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대물림되는가
어린 시절의 나는, 가난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돈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아주 일찍 알아버린 아이였다.
설날만 되면 우리 삼 남매에게 친척 어른들께서 건네주셨던 세뱃돈은 늘 같은 결말을 맞곤 했다.
엄마는 “엄마가 보관하다가 너희 크면 줄게”라고 말하면서 그 돈을 조용히 가져가셨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 돈은 두부 한 모, 성냥 한 갑을 사는 데 필요한
하루치의 숨구멍이었다.
어느 집에서나 있을 법한 추억이라지만
우리 집은 조금 달랐다.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국민학교 시절, 집에서 버스를 타고 나가면 시내 초입에 종합병원이 생길 거라고 했다.
사십 대 초반이었던 나이로 기억하는 나의 엄마와 아빠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장님을 찾아가 부탁하셨다. 그 일이 꽤나 경쟁이 있었던 거 같다.
엄마는 결국 그곳에서 일하게 되었고
안전화와 안전모를 쓰고 남자들 틈 사이에서 대못을 빼고, 자재를 나르고,
손이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셨다.
어느 날 엄마는 일을 하다 중심을 잃고 쓰러지셨고,
바닥을 짚은 손에 대못이 깊게 박혔다.
기적처럼 중요한 신경은 피해 갔고
손가락은 정상처럼 움직였지만
그 일로 오래도록 고통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엄마는 지게질도 하고, 나무에 매달려야 하는 일도 했다.
온갖 거친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고 두 분은 가족을 먹이고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해
그야말로 몸으로 삶을 떠받치셨다.
하지만 부모님은 평생 가난했다.
“비빌 언덕이 없어서 그래.”
부모님은 그들의 부모를 탓하곤 했다.
대물림된 가난에 대한 원망이 아스라한 그림자처럼
집 안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나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으면 당연히 더 낫겠지.
재산이 있으면 시작선이 다르다는 건 냉정한 현실이니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물려받은 재산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사람도 있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이도 미래를 다시 짜 올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가난은 ‘대물림되기 쉬운 환경’이지
운명으로 새겨진 문신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개인의 나태함, 두려움, 도전하지 못하는 마음
그런 것들이 가난의 흐름을 이어 붙이기도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난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건 너무 잔인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노력’이라는 단어조차 사치가 되는 삶이 있으니까.
숨만 쉬어도 버거운 인생의 경계선이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말하고 싶다.
가난은 대물림될 수 있다.
하지만 ‘흐름을 바꾸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누군가는 부모 세대가 지고 온 상처와 무게를
그대로 이어받아 살아간다.
또 누군가는 미세하게라도 방향을 비틀어
더 나은 곡선을 그리려고 한다.
그리고 그 작은 변형이
한 세대의 공기를 바꾸는 시작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제야 안다.
엄마와 아빠가 살아낸 그 치열한 나날들,
그 손바닥에 남았던 흉터들,
그 모든 것이 결국
‘흐름을 바꾸기 위한 싸움’이었다는 걸.
가난은 쉽게 대물림된다.
그러나 사랑과 성실, 선택, 의지는
어쩌면 더 강하게 대물림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름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이미 그 변곡점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