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번호로부터 시작된 지옥 같았던 하루

욱신거리는 몸으로 써 내려가는 오늘의 기록

by 유별희

2025년 7월 17일 목요일


온몸의 뼈마디가 분해될 것처럼 욱신거리는 밤이다. 근육 세포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통증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고된 육체노동의 여파로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또다시 무언가를 써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이 버겁게 느껴진다. 하루쯤은 이 의무감에서 벗어나도 괜찮으리라. 하지만 이건 나 자신과의 약속이자, 스스로의 끈기를 시험하는 작은 의식과도 같기에 무거운 손을 움직여본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어제 아침, 낯선 번호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였다. 나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 고집스러운 습관이 있다. 하지만 어제는 화장품 포장 작업을 하던 중이었고, 요란하게 울리는 벨소리에 어쩔 수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며칠 전 단기로 일했던 저온 물류센터의 아웃소싱 담당자였다. 내일 출근이 가능하냐는 물음. 사실 지금 하고 있는 화장품 단기 알바는 어쩔 수 없이, 정말 마지못해 하고 있던 터라 이 제안이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졌다. 마침 잘 되었다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수락의사를 밝혔다. 그것이 오늘 하루 전체를 뒤흔들 거대한 실수의 서막이었음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오늘 근무는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며칠 전 처음 경험했을 때는 고되긴 했어도 함께 일하는 단기 근무자들이 꽤 있어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하지만 두 번째 출근길은 달랐다. 저온 센터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미아 같았다. 나름 눈치가 빠르고 센스 하나는 만렙이라 자부해왔는데, 오늘의 나는 그야말로 어리바리한 신입사원의 표본이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서성이고 있자, 여자 대리 한 명이 다가와 "할 일 없어요?"라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걸 왜 나에게 묻는가, 지시를 해줘야 알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꾹 눌러 삼켰다. 일이 없다고 대답하자, 그녀는 다른 직원 여자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저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라고 했다.


지목당한 직원에게 다가가 무슨 일을 하면 되냐고 물었다. 그녀는 나를 위아래로 힐끔 훑어보더니, 고기 제품이 쌓인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거 해요"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는 휙 가버렸다. 아무런 부연 설명도 없이. 순간 당황스러움이 온몸을 감쌌지만, 일은 해야 하니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송장이 붙은 아이스박스를 레일 위에 올리고, 소갈비, 순대국 같은 냉동 제품들을 주문에 맞게 담고, 얼음을 채워 포장을 마무리한 뒤 레일 위로 떠나보내는 작업이었다.


멀리서 내 작업을 주시하던 대리가 다시 다가왔다. '또 무엇을 잘못한 걸까?'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노심초사하던 그 순간, "이렇게 천천히 하면 안 돼요. 빨리빨리 하셔야 해요"라는 차가운 질책이 날아와 박혔다. 그녀는 그 말만 남기고 또다시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순간, '오늘 나는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강렬한 후회와 함께 집으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설상가상으로 실수까지 저질러 제품 하나가 부족한 상황이 발생했다. 모든 위기가 한꺼번에 나를 덮치는 듯했다.


너무나 두렵고 무서워서 눈앞이 캄캄했다. 앞으로 퇴근 시간까지 계속해서 이 무거운 상품들을 올렸다 내렸다 반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숨이 턱 막혔다. 아는 얼굴 하나 없는 이곳에서, 며칠 전에는 친절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마저 오늘따라 무섭고 낯선 존재로 느껴졌다. 이 거대한 두려움을 어디에 토로할 곳도 없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하고 끔찍했다.


짧디짧은 오전 근무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이곳은 작업장이 작아 휴게실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식사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모든 이들의 시선과 존재가 불편하게 느껴져, 창가 쪽 가장 구석진 자리, 내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천천히 점심을 음미하는 척하며, 남은 오후를 어떻게 견뎌낼지 수만 가지 궁리를 했지만 뾰족한 해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오후 시간이 시작되었다. 밥을 먹고 나서인지, 아니면 땀 흘리며 애쓰는 내 모습이 가상해 보였는지, 오전에 나를 쏘아붙이던 그 직원 여자가 한결 부드러운 태도로 나를 대했다. 어쩌면 나의 성실함을 인정한 것일지도. 오전의 우여곡절 끝에 오후에는 큰 실수 없이 일에 임했고, 나 역시 어느 정도 작업에 익숙해졌다. 내 움직임이 마음에 들었던 걸까. 퇴근 무렵, 아침에 나를 다그치던 그 대리가 다가와 내일도 나올 수 있냐고 물었다. 속으로는 두 번 다시 이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있었는데… 나를 고정 인력으로 채용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걸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나는 일단 내일은 어렵고, 다음 주 월요일은 생각해보겠다는 애매한 답변을 남겼다.


오늘 하루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지금도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와 허리, 등, 뼈마디 마디가 비명을 지른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일이 끝났음에도, 하루 종일 짙은 우울감이 나를 짓눌렀다. 이것이 단기 알바의 서러움일까. 아니, 어쩌면 한곳에 지긋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떠도는 나의 책임일지도 모른다. 누굴 탓하겠는가. 모든 것은 결국 나의 선택이고 나의 잘못인 것을.


먹고사는 일이 이토록 고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야 한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으리라. 그저 묵묵히 버텨내고 이겨내는 수밖에. 어느덧 마흔이라는 나이가 코앞에 다가왔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이렇게 단기적인 일로 하루하루를 연명해야 하는 내 인생이 서글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이 먹었다고 주눅 들지 말자. 나는 아직 젊고, 무엇이든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을 갖자.


두 팔과 두 다리가 멀쩡하게 움직이고, 걸어 다닐 수 있는 한, 나의 이 전쟁 같은 치열한 삶은 계속될 것이다.

오늘 하루, 정말 수고 많았어. 그렇게 나 자신을 토닥여본다.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찬란한 꽃이 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새벽 2시의 고해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