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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오 May 27. 2020

한국에는 없었던 한국음식

실패 이야기 : 새로운 아이디어에는 알맞은 타이밍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루 종일 앉아 책을 볼 자신은 없고, 특별한 재능도 없었지만 손으로 뭔가 조몰락 거리는 걸 좋아했던 내가 선택한 길은 '요리'였다. 17살 때부터 혼자 살며 배웠던 요리는 어느새 지치고 힘들지만 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했던가 유명 레스토랑이나 호텔의 셰프가 되기엔 능력과 자질이 부족했던 내가 궁극적인 목표로 잡은 것은 내 가게를 가지자는 것이었다. 가게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고, 인테리어, 메뉴 등 모든 면에서 나의 철학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일단 내 가게를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다만 한 가지 고집부린 것이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요식업의 천국 한국에서 완벽하게 처음 보는 음식이 있을 리가 없겠지만 적어도 내 음식을 본 사람들의 눈빛에서 놀라움이나 신기함을 읽어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몇 년을 참아가며 가게를 열기 위해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4~5년을 일하며 꼬박 모았지만 역시나 턱없이 부족했고, 빌릴 수 있는 최대한의 돈을 빌려 상황에 맞게 오픈을 준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작부터 삐걱했던 것이다. 좀 더 냉철하게 생각했어야 하는데 무슨 자신감인지 월세는 가게 크기에 비해 비쌌고, 구석에 박혀있는 조그만 매장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자금을 아끼기 위해 내부 인테리어, 상호명, 로고 디자인 등 하나부터 열 가지 모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접 작업해서 만든 가게가 이런 가게였다.



한국 전통음식 중 하나인 '김부각'을 이용해 만든 멕시코 음식 '타코'이다.

이름도 김으로 만든 타코라 하여 '김탁코'

타코를 다루는 곳도 꽤 많이 있었고, 김부각을 파는 곳은 한국에서 흔해 빠졌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합쳐서 한국에서는 팔지 않았던 메뉴를 만들었다.


 가게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맛이었다. 김과 밥이 만나면 불패라는 공식을 토대로 레시피를 연구했지만 참고할만한 다른 음식점이나 메뉴가 없었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이 메뉴는 내가 만들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방향은 내가 가장 잘 알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주말마다 집에서 재료를 사 나르며 이것저것 만들어보는데 하루를 꼬박 보냈다.



 김을 그냥도 튀겨보고, 전통방식을 그대로 참고해서 튀겨보고, 수백 장의 김을 튀겨 보았다. 속재료도 오리지널 타코를 참고해서 소고기에 향신료를 넣고, 양상추를 속으로 채웠지만 다소 아쉬움을 지우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몇십 번이라도 더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연구를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초기의 '김탁코'의 결과물은 김부각, 밥, 속재료(한국식)의 조합이 알맞다는 것 정도로 끝낼 수밖에 없었다. 일반 가정의 주방에서 모양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고, 판매를 위한 상품의 메뉴 개발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메뉴 개발에 열을 올렸다. 그렇지만 조리기구를 구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왜 이 메뉴를 골랐을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지만 포기하기는 싫었다. 그리고 돌아가기에는 이미 많은 돈과 시간을 써버렸기 때문에 끝까지 가보기로 결정했다.


 필요한 모든 조리기구는 한국에서 구매하기 힘들어 해외직구로 구매해서 사용했고, 조리기구를 능숙하게 다루는데도 꽤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하지만 덕분에 판매를 할 수 있을만한 메뉴가 어느 정도 윤곽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 맘 때쯤엔 상호명, 로고 디자인, 각종 홍보물 등을 비롯해 메뉴도 어느 정도 결정이 된 후였다. 조금 오버스러운 경향이 있지만 아주 사소한 요소들까지 변화시켜가며 레시피를 연구했다.


1. 알밥용 단무지는 사용이 수월하지만 씹는 식감이 부족하고, 반찬용 단무지는 식감은 좋으나 너무 커서 먹기가 힘들다. 직접 다져서 사용한다.

2. 김부각의 반죽은 박력분+감자전분+튀김가루의 비율을 맞춰서 반죽하고, 후추, 커민 가루로 감칠맛을 더한다.

3. 밥 양념은 군내가 나지 않도록 맛소금만 이용해서 간을 한다.

4. 김부각을 튀겨낸 후 적어도 6시간 정도는 기름기를 빼줘야 바삭하고, 느끼하지 않은 김탁 코가 된다.

5. 만든 후 1시간 이내에 먹는 것을 권장하고, 2시간이 지나면 눅눅해져서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이것 외에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레시피를 완성했다. 아니 사실 가게를 오픈하고도 셀 수 없을 만큼 레시피를 많이 수정했다. 음식에 정답은 없다는 말이 정말 정답이었다.




'부각부각 김탁코'는 적어도 2년간의 시행착오를 겪고서 탄생했다. 한국에는 없는 메뉴를 만들어보고자 시작했던 일이 시작부터 개고생을 불러왔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 개인적으로 자부심을 가질만한 결과물이 탄생했다.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 한국에 없던 음식! 처음 생각했던 목표를 이루긴 이뤘다.


 하지만 이 메뉴는 노력한 시간과 정성에 비해 큰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 새로운 것과 유행에 민감한 대학생들의 빠른 입소문을 기대해 대학가를 선택했지만 가난한 대학생들은 새로운 음식에 쉽게 지갑을 열지 않았고, 배가 고팠던 청춘들은 더 싸고 양 많은 식당을 찾았다. 어쩌다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와서 포장을 해가면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눅눅해져 버린 김탁코를 맞이하게 되었다.


 비싸지 않은 가격, 친절한 서비스, 인심 좋은 사장님, 성실한 오픈 마감시간 등 경영에 있어 기본적인 요소를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했고, 적은 매출에도 홍보에 꾸준히 힘을 썼다. 결제를 할 때 한계가 생기지 않도록 00 페이라는 종류는 모두 신청했고, 종종 외상도 받아주었다.


 하지만 2년간의 운영 기간 동안 '부각부각 김탁코'는 나에게 상처만 주었다. 밤늦게까지 다음날 장사를 준비하다 뜨거운 기름이 온몸에 쏟아지기도 했고, 식재료 카드값이 연체되어 장사를 못할 뻔 한적도 있었다. 취객으로 인해 가게가 부서지기도 하고, 노후된 상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칠 곳만 늘어났다. 더 이상 가게를 운영할 힘이 없었다.


음식장사에서 가장 중요한 맛을 잡기 위해 약 2년간 꾸준히 연구를 했고, 경영자의 기본을 배우기 위해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서비스 마인드가 부족할까 봐 덩치 큰 남자가 혼자서 거울 보며 표정 연습을 하고, 항상 웃으려 노력했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하지만 부푼 꿈을 가지고 시작했던 이 가게는 많은 것을 잃게 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작업했다는 '자부심' 하나만 남겼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전적으로 믿어 왔었지만 이번만큼은 철저히 배신을 당한 느낌이었다. 머릿속에만 있던 것을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기까지는 매우 고된 과정이었지만 그런 고된 과정이 100% 성공을 불러오지는 못했다. 유행이 돌고 돌기도 하고, 처음에는 인정받지 못한 작품이 사후에 인정을 받기도 하듯이 '부각부각 김탁코'가 이번에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알맞은 타이밍'을 만나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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