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보다 감각으로 살기
1. 합격보다 어려운 첫 수업
대학교 단기 과정으로 컴퓨터활용능력 2급과 세무회계 2급 강의를 듣고 있다.
일주일에 다섯 번,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공부하는 일정이다.
하지만 나는 IPM이 뭔지, 매크로나 함수, 차트가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첫 시간부터 흥미가 없었고,
3개월 과정으로 컴활 2급을 합격하라니
말이 되나 싶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말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집중을 놓치자 뒤로 갈수록 내용은 미로처럼
더 꼬였고 복잡해졌다.
2. 캔바와 디자인의 유혹
사실 처음부터 자격증이 목적은 아니었다.
캔바, 디자인, 굿즈 제작 같은 감각적인 수업이 있다는 말에 솔깃해 등록했다.
모집 정원은 20명인데, 무려 50명이 몰려 면접까지 보게 됐다.
면접관- “컴활 자격증까지 따실 건가요?”
나- “아니요, 저는 캔바와 디자인에 관심이 있어서요.”
면접관-“그럼 한글 작성 속도는 어느 정도 되시나요?”
나- “1분에 500타 정도요.”
면접관-"속도가 꽤 빠르시네요
그럼 과정 후엔 취업 계획이 있으신가요?”
나-“취업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배운 걸 활용해 더 완성형의 작품이 되도록 시도해보고 싶어요.”
며칠 뒤, 합격 문자가 도착했다.
그러나 그날의 기쁨은 잠시였다.
3. 문과의 뇌, 멈춰버리다.
일주일 중 세 번은 자격증 공부,
두 번은 디자인 수업.
디자인 수업은 교수님이 “감각이 있다”라고
늘 칭찬해 주셨고 재미있고 몰입되는 수업이다.
그런데 컴활과 회계 수업은
듣고 또 들어도, 아무것도 머리에 남지 않는다.
짝꿍이 몇 번을 친절하게 설명해 줘도
막상 다시 해보면 또 모른다.
‘아, 바보가 된 기분이 이런 거구나.’
점점 의욕도 사라진다.
4. 감각으로 살아온 사람
나는 뜨개질을 할 땐 영문 도안도
혼자 해석하고,
앞·뒤판 계산에 진동 코수까지
스스로 맞추며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걸
감으로 완성했다.
실제로 수예점을 3년 동안 운영했다.
길을 걷다 예쁜 니트 옷이 보이면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와 똑같이 뜬다.
배운 적도, 차트나 도안을 본 적도 없지만
그냥 내 손이 아는 느낌이다.
3년 동안, 나보다 뜨개질 잘하는 손님은 없었으니
겁 없이 시작한 나에게 천만다행이었다
피아노, 하모니카, 리코더, 오카리나~
악보 한 번 본 적 없지만,
노래 한 번 듣고 바로 연주가 된다.
심지어 생전 처음 듣는 곡도 가능하다.
지인들은 눈썰미가 있다, 손재주를 타고났다,
청음이 좋다 이야기했고
나 또한 교만하게도 늘 생각했다.
“나는 타고났나 보다.”
5. 이해보다 감각의 세계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컴퓨터 화면 앞에서
내 뇌가 정지된 듯, 아무 말도 이해되지 않는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말하던
‘문과와 이과의 뇌 차이’일까.
그런 게 정말 있나 싶었는데 이토록 확실하게 체감하니 신기함을 넘어
이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건가 싶기도 했다.
6. 그래도 나는 괜찮다
함수는 몰라도, 세무회계의 부가가치세는 몰라도
더 많은 걸 할 줄 아니까.
문과의 뇌를 가져서
이과가 이해는 안 돼도,
감각으로 사는 삶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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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