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참'이라고 하면 생전 처음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보통은 힘든 육체노동을 할 때 끼니사이에 먹는 간식을 새참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이 단어는 농촌이나 어촌 등에서 더욱 자주 쓰이고 있다. 요즘처럼 모내기나 양파를 수확하는 철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노동이 필요하다. 그런 노동을 감당하려면 하루에 세끼를 먹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잠시 짬을 내어서 뭔가를 먹어줘야 하는데 그것을 새참이라고 부른다.
나는 고향이 농촌이라 부모님이 농사를 직접 짓지 않더라도 친구의 가족, 친척, 아르바이트 등으로 농번기에 이런 고된 일을 접하게 될 기회가 종종 있었다. 일이 얼마나 힘들지도 모르고 덜컥 한다고 했다가 큰 코 다친 적이 많았다. 하루종일 허리도 펴기 힘들고, 뜨거운 햇빛 아래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렇지만 초보자인 나에게 고된 일을 버티게 해주는 요소 중 하나가 '새참'이었다.
보통은 일꾼들은 각자의 집에서 푸짐하게 아침밥을 먹고 출발을 한다.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면 햇빛이 뜨거워지기 전에 최대한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리곤 아침 9시가 조금 넘어서 근처 그늘이나 평평한 곳을 찾아 모여 앉는다. 뜨거워 질 오후를 대비해서 에너지를 보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참에는 특별히 정해진 규칙이나 룰도 없고 격식도 없다. 그저 준비해주는 사람 마음대로 메뉴가 정해지고, 바닥에 주저 앉아 음식을 먹는다. 다만 양은 푸짐해야 하고 막걸리나 마실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보이지 않는 규칙정도는 존재한다.
새참에 나오는 많은 메뉴들이 있지만 기억에 남는 메뉴를 꼽아보자면 잔치국수나 비빔국수, 열무 비빔밥, 강된장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잔치국수를 가장 좋아했다. 그저 면요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흙먼지가 날리는 논밭에서 밥보다는 술술 넘길 수 있는 국수가 먹기 편했다.
스텐으로 된 대접, 나무젓가락, 몇 가지의 김치나 반찬이 담긴 플라스틱통 등 여러가지가 담긴 커다란 고무대야가 먼저 바닥에 내려진다. 그러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찬통을 열어 가운데로 옮기고, 스텐그릇 하나씩과 나무젓가락을 각자 나눠 가진다. 살짝 불어서 들러붙은 국수면에 생수를 살짝 넣어 풀어준 뒤 먹을만큼 자신의 그릇에 담는다. 한데 섞은 채썬 당근과 양파, 부추 등을 한줌씩 대접에 올리고, 김가루를 듬뿍 올려둔다.
담백한 멸치육수가 담긴 오묘한 색깔의 양은 들통에는 아직도 김이 삐져 나오고 있다. 커다란 국자로 한 국자씩 그릇에 담고 양념장을 기호에 맞게 넣은 뒤 씹는과정을 생략하고 후루룩 국수를 삼키기 시작한다. 슴슴한 국수에 새곰하게 잘 익은 열무김치 한 점씩 집어 먹는게 어느순간 귀찮아져 열무김치 한 젓가락을 듬뿍 집어 국수그릇에 넣고 휘휘 섞어서 먹는다. 그렇게 국수를 한 두 그릇씩 후루룩 마신 뒤 막걸리나 음료수를 마시며 첫 번째 새참시간을 마무리한다. 준비해온 종이컵이나 막사발이 있지만 다들 자신이 먹었던 국수 그릇을 몇 번 툭툭 털어 막걸리나 음료수를 받아 마신다. 너도나도 '크으~'라고 한 번 소리내주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렇게 힘을 얻은 사람들은 다시 힘을내어 쉼없이 노동을 한다. 농촌의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의 논밭인 것 마냥 감정이입을 해서 일을 해주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작은 시골마을에서는 일을 하는사람, 일을 시키는 사람 모두 부모의 친구, 친구의 부모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오후 3~4시쯤 다시 두 번째 새참시간이 다가왔다. 그 사이 점심식사도 푸짐하게 했지만 뜨거워진 햇빛 때문인지 가지고 있던 체력이 바닥난 것인지 점점 더 힘이든다. 그래서 오후의 새참은 보통 달콤한 것이 배달된다. 팥빵, 소보로빵, 땅콩크림빵, 노란크림이라 불리는 슈크림빵 등 이름도 없는 투명한 봉투에 담긴 옛스러운 빵들과 우유나 쥬스그리고 시원한 냉장고에서 갖고 왔는지 표면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수박 한 통까지. 당 떨어진 오후에 딱 맞는 새참이 도착했다.
평소에는 이런 빵 사먹어볼 생각도 안했지만(사고 싶어도 어디에서 사야하는지 모르겠지만) 팥빵을 하나 후다닥 삼킨 후 '제발 노란크림빵 하나만 더'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검은 봉지 속을 뒤적거린다. 조개처럼 생긴 노란크림빵을 집은 후 다른 사람이 찾을까봐 얼른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빵이 달콤해서만은 아니고 두 번째 새참을 먹고 나면 남은 노동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농번기의 농촌은 그 어느 직장인들보다 힘들고, 바쁜 시기다. 육체적으로 더욱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한계가 오겠지만 농번기가 끝이나면 조금은 여유를 가질 시기가 있다.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일을하며 소소한 잔소리도 들을 것이고, 작은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일을 하러가면 어르신들은 하나하나 챙겨주며 신경써준다. 농촌에서 젊은 일꾼이 귀하기 때문이다. 또 이런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처음 왔다고 텃세를 부리거나 시비를 걸지 않는다. 그런 따뜻한 마음을 느낀 나는 어르신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힘든 일을 하려고 신경을 쓴다.
수많은 직장인들은 매일매일 작은 농번기를 겪고 있다. 진짜 모내기를 하고 양파를 캐는 것보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지 않겠지만 그들의 농번기는 끝을 알 수 없다. 그들에게는 정성이 듬뿍 담긴 푸짐한 국수 한그릇도 없고, 시원한 막걸리 한잔, 달콤한 빵 한 조각도 없다. 젊은 사람들이 귀하다는 마음을 가진 어르신들도 없고, 어르신들을 위해 힘든 일을 더 하려는 젊은이들의 마음도 없다. 그저 빡빡한 삶을 버티기 위해 국수 대신 커피를 마시고, 막걸리 대신 소주나 맥주를 마신다. 농촌에서는 고된 노동을 버티기 위해 먹는 푸짐하게 먹어야 하는 새참이지만 직장인들에겐 틈틈히 마시는 커피나 퇴근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이 꼭 필요한 새참이다. 덕분에 한국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카페와 술집이 존재한다. 그들에게 딱맞는 새참을 제공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