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만든 자리에 새 길이 열린다.
7. 다시 시작되는 자리에서
사라짐과 머무름, 흔적을 지나면
우리는 결국 새로운 자리 앞에 선다.
그 자리는 때로는 너무 넓어 보이고, 너무 조용해서 조금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 공간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시작점이기도 하다.
새로 시작된다는 건
이전의 모든 순간을 지운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과거의 결을 품은 채
다시 온도를 조절해 가며 앞으로 걸어가는 일이다.
지워지지 않은 마음 위에
새로운 마음이 천천히 겹쳐지는 과정이다.
다시 시작되는 자리에서
우리는 바뀌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예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졌고,
조금 더 느리게 판단하게 되었고,
조금 더 깊이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사라짐이 끝을 만들었다면,
머무르는 나를 지켜주었고,
흔적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결국 다시 시작된 자리에서는 과거의 상처보다
앞으로의 가능성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다시 시작되는 자리 앞에 선다.
그리고 그 순간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끝은 사라짐이 아니라
사라짐이 만든 새로운 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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