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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오 May 20. 2020

상처의 여러 가지 형태

짧은 소설

 나는 남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에는 질색하고, 남들이 다 가는 유명한 여행지는 후보지에도 넣지 않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무난한 것을 고르는 사람들보다 더 많이 실패하고, 실망하고,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때까지는 한 가지 일이 잘못되더라도 그 일이 수습될 때까지 또 다른 사건이 터지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힘들어도 무너지지 않고 극복해낼 수 있었다.



자잘하게 도전과 실패를 경험하던 중 외국에서 생활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졸업 후 첫 회사를 다닌 지 1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이러한 충동적인 마음이 생겼다. 외국생활을 하겠다는 마음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어떤 나라를 갈 것인지에 대해서 또다시 나의 성격이 드러났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발급이 가능한 나라를 찾았다. 일단 호주, 일본, 미국, 중국, 캐나다 등 많은 사람들이 가는 나라는 전부 배제했다. 왜냐고? 그냥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듯이 가는 곳이 전부 싫었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지만 그것은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다. 소수의 사람들만 선택하고, 나만의 특별한 경험을 갖고 싶었기 때문에 선택한 나라는 동유럽의 낭만의 나라 오스트리아.


이때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그 나라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도 없었지만 그러한 이유가 나를 강력하게 끌어당겼다. 무슨 언어를 쓰는지도 몰랐던 나였지만 빠르게 확인 후 독일어 학원을 등록하고, 비자발급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스트리아의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1년에 300명을 뽑는데 신청하는 사람이 없어서 유학원에서도 대행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직접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비자를 준비했다. 생전 처음 독일어 알파벳을 공부하고, 생전 처음 비자를 준비하면서 오스트리아에 있는 여러 레스토랑에 직접 구직 메일을 보내며 '미지의 나라'로 떠나기 위해 열정을 쏟았다. 그 당시 날 흥분하게 만들었던 것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 오스트리아를 여행으로도 가본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엔 해내고야 말았다. 비엔나 중심에 있는 아시안 레스토랑에 일자리를 구했고, 그로 인해 비자발급까지 받을 수 있었다.


기대를 안고 도착한 비엔나에서 생활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열정을 쏟아부은 만큼 영광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거의 다른 문화와 생활은 둘 째치고 그곳에 체류하고, 돈을 버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일자리가 문제를 일으켰다. 일종의 취업사기였다. 힘들게 구한 레스토랑의 일자리는 2달 만에 레스토랑이 폐업을 해서 당장 비자가 만료될 위기에 처했다. 비자뿐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구해 준 집에서도 쫓겨나게 되어 당장 살 곳이 없어진 나는 미련 없이 곧바로 귀국을 택했다.


 비엔나에서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했지만 낯선 나라를 가기 위해 도전했다는 것과 혼자서 모든 준비를 해냈다는 이유만으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덕분에 한국으로 돌아온 후 다시 열정은 식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시작된 자잘한 불행이 내 인생을 꼬아버리고 있었다. 아무리 희망연봉을 낮춰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고, 준비했던 자격증 시험은 줄줄이 떨어지고,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 자리에선 따돌림을 당해 1달 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살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만은 항상 무난했던 나에게 처음 경험해본 따돌림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냥 인생의 모든 것이 안 풀리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일이든 공부든 모든 것을 중단하고, 정신과 상담을 받기로 했다.


"자 자기소개 한 번 부탁드릴게요."


내가 다니던 정신과에서는 개인치료 외에도 비슷한 증상의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나였지만 어느샌가 누군가의 앞에서 나를 소개하는 게 어색해졌다. 내가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건 이름 하나뿐이었다. 직장도 없었고, 학벌도 좋지 않았고, 그나마 어렸던 나이도 어느샌가 20대 후반에 닿아 있었다.


"저는 7년을 사귀었던 남자와 결혼을 약속했었는데 그가 바람을 피워서 헤어지게 되었어요. 그 후로 저는 직장에서 일도 계속할 수 없었고, 부모님은 남자 하나도 제대로 관리 못한 죄라며 저를 나무랐습니다. 저는 한 남자를 끝까지 사랑한 것뿐인데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한 걸까요? 왜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불행해야 하나요?"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말하느라 몇몇 단어는 제대로 발음하지도 못했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그 여자에게 한 마디씩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내용의 말을 서로 다른 표현을 사용해서 말할 뿐이었지만 그런 위로에도 그녀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한 사람한테 4번의 사기를 당하고 나니 나 자신 너무 멍청해서 도저히 거울을 볼 수가 없어요.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말을 했지만 한 번도 거절 못한 내가 병신이었지요. 착하게 살면 복 받는다는데 설령 그게 사실이어도 이 나이에 복 받으면 뭐하나요? 가족도 없고,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이젠.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힘들게 살아온 나한테 왜 이런 시련을 주는지..........."


방에 모인 7명의 환자들은 돌아가면서 자신의 불행을 쏟아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형식적이지만 최대한 진심을 담아 위로의 한 마디를 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진짜로 위로가 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의사를 믿고 싶었다. 내가 의지할 곳이라곤 의사밖에 없었다. 다만 뒤로 갈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더욱 불행하고, 당신보다 내가 더 힘든 인생을 버텨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 했다. 어릴 적 운동회에 부모님이 일하느라 오지 못했던 경험, 군대에서 10개월 동안 막내 생활을 버텨내야 했던 경험, 회사에서 진급에 밀리는 이유가 학벌 때문이라서 그렇다는 등의 사소한 문제까지 보태며 사람들은 불행마저 경쟁하고 있었다.


