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중학생 때 친구들과 연락이 닿았다. 다음에. 다음에 미루던 연락을 먼저 해준 것이었다. 연락을 하길 원하면서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삶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을 꼽으라면 그 시절에 모개져 있을 테니까. 그때만큼 어둡고 불안하고 이상했던 시기는 없다.
가령 이런 것이다.
하복을 입은 우리는 늘 가던 대로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간다. 집에 가려면 조금 더 걸어야 한다. 중간에 걸음을 멈춰 자주 가던 놀이터에서 땅따먹기를 하고 그네를 타며 까르르 웃는다. 천진난만한 웃음소리 앳된 얼굴에 그늘은 찾을 수 없다. 오늘 반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수학여행이나 좋아하는 아이돌, 남자아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누가 보아도 여느 중학생과 다를 바 없다. 공부는 어렵고 관계는 마음대로 되지 않아 때때로 불안하지만 내일이 마냥 두렵지는 않다.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어. 비밀스러운 꿈을 나누며 언젠가 이룰 것들을 생각한다.
만약 평범했더라면 이랬겠지.
진실은 이런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집과는 좀 먼 거리의 중학교를 선택했다. 정확히는 부모님이. 처음 그 학교에 간 날, 교실에 흐르던 묘한 공기와 서늘했던 짝꿍의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같이 밥 먹을래?라는 말을 못 할 정도로 수줍음이 많았던 난 반에서 가장 조용한 아이였다. 친구를 사귀려 몇 번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매번 실패하고 말았다. 그 나잇대 아이들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아이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지. 그런 것은 모르고 그저 가만히 있는 쪽을 택했다. 친절하고 밝은 인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때로는 혼자 다니는 내가 수치스러워 자기 방어를 하기 위해 반 아이들에게 툭툭거렸을지도 모르겠다. 말을 하지 않은 시간이 길어 목이 메어 있는 날이 잦아지다가, 날 피해다니는 것 같은 아이들이 늘어나고, 겉모습을 이유로 놀림을 받다가, 책상에는 쓰레기가 쌓인 날이 하나둘 더해졌다. 당시엔 모르겠던 따돌림의 이유들에 묻혀 숨이 막힌 나는 몸도 마음도 어두워졌고 점점 왕따가 되어갔다. 반 아이들에게 혐오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내가 하는 행동. 말투. 외모. 아마 존재 자체.라고 생각했다. 샤워를 하며 몸을 박박 닦아도 잘못은 전혀 지워지지 않아 아프기만 했다. 외로움에 못 이겨 나만의 친구를 만들었더니 거울 속 그 아이는 자주 말을 걸었다. 대신 아파줄 사람이 필요해.
우울에는 묘한 기류가 흘러서 비슷한 사람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나를 포함한 대여섯 명의 친구들은 각자의 사연을 지닌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우리에겐 돈이 없었고 정서를 보살펴줄 부모가 없었고 보통 사람들이 지닌 선이 없었다. 하지만 3년 동안의 지옥에서 버틸 수 있던 건 그들 덕분이었다. 관계에 서투르던 나답지 않게 같은 동네에 살았던 아이들과 자연스레 친해졌다. 매일 비어있는 친구의 집에서 라면이나 짜파게티를 끓여 먹고 동전을 긁어모아 떡볶이를 사 먹었다. 숨바꼭질, 마피아 등의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실없는 농담에 배를 잡고 웃었다. 심지어 생일에 편지 주고받기는 우리만의 이벤트였다.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우리야말로 '진짜 친구'라고 생각했다. 친구가 없는 집에 방문을 따고 들어가 음식을 먹고, 서로 과격하게 때리며 노는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생일날 받은 편지의 한 귀퉁이엔 부엌칼로 손목을 그으려다 널 생각하며 참았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죽음이 더 가까운. 그러니까 남들과는 다른 사람들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한다.
