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영향일까. 나는 술을 잘 마셨었다.
소위 말하는 말술이었다.
술을 자주 마시거나 절제를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몇 달에 한 번 마시게 되더라도 한번 마시면
인사불성이 되곤 했다.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몸에 열이 난다며 마당에 대자로 누우셨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물을 뿌리라고 하셨다. 국민학교 저학년이던 남동생과 나는, 마당을 뒹굴고 울고 토하는 아빠가 물을
뿌리지 않으면 정말 돌아가실 것만 같아 무서웠다.
우리는 뜰에 있는 샘에서 노란 양은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아다 아빠에게 뿌렸다.
어떤 날은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는 아빠를 찾아 엄마와 손전등을 들고 신작로까지 나가서
서성이던 날도 허다했다.
어린 나는 그게 정말 징글징글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얼마나 더 힘드셨을까.
나는 철이 들기도 훨씬 전에 다짐했다.
술은 절대로 배우지 않겠다고.
하지만 성인이 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술을 마시게 되었다. 어떤 날은 술에 취해 엉엉 울기까지 했다. 내가 제일 싫어했던 아빠와 똑같은 술버릇을 가진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아버지는 1여 2남 중 나를 많이 예뻐하셨다.
그 따뜻한 마음을 알면서도, 아버지의 술로 인해 우리 가족이 겪어야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 내 어린 시절은 여전히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젊은 시절 나는 이맛도 저 맛도 아닌 맥주보다 소주를 좋아했다. 안주도 거의 먹지 않은 채 서너 병은 거뜬히 마셨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서럽게 우는 내가 싫었고, 부끄러웠다.
'적당히 마시자'하는 절제가 나에겐 힘들었다.
그리고 아빠를 닮은 술버릇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결혼 후에도 크리스천인 나는
가끔 술을 마셨고, 술을 한 모금도 못 마시는 남편은 나를 집사가 아니라 ‘잡사’라고 농담처럼 놀렸다.
그 말이 웃기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했다.
이제 나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다.
마시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술 마신 뒤 찾아오는 숙취와 고통도 싫지만, 무엇보다 술이 나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는 사실이 싫었다.
어느 밤, 취기에 기대어 쏟아냈던 눈물은 어쩌면 아버지를 향한 원망이 아니라, 노란 주전자를 들고 마당에 서 있던 가련한 어린 나를 향한 뒤늦은 애도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닮아가는 내 모습이 진저리 나게 싫었던 그 시간조차,
사실은 그 누구보다 바르게 살고 싶었던 나의 간절한 몸부림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술잔을 내려놓고 나니 비로소 맑은 정신의 내가 보인다. 아버지를 투영하던 뿌연 거울을 닦아내자, 그곳에는 누군가의 딸이나 술버릇에 휘둘리는 이가 아닌, 오롯이 나라는 존재가 단단하게 서 있다. 신작로의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비추며 아버지를 기다리던 그 막막했던 밤들은 이제 끝났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찬물을 끼얹지 않아도 되고, 나를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며
울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이제 술이 나를 끌고 가게 두지 않는다.
술기운이 머물던 빈자리에는 고요한 평온과
나 자신을 향한 깊은 신뢰가 채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