"그래도 당신은 월급이라도 받잖아.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어. 나는 빚이 5억이 넘는단 말이야."

"나는 병장 때까지 화장실 청소했는데 겨우 10개월 막내 생활이 한 게 뭐 대수라고 그걸 힘들다고 하는 거야?"

"빚도 재산이라고 했어요. 그 정도 빚을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쉽게 환경이었을 텐데 뭐가 힘들다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자신의 힘든 인생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짧지만 진심이 담긴 위로를 한 마디씩 해주던 모임은 어느샌가 누구의 삶이 더 힘든 건지 경쟁하고 있었다.


"요즘 어린것들은 참을성이 없어서 그저 조금 힘들면 죽겠다 하고, 공황장애니 뭐니 이름도 없었던 이상한 병을 만들어서 엄살을 부리지. "


대화는 점점 과열되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느새 서로를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나 역시 분위기에 휩쓸려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데 동조해버렸다. 사실 이렇게 비판을 하니 마음이 더 편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이것마저 예상한 치료의 일종인가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의사 선생님이 더 이상 안 되겠는지 중재를 시도했다.


"자 이제 서로가 가진 상처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었나요?"

"네."


의사의 말에 잠시 잠잠해진 환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조금은 과했다고 느꼈는지 별 다른 불평불만 없이 의사의 말에 집중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신비한 능력을 하나 가지고 태어납니다. 물론 여러분도 가지고 있는 굉장한 능력입니다. 무엇인지 아시나요?"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던 자신이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일순간 밝아졌다. 그리고 모두 의사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에 집중했다.


"바로 자연치유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다치거나 질병이 생기면 그것을 바로 인지하고 다시 정상적으로 고치기 위해 시스템을 수정하고 작동시킵니다. 그 어떤 고성능 컴퓨터보다 빠르고 좋다고 할 수 있죠. 찢어지고, 부러지고, 깨지는 상처는 물론이고, 여러분들처럼 마음에 난 상처도 자연치유가 가능합니다."


별 볼 일 없는 능력에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사람들은 의사의 말에 집중했다.


"그럼 왜 나는 자연치유가 되지 않는 겁니까? 몇 년 동안 이 지경으로 살았는데?"


한 중년 남성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의사 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 잠시 뜸을 들였다.


"상처가 생기거나 뼈가 부러지면 병원에서는 그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붕대를 감거나 깁스를 합니다. 같은 부위에 또다시 충격이 가지 않도록 보호하는 거죠. 병원에서는 그저 같은 부위에 또다시 충격이 가해지지 않게 막아주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사람의 자연치유 시스템을 작동하는데 방해받지 않도록 입원을 시키고, 작은 충격에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수술을 하고 약을 처방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몸은 상처를 아물게 하고 부러진 뼈를 다시 붙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의사의 말은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부 맞는 말이었다. 병원에서는 몸이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막아주고,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지 치료를 하는 건 사람의 몸이 도맡아서 한다. 나이가 들수록 낫는 속도가 느려지는 이유가 그것을 증명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료기술은 점점 더 발전하지만 사람은 몸의 기능이 안 좋아지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낫는 시간도 길어진다.


"외부의 상처는 사람뿐 아니라 많은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오로지 사람의 말과 행동에 의해서만 생깁니다. 아까도 보셨다시피 여러분은 서로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같은 부위에 충격을 가했습니다. 서로가 아프다는 걸 아는 사람들도 자신의 상처가 더 심하다며 다른 사람의 상처를 쉽게 무시합니다. 그렇다면 아프지 않은 사람들은 얼마나 심할까요?"


사람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행동에 반성하고 있었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상처를 또다시 후벼 팠다는 죄책감에 후회를 하고 있었다.


"여러분들의 마음의 상처는 더 크지도 더 작지도 않습니다. 누군가의 상처는 깊겠지만 누군가의 상처는 넓습니다. 누군가의 상처는 여러 개지만 누군가의 상처는 오래되었습니다. 이처럼 상처는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외부의 상처는 더 깊은 상처, 더 아픈 부위, 더 위험한 부위가 있을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부 다른 이유로 마음의 상처를 가졌지만 그 상처는 아픔의 형태가 다를 뿐 전부 똑같이 아픈 상처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서로의 상처가 어디에 있고, 어떤지 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서로의 상처가 자연 치유될 수 있게 깁스를 채워주고 연고를 발라주는 역할을 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말 한디로 깁스를 채워주고, 배려심이 담긴 작은 행동 하나로 붕대를 감아주세요. 이러한 현상이 이 병원 밖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의사의 마지막 말이 끝나고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진심이 담긴 눈빛으로 사과의 말을 건넸다. 나 역시 그 날의 상담 한 번으로 모두 해결되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조금은 달라진 것이 있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데도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스스로 상처를 주는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 여겨 자신보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을 공격한다. 강아지가 처음 본 사람을 보면 사납게 짖는데 그것은 대부분 자신보다 큰 사람이 무서워서 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사람 역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높여 붕대를 감고, 끊임없이 자신을 사랑해주어 깁스를 하고 외부의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나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크게 만들어서 커져버린 나를 부러워하고, 무서워하는 사람들의 사나운 짖음에 웃어넘길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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