지난한 시간이 끝나고 중학교를 졸업하며 홀로 멀리 떨어진 인문계 고등학교에 갔다. 평생 함께할 거란 말이 무색하게 어느 순간 우린 멀어졌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고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 시간. 시간. 시간이 흘렀다. 중간에 몇 번 연락이 된 것도 같은데 잘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그 시절은 지우고 싶은 기억이 되어 있었다. 실은 삶을 비집고 오는 그때의 기억들이 너무나 성가셔 스위치를 끄듯 생각을 멈췄다. 십 대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은 자연스레 흐릿해졌다.
십 년을 뛰어 넘어 연락을 받고 오랜만에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 두려움과 기대가 공존했다. 떳떳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이제와 서도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밑바닥을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두려움. 하지만 한시도 잊을 수 없던 기억 속 아이들의 모습을 거듭해서 그려보았다.
어색하지만 익숙한 공기가 흐르고 우린 마주 앉아 술을 기울였다. 삼겹살에 소주를 먹어도 아무렇지 않은 나이가 되어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각자 나름대로의 삶을 책임지고 있었다. 연애를 길게 하는 친구 혹은 이미 회사에서 과장이 된 친구도 있었다. 젖살이 빠진 얼굴, 성숙해진 옷차림, 추억보다 더 어린 목소리. 그리고 중학생 때와 변하지 않은 리액션과 말투. 예상보다 더 예전 같아서, 아니 예전이랑은 달라서, 놀랐던 것 같다. 나는 그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싶으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냈다는 고마움이 가장 컸다. 부모의 부재나 따돌림과 우울을 겪고도, 그리 쉽게 죽지 않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연락을 부담스러워하진 않을까 걱정했다던 친구의 물음에 너네라면 괜찮다는 말로 응답했다. 과거의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파편처럼 부서져 조각이 났지만 천천히 맞춰지기 시작했다. 우린 정말 이상했어. 남들은 당연히 아는 것들을 몰랐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것도, 어른들은 밝은 아이를 좋아한다는 것도. 난 그냥 말이 없는 아이인 줄 알았는데 뒤틀려 있었던 것 같아. 그때 우린 살아있는 것 외엔 어떤 목적도 없었잖아. 더 빨리 벗어났다면 좋았을 텐데 가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 잠깐의 침묵. 뒤에 나는 물었다. 우린 지금도 이상할까. 여전히 나사가 빠진 것 같은 상태로 사람들 속에 섞이려고 아등바등 대는 걸까. 열네 살의 나에게서 변할 수 없는 걸까. 두려움 섞인 질문에도 친구는 대답한다. 사람들은 모두 이상한 면을 가지고 있잖아. 이상하다고 해도 괜찮아. 나는 내가 이렇게 밥을 먹고 생활을 하고 스스로를 살리며 살고 있는 지금이 너무나 신기해.
살아있는 게 무엇인지는 죽어있는 시간을 통해 배웠다. 세상은 극단과 극단을 오가는 것이라고. 삶이 너무나 크게 와닿아 황홀감에 젖을 수 있는 이유는 죽음에 닿아 보았던 덕분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상한 사람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상해서 사랑스러운 것들을 알아보는 능력이 나에겐 있으니까. 뭔가 부족하고, 사회적인 기준에 맞지 않고, 손쉽게 소외되는 이들을 지키고 싶다고 거듭 다짐했으니까. 오만하지만 이상한 사람으로 이상한 그들과 함께 가기로 정했다. 이제 인생의 목표라는 건 누가 잡아주지 않아도, 제시하거나 인정해주지 않아도 홀로 충분히 세울 수 있게 되었으니. 매끈한 원이 아니라 울퉁불퉁 도드라지고 한 부분만 쏙 들어간 독특한 모양의 원이라도 그대로 단단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하다. 언제까지 단단할지, 어느 날 갑자기 신호를 벗어나 멀리 도망가버릴지 장담할 수 없지만 숨이 붙어있는 한 좀 더 잘 살고 싶다. 이건 친구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그리고 인생의 한 기점 죽어 있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