈을 싸서 먹다보면 목이 막히기도 하지만 절대 음료수를 시키지는 못했다. 한 병에 1,000원이나 하는 음료수는 사치였다. 대신 양파와 호박이 설익고, 조미료 맛이 강한 된장찌개를 몇 숟가락 먹으면 문제는 해결되었다.



 고기를 굽다보면 양념이 묻은 김치와 콩나물 부분이 많이 다버려 불판을 바꿔야할때가 있다. 하지만 불판을 바꾸고 다시 달굴 시간에 흐름이 끊겨버려 우리는 불판교체를 선호하지 않았다. 일단 고기는 위쪽으로 몰아놓고, 김치와 콩나물을 각자 앞접시로 옮긴다. 그리고 가져온 쌈무 몇 장을 집어 불판의 더러운 부분을 닦아준다. 쌈무의 산성이 불판을 닦는데에 효과적이다는 것은 과학 선생님께 물어본 후 더 큰 확신을 갖게 되었다. 쌈무의 희생덕에 흐름이 끊기지 않고 식사를 완주할 수 있었다.


 배가 미친듯이 고픈 날이 아니라면  두 명이서 대패 삼겹살 10인분과 공깃밥 하나를 먹으면 배가 부른 상태에 다다른다.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얼마인지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머릿속으로 지금까지 얼마치를 먹었는지 생각해본다. 친구와 단 둘이 가서 대패 삼겹살 5인분씩 두번을 주문을 하는 것이 우리만의 패턴으로 굳어졌다.


1,900원 x 5 + 1,000원 = 10,500 원이었고, 오늘의 지갑사정을 보아 1,000원정도는 더 지출해도 될 것이라는 판단이 나왔다. 그리하여 각자 공깃밥 하나씩을 더 추가한다.


 불판에는 남은 고기가 없어 고기를 가지고 온 접시를 보니 부스러기 고기가 녹아 접시에 딱 붙어있는게 보였다. 젓가락으로 긁어모아 불판에 올리고 어이없다는 듯이 친구와 웃었다. 돼지기름이 아직 남아있는 불판에 김치와 콩나물을 넣고 들들 볶아준다. 어느정도 익으면 가위로 모든 재료를 잘게 잘라준 뒤 새로 주문한 공깃밥을 넣는다. 몇 번 먹어본 결과 김치와 콩나물로만은 간이 항상 부족했다. 남은 된장찌개를 넣어봤지만 볶음밥 특유의 고슬고슬함이 줄어들어 적합하지 않았고, 이것저것 테스트한 결과 쌈장이 볶음밥의 감칠맛을 더해주고 간까지 완벽하게 맞춰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골고루 섞어준 뒤 약간의 누른밥을 만들기 위해 볶음밥을 넓게 펴주고 센불로 잠시동안 인내하면 완벽한 마무리를 할 수 있다.



 요즘에는 1인분에 9,000~12,000원 정도로 가격이 형성된 고급 대패 삼겹살집도 많이 볼 수 있다. 나이도 들고, 그 정도 가격은 크게 부담되지 않아 가끔 방문을 하게된다. 1,900원짜리 대패 삼겹살은 말만 삼겹살이지 부위 자체는 삼겹살이 아닌 부위도 많이 섞여있다. 하지만 고가의 대패 삼겹살은 가지런히 정리된 고기와 지방층이 보이고 1인분의 양도 많은 편이다. 갓 무쳐나온 파절이와 깊은 맛의 된장찌개, 실력있는 찬모가 직접 담근게 확실한 김치 등 모든 방면에서 우수하다. 몇몇 곳은 귀한 명이나물까지 함께 맛 볼 수 있었다.


 정갈한 음식을 먹고 나왔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다소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굳이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았고, 왜 그런지 분석해보지 않았다. 어떤 곳이 더 뛰어난 음식점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대패 삼겹살의 맛을 머리가 기억하고 있다. 고기와 어울리는 묵은지를 만들기 위해, 된장찌개의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신선한 재료를 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 음식점들의 노고를 인정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 1인분에 2천원 남짓의 고기를 먹기위해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볶음밥을 더 맛있게 먹기위해 된장찌개나 쌈장을 넣어서 볶아본 나의 노력들이 그것들을 능가하기도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