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날의 잊히지 않는 장면
나는 맨발이었다.
한겨울 눈 내리는 어느 날,
만삭의 몸으로
병원을 향해 뛰던 나는 온 신경이
아들의 싸늘해진 몸에 가 있었다.
열이 40°를 넘나들며 경기를 일으키던 아들을 안고 숨 가쁘게 도착한 응급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남편을 보자마자
긴장이 풀리며 참았던 눈물이 기어코 터져 나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내 모습을 살폈다.
반 실성한 사람처럼 옷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한겨울인데 반팔이었고,
맨발에 급히 끌어신은 슬리퍼 속 발은
이미 꽁꽁 얼어 있었다.
만식이었던 나는
그 순간 모든 것이 절박했다.
이 모든 일은 고작 돌이 지난 내 아들이 감기에 걸렸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에서 시작되었다.
2. 반복되는 고통, 그리고 싸움의 시작
돌이 지날 무렵부터 네 살이 될 때까지,
아들의 감기는 우리 가족에게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재앙이었다.
아들은 감기 한 번에 열경기를 서너 번씩 치러야 했고, 그제야 비로소 고통이 지나가곤 했다.
아들을 안고 응급실에 달려갈 때마다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좁쌀만 한 혈관을 찾지 못해
간호사들이 애를 먹었고,
팔에 실패한 주삿바늘은 결국 아들의 머리를 향했다. 머리와 관자놀이 근처의 머리카락을 면도칼로 조금 밀어내고 혈관주사를 놓던 그 순간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내 가슴은 그때마다 산산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밤이었다. 잠든 아이를 보며 덜컥 무서워지는 날이 많았다.
'혹시 잘못된 건 아닐까? 숨 쉬는 것이 왜 이렇게 약해 보일까?' 두려움에 아이의 심장에
귀를 대보기도 했던 수많은 날들.
잠자는 대신 아들의 희미한 숨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우리 집은 늘 '열경기에 대비하는 응급실' 같았다.
3. 둘째의 탄생, 극한의 전쟁터
치열한 전쟁 중에 둘째가 태어났다.
첫째는 여전히 계절을 가리지 않고 아팠고,
갓 태어난 둘째는 밤낮이 바뀌어 밤새 울어댔다.
아픈 첫째를 돌보느라 지친 몸은
밤에 잠을 청해야 했지만, 둘째가 깨어있는 밤은 그야말로 극한의 전쟁터였다.
나는 질병이라는 보이는 적뿐 아니라, 피로함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도 싸워야 했다. 한겨울에도 땀에 젖어 반팔로 지냈던 만삭 시절처럼, 나의 몸과 정신은 매일매일 극한으로 내몰렸다.
'어떻게 살았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볼 겨를도 없이, 그저 아이들을 치열하게 키워나갔다.
4. 마침내, 가장 흐뭇한 결론
그때는 몰랐다. 매일 밤 열이 올라 뜨겁던 아들의 몸을 닦아주며, 잠자는 시간을 포기하며, 내가 이 세상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엄마라는 이름의 전사'가 되고 있었다는 것을.
그 모든 고통과 피로가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어두운 터널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그 터널을 통과해 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 그렇게 연약했던 내 아들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건강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살아내고 있다.
이제 나는 아들의 기침 소리나 미세한 숨소리 대신, 세상 속에서 단단하게 서 있는 아들의 뒷모습을 본다. 그가 스스로의 힘으로 걷고, 선택하고, 이겨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만큼
흐뭇한 결론은 없다.
나의 모든 맨발 투혼과 눈물, 피로와의 싸움은
바로 이 순간 아들이 쟁취한 평범하고 건강한 일상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보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